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멸치쌈밥, 비릿함에 상큼함의 절묘한 조화였다.

(대변항을 찾아서, 멸치 쌈밥의 추억)

by 바람마냥

호젓한 시골 바닷가, 곳곳에 검푸른 미역이 햇살을 기다린다. 가끔은 오징어도 온몸을 드러냈다. 맑은 햇살을 기다리는 해산물이 가득한 동네, 부산의 기장이었다. 곳곳에 멸치가 가득해 김장철이면 많은 사람이 붐비던 곳이었다. 우연이 여행길에 들렀던 기장 대변항에서 만났던 오래 전의 추억이다. 길가에서 싱싱한 물미역을 사고, 커다란 멸치를 사 왔던 어촌으로 기억되던 곳이다. 언제 이런 곳을 또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고 다시 찾았던 대변항은 알 수 없는 곳으로 변신했음을 몇 년 전에 알았다. 많은 아쉬움과 그리움이 숨어 있던 기장과 대변항이었다. 아이들과 같이 찾았던 대변항의 추억이다.


이태 전, 수원에 살던 딸아이가 급히 전화를 했다. 사위가 부산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어 부산 기장으로 이사를 해야 한단다. 수원에서 자리를 잡나 했었는데, 갑자기 집도 구해야 하고 이사를 간다는 말에 당황했었다. 젊은이들이기에 잘 해결하리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우선 집을 구입해야 한단다. 아비가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움으로 부산 기장으로 거처를 옮긴 지 두 해가 지났다. 얼마 전 겨울이 다가 올 즈음에 딸아이가 전화를 했다. 크리스마스 때 부산에 내려와 같이 지내자는 제안이었다. 어쩔까를 망설이다 가 보기로 결정했다.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손녀도 볼 겸 꾸역꾸역 짐을 꾸려 부산으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IMG_E0471[1].JPG

혹시, 딸아이에게 허술한 아비의 모습일까 두려워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머리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옷도 이왕이면 깨끗하게 차려입었다. 늙어가는 아비가 축 늘어진 어깨와 허름한 행색에 언짢아하면 어떨까? 늘 고심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일이다. 가능하면 아이들이 돈 들이지 않도록 하며 하룻밤이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고 혹시, 사위가 불편하면 어떨까 가 늘 조심스럽다. 아무 때나 찾아가도 정성껏 맞이해 주는 딸 내외가 고맙지만 조금이라도 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저녁때가 되자 사위가 일찍 퇴근해 들어온다.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려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아내만 따라나섰다. 근처 아웃렛에 들러 구경을 하고 들어와 저녁 준비를 한다. 사위는 서둘러 집을 나서는 이유는 장인이 좋아하는 회를 준비하기 위함이리라.


근처 유명 횟집에서 주문한 대방어가 도착했다. 몇 년 전, 제주도에 들러 대방어의 진면목을 만난 후에 처음으로 대방어를 만났다. 딸과 사위 덕분에 맛있는 대방어로 포식을 했다. 부산으로 이사오길 잘했다는 말에 딸과 사위는 웃고만 있다. 부인할 수 없는 타인의 말이지만 본인들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 덕분에 오랜만에 푸근한 저녁을 마치고 내일은 대변항을 찾기고 했다. 오래전, 남해에 들러 만났던 멸치 쌈밥이 생각나서였다. 국물이 자작자작하게 졸인 멸치조림, 거기에 하얀 쌀밥이 만났다. 마늘과 매콤한 청양고추도 빠질 수 없는 단골 메뉴다. 푸르른 상추에 올린 하얀 쌀밥에 짭짜름한 멸치조림을 얹는다. 청양고추와 마늘맛이 더해지면 남해 바다가 가득 입으로 오는 맛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찾아가는 남해, 어찌 그 맛을 잊을 수가 있다던가?

