농술가의 성스런 붓질

(농부의 위대함, 페루에서 만난 풍경)

by 바람마냥

동네 입구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파란 국화가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온 산골짜기가 동네로 흘러내려 울타리가 된듯한 동네, 우리 동네 전하울엔 많은 예술가들이 산다. 자연을 벗 삼고, 비탈밭을 캔버스 삼아 푸름을 그리는 농부들이 그 예술가들이다. 내리는 빗줄기에 물감을 섞어 비탈밭에 슬며시 끼얹어 놓으면, 그 푸름은 어느덧 질펀한 멋진 그림으로 만드는 농부 예술가, 농술가들이 가득하다. 아침, 저녁으로 바쁜 농술가들은 언제나 느긋한 몸짓으로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농부는 자연을 거스를 줄도 모로고, 단지 그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천연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고, 언제나 땅을 닮아 정직하기만 그들에게 이 세상에 어느 예술가가 농부 예술가를 능가 하리오. 농부는 단순한 농부가 아니라 자연을 붓 삼아 논과 밭에 붓질하는 천연 예술가로 농부 예술가로 칭하여도 탓하는 이 없으리라.


비스듬히 비탈진 밭에 키 작은 농술가가 마실을 나왔다. 마실이 끝난 듯하더니 어느새 농술가는 긴 줄을 새겨 놓고 말았다. 그 줄은 자로 잰 듯 길게 늘어져 골짜기로 이어졌고, 농술가는 붓을 들어 밭이랑에 점 푸름을 찍어 놓았었다. 아침나절엔 이슬이 적시어 주고, 가끔 쏟아지는 빗줄기가 스며들어 점 푸름은 점점 흐르는 듯 번지고, 덩달아 농술가 발길이 잦아지며 연초록은 어느새 밭고랑을 덮어버렸다. 덩달아 산을 타고 내린 푸름은 비탈밭과 한 몸이 되어 밭을 거느린 산과 들이 하나가 되었다.

산골짜기 넘어온 햇살이 비탈을 찾아오면 물기 먹은 푸름은 찬란하게 빛이 난다. 덩달아 푸름은 널따랗게 팔을 떠억 벌려 비탈밭을 끌어안는다. 창문을 통해 마실 온 진초록이 익어 갈 무렵, 점 푸름으로 잔잔하던 밭고랑에 풍성한 배추로 태어났다. 온전히 비탈을 덮은 푸름이 지칠 무렵, 배추는 노랑 고갱이를 안고 통통 영글어 간다. 비탈밭 가득히 통통 배추 곧추서게 되면 여름은 깊이깊이 곤두박질친다.


더위와 함께 한 여름이 깊어지고, 비탈밭에 곧추 선 배추 풍성해지면 푸름은 서둘러 농술가의 품을 떠나야 했다. 새벽녘 농술가들 웅성거리고 여름을 먹고 자란 푸름이 떠날 무렵, 구슬픈 산 뻐꾸기 뻐국거리며 농술가의 이별을 설워한다. 익어진 지난 푸름과 이별을 해야 비탈밭은 새 푸름을 맞이할 테니 비탈 푸름은 서서히 지워지고, 본래의 비탈밭이 도로 되었다. 푸름이 떠난 비탈밭은 허탈해 하지만, 여름내 익은 푸름이 농술가의 땀이었기에 이내 비탈밭은 질끈 눈을 감았다.


비탈밭에 더운 여름이 더 다가오면, 농술가는 흐르는 땀에 물감을 묻혀 다시 힘차게 붓질을 한다. 허전하던 비탈밭에 힘찬 붓질이 되어 그 비탈밭은 또다시 점 푸름으로 채색되었다. 그 점 푸름이 가끔 찾아오는 안개를 먹고, 산 넘어 찾아오는 햇살이 더해지면서 점 푸름이 서서히 몸집을 불린다. 몸집을 불린 푸름이 비탈밭에 그득해지면 산과 어우러진 비탈은 또다시 하나가 된다.

여름이 적당이 영글어지면 푸름은 서서히 검푸름으로 변신되고, 여름은 서서히 뒷걸음질로 가을에 자리 주고 물러갈 것이다. 가을이 하루하루 햇살 뜨겁고, 푸르른 비탈밭에 햇살 찾는 날 거기엔 깊은 가을이 자리하리라. 가을은 넉넉히 영글어 가을 물감이 들판에 흘러내리면, 푸름은 넉넉한 몸집으로 보답을 하고 이내 비탈밭은 검푸름 물이 들었다. 가을이 더 깊어지는 날, 푸름은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하며 그렇게 가을은 영글어간다.


이웃에도 멋진 농술가들이 살아간다. 힘들이지 않고 쿡 심어 놓은 콩은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어설픈 듯 심어 놓은 토마토는 붉은색으로 도배를 한다. 뒤 울에 호박 덩굴은 어느새 방울방울 호박을 달고 있고, 넉넉한 오이줄기에도 주렁주렁 오이가 열렸다. 커다란 토마토는 지천으로 붉어졌고, 붉은 고추가 나무마다 가득이다. 서투른 몸짓으로 심은 고추는 몇 개만 주고 골을 부리지만, 울 넘어 고추밭은 붉은빛으로 멱을 감았다.


이곳에 자리 잡으려 하던 해, 새벽녘 뜨락에는 싱싱한 상추가 쌓여있고, 가끔은 큼직한 가지가 놓여있다. 정성껏 돌본 나의 가지는 달랑 한 개 만을 주고 가을을 맞이했건만, 그리도 커다란 가지를 키워 맛을 보여주었다. 더러는 산나물에 대해 설명을 주고, 농사에 관한 많은 이야기는 초보 시골꾼에겐 무엇보다도 소중했다. 이것저것 미안해 알량한 수박 한 덩이로 생색을 내고 말았지만, 농술가들의 묘술에 깜짝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푸름이 익고 변해 가을빛 되는 날, 농술가는 어엿한 참 예술가 되어 성스런 가을 그림을 완성하리라. 가을빛 물들어 잔치하는 날 가을은 지난여름 그리워하고, 가을이 어느덧 더 익어지면 그 자리를 비워주고 하얀 겨울을 맞이 하리라. 신비한 계절의 중심에는 언제나 농부 예술가들이 계절의 지휘자가 되고, 연주자가 되어 기어이 성스런 가을을 맞이하고 만다. 그래서 농부 예술가, 농술가의 몸짓은 언제나 위대하고 농술가는 성스러운 계절의 주인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