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설악과 동해 바람이 섞여 있다.

(속초여행을 하다, 속초 영랑호)

by 바람마냥

구질구질한 장마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기도 했고, 삶이 망가지기도 했다. 인간이기에 감히 덤벼볼 수 없는 자연의 힘, 이제나 저제나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할까? 가끔 찾아가는 동해안 여행을 망설이게 한다. 오래전, 아마 30 여전부터 콘도를 준비해 놓고 찾아가던 동해안 여행길이다. 거대한 설악이 반겨주고 청초호가 반겨주는 곳이다. 시원한 산 바람에 바닷바람이 섞이면 숨이 멎는 곳이다. 할 수 없이 예약을 취소해야 하는 장맛비가 계속되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참을 기다리자 궂은 날씨도 지친 모양이다. 어느 맑은 날을 택해 하늘도 모르게 동해안 여행길에 올랐다. 어느 길을 택할까?


동해를 찾는 길은 다양해 좋다. 강릉이 보고 싶으면 대관령을 택하고, 가끔은 월정사를 보고 시골풍의 진고개를 통해 주문진으로 향하기도 한다. 한계령이 보고 싶으면 굽이굽이 인제를 지나 한계령에서 커피 한잔에 멋진 설악을 마주할 수 있다. 인제를 지나 한계 교차로에서 우측으로 가면 한계령을 만나고, 좌측으로 길을 잡으면 두 고개 길을 만날 수 있다. 눈 쌓인 용대리 황태덕장을 보고 미시령을 통해 속초로 간다. 북쪽의 고성을 보고 싶으면 용대리에서 좌측으로 길을 잡아 진부령으로 향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길이 추가되었다. 호반의 도시 춘천을 통해 가는 길이다. 느릿하게 춘천 닭갈비를 만난 후, 화천과 양구를 지나 속초로 향하는 길이다. 이번엔 대관령을 찾아 길을 잡기로 했다.

IMG_1406.JPG 하조대에서 만난 풍경(수채화, 초기 작품)

오랜만에 찾아가는 강릉길, 평일 고속도로는 한산하기만 하다. 경포대에서 시간을 위해 고속도로를 택했다. 휴식을 위한 횡성 휴게소, 어디를 가도 휴게소는 우리나라가 으뜸임을 실감한다.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는 최적의 휴식공간이다. 어느 나라 고속도로 휴게소가 이럴까?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나선 고속도로는 소통이 원활하다. 한가함을 가득 안고 도착한 강릉 경포대, 여름이 끝난 바닷가 모습이다. 인적이 드문 바닷가엔 외국인들만 북적인다. 따가운 햇살 아래 몸을 드러내고 귀한 햇살을 맞고 있다. 파란 하늘 아래 만나는 햇살은 소중한 우리의 재산인데 우리만 모르고 살고 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 북유럽이나 아이슬란드에선 만날 수 없는 귀한 햇살이다. 유럽인들이 웃통을 벗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한다. 오랜만에 찾아온 강릉 경포대 바닷가다.


그네 의자가 한가하게 비어 있다. 이런 횡재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커피 한잔을 안고 바라보는 동해안, 평화롭기 한이 없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경포대, 오랜만에 만난 한가함이다. 바람이 밀어주는 그네 의자에 앉아 오래전 7번 국도 자전거 길에서 만났던 기억을 꺼내본다. 한가로이 바라보는 경포대 바닷가, 오래전에 찾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유명한 수학여행 코스, 꾸역꾸역 버스를 타고 달려왔던 경포대 해수욕장이었다. 한번 왔다 가면 큰 여행을 했던 것으로 기억되었던 경포대다. 사람들로 북적여 발을 디딜 틈이 없었던 여름이었다. 경포대 해수욕장은 방문만으로도 으쓱한 기분을 얹어 주는 곳이었다. 여기에 주문진 오징어 한축이면 여행의 모든 것이 해결되던 곳으로, 여행의 백미를 장식해주는 여행코스였다.

IMG_2355[1].JPG 여름이 지난 경포대

여름의 끝자락에 앉아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주문진 수산시장으로 향한다. 언제나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시장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살아있는 생선이 있는가 하면, 활기찬 사람들로 가득하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눈동자가 헤매고 만다. 사람마다 눈이 마주치길 바라기에 눈을 둘 곳이 없어서다. 오늘도 눈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수산시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광경이다. 서둘러 시장 구경에 나섰다. 싱싱한 생선이 가득한 좌판 옆엔 어김없이 긴 장화를 신은 여장부들이 서있다. 오가는 손님과 눈을 마주치면 어김없이 다가와 흥정을 한다. 언제나 시장은 활력이 넘치는 곳으로 오늘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싱싱한 생선을 사야 하기에 내일 다시 찾기로 하고 속초로 길을 서둘렀다. 속초에도 갈 곳이 있기 때문이다.


