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과 살아감의 세월, 이집트의 흑사막)
오늘은 긴 장마가 긴 꼬리를 감추자 시골살이의 대표적인 일, 습기와의 전쟁으로 일과를 끝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식사한 후 거실에 앉아 있는데 아내 전화벨이 울린다. 아내는 전화를 받자마자 옷을 챙겨 입으며 밖으로 나갈 모양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밖에서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 집 앞에 있는 가로등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다 모여 있어서 나오라고 한다면서 서두르는 것이었다.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 언제나 준비해 두었던 아이스크림을 몇 개 챙겨 나간다.
시골살이를 하러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처음에는 혼자 들어와 잡초를 뽑고 이런저런 일로 집을 돌보았다. 가끔 들어오는 동네는 서먹서먹하기도 하고 왠지 낯선 기분이 들었지만, 가끔 들어오는 나를 보고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들은 상당히 친절함을 보여주곤 했다. 그늘에 앉아 수박을 먹으면서 같이 먹자고 부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알려주며 시골살이 적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느 곳에 가면 무슨 나물이 많다는 것도 알려주면서 시골살이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곤 했다. 다 같이 시골살이를 자처한 사람들이기에 동병상련의 정도 있어 그러하기도 했겠지만, 본래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선하면서도 정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남에서 친절을 베푼다는 것이 그리 쉬울 리 없는 것이기에 항상 고마워하며 집을 찾곤 했다.
전원주택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삶은 언제나 소소한 즐거움이 많다. 아침에 일어나 뜰 앞을 보면 커다란 가지가 한 바가지 놓여 있다. 깜짝 놀라서 어리둥절하며 눈을 돌리면, 이웃 아주머니가 바라보면서 올해 농사지은 건데 먹어보라 갖다 놓은 곳이란다. 밭에서 오이를 따오다가 만나면 먹어보라고 몇 개 건네 주기도 한다. 귀한 토마토가 많다면서 한 바가지를 건네준다. 하지만 매일 얻어먹는 것이 고맙고도 미안스러워 가끔 수박이나 복숭아 등을 사다 돌리는 수밖에 없다. 농사의 초보이기도 하고 누구에게 건네줄 만큼 농사도 짓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한 자루의 양파를 가져가란다. 친척집에서 농사를 지은 것인데, 상품가치가 없는 것이지만 먹을만하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먹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것이었다. 너무 고마워 어쩔 줄을 몰라하자 못생긴 것을 준 것인데 왜 그러냐며 오히려 더 미안해한다. 서먹서먹한 시골살이를 하면서 걱정이 태산 같았던 이웃들 간의 고민이 해결되었다는 안도감과 고마움이 짙게 풍기는 그림들이다.
지난봄에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건네준 강낭콩을 뜰앞에 심자 작은 싹이 나오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었더니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것저것 바빠서 돌아볼 틈이 없었지만 나 보라는 듯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손녀의 현장실습감으로 넉넉한 자료가 되었다. 강낭콩을 넣어 지은 밥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밥맛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이웃들로부터의 도움과 관심은 어렵게 마련한 전원주택에서의 삶을 한층 쉽게 만들어 주곤 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옷을 챙겨 입고 나간 아내는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집 앞을 밝게 비추는 가로등 밑에 자리를 펴고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은 곳이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각자 먹을 것을 챙겨 나왔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이웃에 사는 어린아이까지 나와 시골의 밤을 즐겁게 해주는 듯했다. 서로가 살아가는 모습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부담 없는 이야기로 즐거움을 함께 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두는 갈갈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깊 옆에 있는 도랑물 소리와 겹쳐 시골 동네의 전형적인 소리가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먹거리가 함께 있어 언제나 즐거운 놀이 겸 이웃들 간의 즐거운 일거리이기도 하다.
떠들썩한 분위기가 계속되는가 했는데 멀리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온다. 윗집에 사는 이웃이 퇴근을 하는 모양이다. 그 자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아주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어린아이와 농담을 주고받는다. 같이 모인 이웃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지만 한바탕 웃음으로 화답하며 즐거워한다. 한참의 이야기 꽃을 피우고 밤이 이슥해서야 자리를 끝내는 모양인데, 헤어지기가 서운했는지 다음 모임을 이야기했단다. 다음에는 누구의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다음에는 무엇을 하자는 등의 이야기를 마치고 각자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밤이 이슥해 아내는 집으로 들어오면서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시골에 들어와 살면서 이웃들 간에 좋지 못한 일로 얼굴을 붉히면 어쩌나 하는 것이 늘 걱정이었다. 하지만 내 속을 훤히 내놓고 살아가는 모습과 서로가 기대며 즐거움을 나누는 모습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뜰앞에 비추는 가로등이 언제나 고맙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어두운 뜰을 환하게 비추어 언제나 아름다운 밤을 주기도 하고, 이웃들이 가끔 같이 앉아 즐거움과 정을 나누는 장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같이 살아가면서 삶의 즐거움을 나누고 또 얻어가는 상쾌한 여름날의 저녁이 되는 장소이어서 더 좋다.
달빛이 밝게 비추는 시골집에 하얀 가로등이 어둠을 지워주고, 도랑에서 들려오는 상쾌한 물소리는 시골집의 정취를 한껏 더해준다. 가끔씩 이웃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숲 속에서 들려오는 벌레소리는 벌써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암시를 해 준다. 이렇게 전원생활을 즐거워하는 사이, 가끔은 세월의 빠른 흐름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세월의 흐름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가을에 자리를 내주고 서서히 뒷걸음질하는 여름에게 서운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여름날의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