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닭갈비 이야기)
인류의 역병 코로나19가 전 국민에게 알게 해 준 문명의 이기, 큐알코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이른 점심시간이지만 벌써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춘천 닭갈비 집의 풍경이다. 오래전부터 닭갈비를 맛보러 200여 km의 춘천을 오고 갔다. 물과 낭만의 도시를 찾아 춘천의 맛을 보고 싶어서다. 애초에 춘천 시청 앞의 닭갈비집을 찾아가곤 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었는데, 몇 해 전 친구들과 자전거를 끌고 춘천을 찾았다. 아름다운 물구경을 하면서 소양강 처녀를 만나기 위해 발길을 서둘렀다. 춘천 호반을 돌아 소양강을 오르는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줄 서는 곳을 발견했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 찾아간 맛집, 유명한 춘천 닭갈비집이었다.
자전거를 한나절 탄 후에 만난 닭갈비, 두고두고 잊지 못할 맛이었다. 전에 만났던 닭갈비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머릿속에 잠재해 있던 춘천 닭갈비 맛, 맛깔난 맛에 반해 아내와 두어 번 찾아갔었다. 맛있는 음식 앞에 갑자기 아이들 생각이 났다. 수원과 부산에 아이들에게 보냈더니 환장할 맛이란다. 오늘도 그 맛을 찾아 춘천 닭갈비 집을 찾은 것이다. 얼마 전엔 방송에도 방영되었다는 곳으로 여전히 사람이 붐빈다. 닭갈비 집의 좋은 점은 맛도 대단하지만, 속도가 대단하다. 손님이 들어서면 물과 수건이 오고, 주문하면 바로 음식이 온다. 또 한 가지는 반찬의 종류가 간단해 좋다. 시원한 물김치에 열무김치 그리고 채소와 마늘, 청양고추가 전부다.
이른 봄철,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온다. 작은 안마당엔 닭 식구들이 모였다. 투실투실한 암탉이 노란 새끼들을 몰고 다닌다. 요리조리 부리로 쪼아가며 먹거리를 찾아 준다. 새끼들은 끼리끼리 힘을 겨루며 먹이 따라 몸을 놀린다. 한가한 초가지붕 아래에서 만났던 정겨운 정경이다. 어머니가 초봄에 씨암탉에게 베푼 은혜로 맞이하는 닭들의 삶이다. 더위가 찾아 올 무렵, 중병아리 모습으로 곳곳을 헤집는다. 자그마한 안 마당이 그들먹해지며 골칫거리가 된 중병아리다. 널어놓은 곡식을 헤집고, 텃밭을 넘보면서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던 닭들의 삶이었다.
널따란 불판에 먹음직한 닭갈비가 부어졌다. 언제나처럼 치익 소리가 정겹다. 붉은 양념을 뒤집어쓴 닭갈비가 몸부림친다. 손님이 건드리면 종업원의 눈총을 받는다. 테이블에 정해진 종업원은 없지만 많은 종업원들이 오고 가다 저어 주는 것이다. 적당히 익어가면 뒤집고 저어준다. 젊은이들은 먹는 방법이 다르다. 하얀 치즈를 부어먹고, 라면사리를 넣어 즐긴다. 나름대로 입맛 따라 홀 안이 북적인다. 점심때가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온다. 칸막이를 해 놓았지만 역병에 불안하기도 하다.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 물김치와 열무김치 맛을 본다. 멋진 그릇은 아니어도 감칠맛은 대단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이유를 알게 한다.
중병아리는 서서히 몸집을 불리고 닭의 형태를 갖추었다. 둥지를 만들어 준 헛간, 닭들의 보금자리다. 느닷없이 꼬꼬댁거리면 알을 낳고 알 낳은 유세를 하는 것이다. 계란을 가지고 하는 다양한 요리들,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도시락을 열었다. 노랗고 하얀 계란 푸라이가 나온다. 가슴을 뛰게 하는 노란색인데 친구들이 보면 큰일 난다. 누구 입에 들어갈지 알 수 없어서다. 도시락을 열고 얼른 입안으로 넣어야 한다. 온전이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속도전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 입에 들어갈지 알 수 없다. 계란 하나를 두고도 추억과 그리움이 있던 학창 시절이다. 역사이래 세계의 찬란한 먹거리를 주는 닭이었다. 불판 위에 닭갈비가 서서히 익어간다. 먹어도 된다는 요리사(?)의 분부가 떨어졌다. 서서히 젓가락 운동을 서둘러야 한다.
