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너머 푸름이 여름을 설명했다.

(자연이 주는 신비, 페루에서 만난 석양)

by 바람마냥

새벽녘 , 이층 방 책상에 앉아 바라보는 앞 산은 아름답기만 하다. 초봄을 만나 작은 새싹이 나온 지가 얼마 전인듯했는데, 벌써 여름 길에 접어들었고 그 싹은 검 초록으로 변해 있었다. 아침마다 일어나 문을 열고 초록과 눈싸움을 하는 사이,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참새의 재잘거림도 어느덧 귀에 익숙해 손뼉 치며 쫓는 것을 잊은 지도 오래되었다.


새벽부터 가느다란 빗줄기가 산 가득한 초록에 살살 내리고 있다. 초록은 가는 비에 젖어 잠시 멈춘 듯 조용히 멎어 있다. 가끔씩 찾아오는 골짜기 새끼 바람이 나뭇잎을 건드려 주면 마지못해 잎사귀는 꿈틀거린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초록 위를 날아가는 산새는 이웃을 찾아가는 듯 날갯짓이 활기차다.


진한 초록에 앉았던 빗방울이 바람 타고 내리면 초록은 홀가분해 바르르 떤다. 산 골짜기 하얀 안개 바람에 얹혀 고개 넘을 때 꼭대기 초록은 하얗게 물들었다. 이내 바람이 실려 안개 덮으면 푸르른 낙엽송 하양 속에 잠들고, 눈 앞 초록도 안갯속에 숨어 버렸다.

가느다란 비 그치고 초록 가득히 눈 앞에 오는 날, 몇 그루 밤나무가 하얀 꽃을 이고 눈 앞을 서성인다. 산 넘은 바람이 하얀 꽃 위에 앉을 때 밤나무는 하얀 꽃을 하얗게 털어내고, 꽃 턴 빈 가지가 홀가분이 그네를 탄다. 바람 따라 일렁이는 밤나무가 초록으로 물들어 여름 즐기고, 안개를 털어낸 골짜기는 밝은 미소로 화답한다.


바람이 더 아래로 오면 야트막한 언덕 위 초록이 흔들리고, 그 초록도 안개 털며 새벽잠을 깬다. 덩달아 둥지 새 선잠에서 깨어나고 초록 속에 잠자던 마을이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서둘러 산촌이 서둘러 아침을 맞을 즈음 어느덧 작은 비 걸음을 멈추었다. 아침마다 창문에서 맞이하는 초록이 오늘은 빗물 따라 더없이 진하다. 그 위에 안개 오고 덩달아 바람이 찾은 동네는 초록이 영그는 여름으로 들어선다. 초록이 넘쳐 진초록으로 영글어 어느새 여름에 빠져 검 초록으로 물들었다. 앞산까지 흘러내린 검 초록이 따사한 햇살 타고 영글어 가면, 하얗던 밤나무는 조막만 한 밤송이 달고 여름을 즐기리라

작은 도랑까지 흘러내린 검 초록이 맑은 물속에 그림자 담그면, 흐르는 물결 따라 초록은 일렁인다. 이따금 햇살이 찾아오면 검 초록은 햇살을 받아치고, 튀어 오른 햇살은 여름 속에 숨어든다. 어느새 옅은 초록으로 찾아온 봄이 검 초록으로 변한 여름에 자리를 내주었다.


아침나절 창문 열고 만났던 봄이 저물어 새벽에 만난 여름으로 익어갔다. 작은 골짜기에 찾아온 검 초록이 창문을 열어 여름을 전해주고, 오늘따라 내리던 작은 비도 여름을 축하하는 걸음 멈추었다. 창문 열고 만난 여름을 오래도록 만나고 싶어 목을 빼고, 오늘도 뒤꿈치 들어 한참을 서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