IMG_0476[1].JPG 대변항의 모습

아침에 일어나니 남쪽이라 그런지 춥지 않다. 서둘러 도착한 대변항,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곳곳에 서 어민들이 분주하지만 손님들은 보이지 않는다. 갖가지 멸치를 고르고 정리하느라 바쁜 항구엔 찬바람만 오가는 풍경이다. 곳곳에 오징어를 말리느라 분주하고 곳곳엔 각종 건어물이 가득하다. 추위를 무릅쓰고 도착한 항구엔 비릿한 생선 냄새가 가득하다. 쫄랑거리며 따라오는 손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연신 킁킁거리며 비린 냄새를 찾아 나선다. 비릿한 생선 냄새가 맛이 있어 그런단다. 한참을 웃고 말았다. 딸아이의 어린 모습을 보는 듯해서이다. 딸아이가 좋아했던 비릿한 냄새, 그 맛을 그의 딸이 알아 채린 것이다. 아내와 한참을 웃다 멸치 쌈밥을 찾아 식당에 들어섰다.


남해에서 만났던 멸치 쌈밥, 푸른 상추가 있고 자작자작하게 졸인 멸치가 있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멸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였다. 여기에 맛깔난 된장과 미역국이 제대로 된 멸치맛을 돋워 주었었다. 대변항에서 만난 멸치쌈밥은 달랐다. 우선은 멸치의 크기가 달랐고, 멸치의 정돈 상태가 달랐다. 큼직한 멸치를 손질하여 한 움큼 넣고 자작자작하게 졸였고, 멸치 위에는 방아잎이 놓여 있다. 고소한 통깨가 아닌 방아잎의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언젠가 베트남 쌀국수를 먹으며 만났던 하노이 생각이 난다. 도저히 먹을 수 없어 고수를 빼고 먹었던 기억이다. 방아잎을 걷어내고 먹는 멸치 쌈밥, 남해에서 만났던 쌈밥과는 결이 다른 맛이었다. 적당한 크기의 멸치를 정성껏 조리한 것과는 맛이 달랐다. 큼직한 멸치를 무위에 쏟아 넣고 졸인 멸치조림이었다. 언제 남해를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슬며시 해본다.

IMG_0483[1].JPG 다양한 맛을 주는 멸치

푸르른 상추를 놓고 쌀밥을 한 숟가락 떠 놓는다. 큼직한 멸치조림을 두어 마리 놓고 마늘과 청양고추를 놓고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상큼한 상추 맛에 멸치가 어우러진 바다의 맛이 가득하다. 오랜만에 만난 멸치쌈밥 맛이 듬뿍 들어온다. 오래 전의 추억이 찾아오기에 안성맞춤이다. 오랜만에 찾은 대변항의 모습은 전과는 사뭇 달랐다. 동해안에 있던 오징어가 대변항까지 찾아왔고, 남해에서 만났던 멸치쌈밥이 여기서도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저마다의 포구의 특성이 있고 맛이 있음이 늘 좋았다. 주문진의 오징어가 있어야 했는데, 서해안 신진도에 오징어가 등장했고 대변항에도 등장했다. 동해와 서해가 구분 없고 남해도 닮아가고 있었다.


곳곳의 상점에는 갖가지 종류 멸치들이 선을 보인다. 작은 것에서부터 커다란 멸치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음에 신기하다. 저렇게도 작은 멸치를 어떻게 건져 올렸을까? 수많은 날 잡아 올려도 끝도 없이 내어주는 바다가 신기하기도 또, 고맙기도 하다. 한없이 내어주는 바다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를 가늠해 보기도 한다. 먹거리를 주고 삶의 여유와 그리움을 주는 넓은 바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바다다. 자그마한 어촌에 물미역이 넘쳐나고, 넘치는 생선을 말리던 대변항이었다. 물밀듯이 찾아드는 삶의 변화는 자그마한 어촌도 확연이 바꾸어 놓고 말았다. 멸치와 검푸른 미역을 만나러 왔던 시골스런 대변항은 없고, 많은 변화의 물결이 스며든 도심의 항구가 되었음에 서럽기도 한 대변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