속초엔 중앙시장, 사람에 밀려 들어가고 밀려서 나오는 곳이다. 젊은이들로 가득해 가끔은 민망하게 보이기도 한다. 입구부터 긴 줄은 먹거리를 사기 위한 행렬이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아내에게 슬며시 미루고 만다. 얼마나 맛이 있기에 저런 행렬을 이루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민망함에 발길을 서두른다. 간단히 먹거리를 장만하고, 활어회 시장으로 향했다. 여기서도 눈길을 둘 곳이 마땅치 않지만 조금 안심이 되는 이유는 단골집이 있어서다. 서글서글하고 맺고 끊음이 확실한 주인장이다. 얼른 회 한 접시를 안고 시장을 벗어났다. 사람 물결에 밀려 나오고 만 것이다. 젊은이들이 넘치는 곳,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젊은이들이다.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줄 세우고 있다. 역시 젊음은 위대하다는 생각으로 콘도로 숨어들고 말았다.

IMG_8825.JPG 설악은 웅장하다.

숙소에 도착해야 하는 것도 별로 없다. 다만, 온천욕을 하고 잊은 일상 속에서 잠시 쉬어 갈 뿐이다. 준비해온 해물을 펼쳐 놓고 아내와 소주 한잔을 나눈다. 아무런 말도 없고 상념도 없이, 소주 한잔 나누며 편안한 하루를 보낸다. 어제 것을 생각하고 내일을 생각하는 삶, 여기에선 지금만 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몰라 찾는 곳이다. 생각을 비우고 살아가는 하루가 신선하다. 일어나 보니 밝은 아침이다. 설악 바람과 동해 바람이 섞여 있다. 이렇게 신선할 수 있을까? 밝은 햇살이 넘어온 울산바위 밑에서의 하루 저녁, 다시 올 수 없는 하루다. 간단히 아침을 마치고 찾아가는 곳은 속초의 유명 맛집, 막국수 집이다. 11시는 되어야 문을 여는 곳, 늘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곳이다. 아직 시간이 넉넉하니 어디를 갈까? 오늘은 늘 찾던 청초호를 뒤로하고 영랑호를 찾아보기로 했다.


속초에 들르면 찾아가는 것은 청초호였다. 청초호는 미시령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흐르는 청초천이 속초시를 거처 청초호로 흘러들어 선박들이 풍랑을 피할 수 있는 천연적인 석호다. 약 5km의 호수 주변을 산책하고 근처의 아바이 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이었다. 오늘은 영랑호를 찾기로 했다. 장천천에서 흘러든 물이 영랑교를 통해 동해와 연결되는 자연 석호다. 둘레가 약 8km 정도 되는 영랑호는 속초시 장사동과 영랑동, 동명동과 금호동으로 둘러싸여 있다. 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멀리는 울산바위가 내려보고 있고, 맑은 물이 가득 담긴 호수에 울산바위가 내려왔다. 호수 위를 찾아온 동해 바람과 설악의 맞바람이 몸을 섞었다. 기분이 상쾌하다 못해 짜릿함을 안겨주는 아침이다.

IMG_8833.JPG 동해는 위대하다(통일 전망대에서)

호수를 따라 만들어진 길엔 자동차와 자전거 그리고 사람이 동시에 다닐 수 있다. 참 기발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호숫길을 벗어난 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설악과 영랑 호수,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한 현지인,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속초시란다. 호수가 있고 바다와 산이 있는 곳을 말해 보란다. 있을 수가 없는 도시, 살기 좋은 명소가 속초시란다. 한참을 앉아 맑은 공기에 영혼마저 헹군다. 둘레길엔 걷는 사람이 있고, 뛰는 사람이 있다. 자전거에 올라 있는 여인들도 보인다.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설악을 마주하며 아침을 맞는다. 현지인의 말대로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전경이다. 가슴에 영랑호와 울산바위를 가슴에 담고 막국수집으로 향했다.


영랑호를 지나 청초호 방향으로 길을 잡자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언젠가 찾은 속초, 경찰 아저씨가 알려준 맛집이다. 춘천 막국수가 아니라 속초 막국수집이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메밀면을 말아주는 집이다. 어떻게 그리 맛깔난 맛을 전해 줄까? 속초 이마트 뒤편에 자리한 막국수집, 언제나 긴 행렬이 자리하는 곳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같은 재료로 만드는 막국수인데 맛과 풍미가 다르다. 메밀국수에 얹힌 동치미 국물, 시원하지만 국물 속엔 은근한 향이 있다. 아이들은 언제나 곱빼기를 주문한다. 벌써 젊은이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속초에 오면 반드시 찾아오는 곳, 오늘도 막국수는 실망시키지 않는다. 은근한 향과 맛에 반해 후딱 먹고 나선 문 앞엔 벌써 긴 행렬이 또 늘어서 있다. 설악 산바람과 동해 바닷바람이 만난 곳, 속초에서 하루를 맛깔난 막국수로 정리하고 삶의 터전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