귀한 상추를 한 장 손위에 얹는다. 상추 위에 잘 익은 닭갈비를 한점 놓고, 마늘과 청양 고추를 올렸다. 뜨겁지만 살살 달래 가며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닭갈비의 맛이 입안으로 퍼지며 덩달아 마늘이 톡 쏘아준다. 여기에 매콤한 청양고추가 맛을 거들었다. 어쩔 수 없이 제 발로 찾아오게 하는 맛이다. 뜨거운 입안을 달래기 위해 상큼한 물김치를 한 숟가락 떠 넣었다. 혀를 살살 굴리며 만나는 환상적이 맛을 끊을 수가 없다. 다시 상추와 깻잎을 손바닥에 펼쳤다. 이번에 닭갈비와 잘게 썬 흰떡을 올렸다. 붉은빛이 돈 닭갈비와 흰떡의 조화도 끊을 수가 없다. 부드러운 식감에 느긋한 배속을 채워주는 닭갈비를 찾는 이유이다. 서서히 불판이 비어 간다. 조금은 아쉽지만 다음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밥을 볶아 먹는 위대한 순간이 남아 있는 것이다.
역사 이래 인류에게 최대 공헌자 닭이었다. 어느 곳엔 소가 우상시되고, 어느 곳엔 돼지고기를 멀리 한다. 완전식품이라는 계란을 멀리할 수 없고, 닭은 언제나 친근하다. 시골집에 단골 식구였고, 치맥 하면 세상이 환장하는 맛이다. 야구장에 빠질 수 없고, 간식으로는 남녀노소를 가릴 것이 없다. 대단한 먹거리요 즐길거리가 치킨이다. 친구들과 그리스 배낭여행을 떠났다.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는 총각, 혼자서 식사 준비를 담당한단다. 계란 프라이에 따끈한 커피 한잔 그리고 빵 한 조각이 아침이란다. 열명이라도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아침 식사였다. 간편하지만 누구든지 해결할 수 있는 식사에 감탄하고 말았다. 세계 여행지 호텔의 아침메뉴에 빠질 수 없는 닭과 계란이다. 삶은 달걀이 있고, 계란 푸라이가 있어 행복한 여행길이 된다. 볶음밥이 준비되었다.
남은 닭갈비가 있고 각종 양념과 김가루가 더해진 밥이 투하되었다. 마지막 남은 열기로 냄새가 가득하다. 지글거리는 불판을 뒤적이는 종업원의 솜씨가 예술이다. 흉내 낼 수 없는 솜씨가 눈길을 잡고 말았다. 몇 번의 손짓으로 먹음직스러운 볶음밥이 탄생했다. 숟가락을 그냥 둘 수 없는 냄새다. 김칫국물 한 숟가락으로 입안을 적시였다. 볶음밥 한 숟가락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뜨겁지만 뜨겁지 않은 따스함에 매콤함과 고소함이 입안에 확 퍼진다. 시원한 김칫국물이 더해진 맛은 그칠 수가 없다. 번갈아 떠 넣는 볶음밥과 시원한 김칫국물이 서서히 막을 내릴 무렵에 섭섭함이 찾아온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다. 하지만 적당한 일 인 분임을 오래전부터 알았기에 숟가락을 놓아야 한다.
아쉽지만 과감히 숟가락을 놓고 일어서야 한다. 조금 더 더해하면 언제나처럼 후회스러움이 온다. 맛깔난 닭갈비 맛을 훼손할 수 있고, 부른 배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고소함에 아름다운 식감을 덜어내는 실수를 한다. 맛을 음미했던 닭갈비의 맛이 혼미해진다. 불편한 더해짐이 맛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잊을 수 없는 아이들 생각이다. 손녀가 너무 좋아해 딸아이는 숟가락만 들어야 했단다. 어미의 마음을 헤아려 어린 손녀도 일 인분으로 챙겨야 하겠다. 위대한 대한민국의 택배의 힘을 빌려 본다. 서울과 부산으로 닭갈비를 부탁하고 닭 갈빗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가끔 찾아오는 춘천엔 언제나 맛과 멋이 있고 그중에, 춘천 닭갈비가 있어 너무 좋다. 어서 진부령을 넘어 속초로 향하는 여행길을 서둘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