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낙동강 자전거길 풍경)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넓은 들판 길을 따라 달려가는 친구들, 고등학교 친구들이니 거의 50년이 되는 친구들이다. 행동을 보면 생각까지 알 수 있는 친구들과의 어울림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끔 막걸리를 마시며 삶의 고단함을 나눈지도 오래되었다.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들길에 나섰다. 한 여름이니 멈출 만도 하지만 아직은 어림없단다. 힘차게 페달을 밟아가는 늙어가는 청춘들의 허벅지가 대변해 준다. 아직은 멈출 수가 없는 자전거 길이다. 은퇴를 하면서 시간을 무엇하면서 어떻게 지낼까? 커다란 고민 중에 하나였다.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을 논하던 중, 술김에 친구들과 어울려 자전거를 덜컥 사고 말았다. 기백만원씩 주고 산 자전거는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아빠의 체면에 아내의 눈치도 있고 돈이 아깝기도 해서다. 처음에 올라앉은 자전거 안장이 주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몇 키로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야 했고,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는지 망설여야 했다. 서서히 고집을 피우며 시작한 자전거, 머나먼 자전거 길이 시작되었다. 몇십 킬로씩 반복 연습하면서 백여 킬로의 자전거 길이 거뜬하게 되었다. 한 번에 수십 킬로는 기본이요, 하루 종일 달려가는 자전거 길이 된 것이다. 모두 친구들과 어울림이 만들어 준 자전거 길이다.
서서히 속도를 높여 나간다. 맞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전진한다. 느닷없이 휙 하고 지나가는 젊은 청춘들이 있다. 싱싱한 허벅지가 꿈틀대는 젊은이들이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가는 또 다른 젊은이, 넋을 놓고 바라본다. 와, 저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 나의 청춘시절은 어떻게 보냈을까? 왜 저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나의 청춘은 흘려보냈을까? 삶이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삶인가? 우연히 자전거 길에 오른 노부부를 만났다.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한단다. 서두름이 없고 느긋한 자전거 길, 인천에서 시작해 전국을 누비고 있단다. 아무 걱정도 없다는 듯이 유유히 강가를 지나간다.
시원한 강가를 지나 들길로 접어들었다. 벌써 벼가 자라 논 자락을 덮고 말았다.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과 함께 자연의 위대함을 알게 한다. 서둘러 페달을 밟아 가는 들판, 농부들의 발길이 바쁘다. 논둑을 정리하고, 물꼬를 보는 신식 농부들이다. 삽자루를 뒷짐에 쥐고 거닐던 농부의 모습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논둑 곳곳에는 번듯한 트럭이 서 있고, 커다란 승용차가 자리 잡고 있다. 가까스로 지날 수 있었던 논둑길이 넓은 차길로 변했다. 트랙터가 논길을 오가고 대형 농기계가 바쁘게 움직인다.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들판에 가득하다. 오래전 일본을 여행하면서 부러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지런히 정리된 시골집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형형색색 원색이 칠해진 지붕이 부러웠고, 들녘에 세워진 차량들이 낯설었다. 우리는 언제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순식간에 세월은 변했고 이젠 전혀 부럽지 않은 세월이 되었다. 등짐으로 농사를 짓던 시절은 지나갔다. 굽은 허리로 나락을 지어 나르던 아버지 세대는 어느덧 오래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등짐을 지던 아버지들이 만들어 놓은 논길이 차 길로 변했다. 논둑에서 밥을 먹던 시절은 가고 짜장면을 시켜 먹는 시대가 되었다. 논둑길에 오가던 곁두리는 볼 수 없고, 곳곳에 들어선 뷔페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어스름한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 낮에 잠깐 붙였던 낯 잠이 깨운 모양이다.
서둘러 냉장고를 살며시 열어보니 사과가 있고, 요구르트와 빵이 있다. 사과 하나와 요구르트 한 개, 그리고 빵을 배낭에 넣었다. 성스런 아침을 챙기는 것이다. 여기에 물 한 병을 자전거에 싣고 슬며시 들판으로 나섰다. 곳곳에 뿌연 안개가 감싸고 있는 시골길이 신선하다. 앞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에 숨이 멎을 것 같다. 신선하고도 달큼한 이런 공기를 어디서 맛볼 수 있을까? 서둘러 자전거길을 달려 들판 한가운데 쉼터에 앉았다. 한동안 땀을 흘려 출출하던 차, 빵과 과일을 꺼내 아침상을 차렸다. 맑은 공기 속에서 성찬을 먹는 기분, 어느 진수성찬과도 비교할 수 없다. 세상에 이런 밥상을 어디서 받아 볼 수 있다던가? 자주는 아니지만 아침 자전거에 올라 들판을 나서는 이유다.
친구들과 어울려 들판을 가로지른다.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가 오가고, 맑은 공기 속에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다. 고희의 친구들과 아직도 들판길을 오갈 수 있음이 감사하다. 느닷없이 구름이 몰려오고 하늘이 어둑어둑해진다. 늦게 온다는 비가 서두르는 모양이다. 서둘러 길가의 쉼터로 들어섰지만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비는 오지만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한가한 쉼이다. 세상에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친구들과의 한가함이다. 빗소리가 들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멀리 대청호에서 하늘 높이 치솟은 분수가 가뭄 속의 단비를 축복해 준다. 비가 그칠 기미가 없더니 빗줄기가 잦아들었다. 자전거에 올라 달리는 중에 느닷없이 빗줄기가 굵어진다. 옷은 젖고 굵은 빗줄기는 그칠 기미가 없지만, 친구들과의 자전거길은 여전히 멈출 수가 없다. 친구들과 어울려 전국의 자전거 길을 찾아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