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레미파'에 또 망설인다.

(삶에 도전장을 내다, 쿠바에서 만난 풍경)

by 바람마냥

진동으로 해 놓은 전화기가 부르르 떤다. 무슨 전화인가 확인했더니 모르는 전화번호다. 모르는 전화번호는 잘 받지 않는다. 자금을 대출해 준다든지, 아니면 상조회나 보험에 들으라는 전화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나를 생각해 주었냐며 되물어 본다. 특정지역 번호가 보이면 받지 않으면서 저 지역 사람들은 전화도 못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울리는 전화번호는 개인이 하는 전화번호였다. 틀림없이 색소폰에 관한 전화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는다.


예상한 대로 색소폰 동호회에 관한 전화였다. 색소폰 동호회의 한 달 회비는 얼마이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느냐는 전화이다. 지나는 길에 전화번호를 확인했단다. 10여 년 전부터 색소폰 동호회를 운영하면서 연습실을 가지고 있다. 연습실은 지하에 있는 30여 평 규모로, 제법 큰 연습실이다. 다섯 개의 개인 연습실과 커다란 합주 공간이 있다. 일주일에 두 시간씩 전문강사 지도를 받고 있다. 나머지 시간은 회원 모두가 언제든지 이용할 수가 있는 공용 연습실이다.


연습실 앞엔 커다란 안내 간판에 내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이 번호를 보고 전화를 한 것이다. 자주 받는 전화이다. 어렵게 한 전화이니만큼 친절하게 받는다. 이것저것 가입절차와 동호회 활동 등을 묻는다. 동호회에 가입하고 싶단다. 개인적으로 악기도 구입해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적당한 시간에 시간 약속까지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오늘이라도 금방 올 태세이다. 기다려 봐야 알 일이다.


가끔은 술 한 잔 하고 얼큰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불그레한 얼굴로 떼를 지어 오기도 한다. 술 한 잔 하고 지나던 순간, 지하에서 들려오는 색소폰 소리가 그럴듯하다. 용기를 내어 우르르 몰려온 것이다. 정성껏 음료수를 대접한다. 색소폰에 관한 내용과 동호회 운영 등에 관해 설명해 준다. 다음 주부터 동호회에 가입할 거란다. 모두가 의기양양하다. 나도 색소폰을 배우고 멋진 연주를 할 날을 상상하는 것이다. 전화로 문의 한 사람, 연습실을 찾은 사람의 대부분은 그것으로 끝인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왜 전화를 하고 또 찾아왔을까?


사람이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기엔 망설여짐이 당연하다. 어느 영역이든지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당장은 음악을 배운 지 오래되었으니 도레미파의 위치도 가물가물하다. 내가 할 수 있을까도 걱정이 된다. 악기를 구입하는데도 꽤 많은 돈이 필요하다. 중간에 그만두면 돈만 버리는 것 같아 고민이 된다. 동호회에서는 멋진 소리가 난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닌가? 섣불리 가입해 나만 버벅거리고 있으면 창피해서 어떨까? 참 난감할 것 같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


모든 것을 무릅쓰고 동호회에 가입했다. 다른 사람들은 멋지게 연주하는데, 나는 '도레미파'부터 연습을 해야 한다. 나이 먹어서 이것을 해야 하는가? 회의감이 든다. 회원들이 모여 앙상블을 이루며 멋진 합주를 하고 있다. 능수능란하게 악보를 읽으며 현란한 동작으로 악기를 연주한다. 다시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음악에 소질이 없나? 창피함을 무릅쓰고 이것을 해야만 하나? 회비를 내고 악기까지 구입했으니 고민이 생긴다. 큰 소리를 쳤으니 그만둘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처하게 되었다. 가입할 때의 용기로 며칠 버티다 그만두고 만다.


동호회 회원 대부분은 음악에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다. 회원이 10여 명 되는데, 음악을 전공하거나 음악에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악보도 읽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색소폰도 모르고, 음악도 모르던 사람들이다. 처음에 불편하고 부담스러움을 안고 시작한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머뭇거리던 사람들이다. 올까 말까를 수 없이 망설이고 다만, 멋진 연주를 위해 용기를 낸 사람들이다. 힘겨워도 수시로 찾아와 연습을 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처음부터 연주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누군들 별 수 있나?


어렵게 시작한 동호회에 가입한 지 그럭저럭 일 년이 지났다. 강사와 동호회원들의 지도를 받으며 저녁마다 연습했다. 피나는 연습을 하며 일 년을 보냈다. 버벅거리지만 간단한 곡 연주도 할 수 있다. 서툴지만 합주도 대충 따라갈 수 있게 되었다. 연말 연주회 준비를 해야 한단다. 연주회는 합주를 하기도 하지만, 개인별 연주를 해야 한단다. 큰일이 났다. 가족과 친지들을 불러 놓고 연주를 해야 한단다. 연주곡이 결정되고 리플릿까지 인쇄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연습뿐이다. 입이 부르트도록 연습을 하고 또 한다. 동호회원들 앞에서 버벅거리며 연주를 해 본다.


연주회날이 다가왔다. 몸도 떨리고 앞에 앉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신경안정제를 먹어 볼까 망설이고, 청심환을 먹어 볼까도 생각해 본다. 수많은 긴장 속에 연주회가 시작되고, 그런대로 개인 연주도 성공리에 끝났다. 순수한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많은 군중 앞에서 나름대로 멋진 연주를 마쳤다. 마음이 뿌듯하고 무엇인가 이루어 낸 기분이다. 가족에게도 할 이야깃거리도 생겼다. 나도 색소폰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어렵게 연말 연주회가 끝났다. 열심히 연습을 한 결과 연주 실력은 부쩍 향상되었다. 망설이고 주춤거렸지만 용기를 내서 도전한 결과이다. 어렵지만 도전하고 보니 삶의 놀이거리가 생긴 것이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해 볼만한 도전이었다. 살면서 세상엔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어렵다고 망설이면 평생 머뭇거리며 세월만 보내고 만다. 무엇이든 도전장을 내밀어 삶의 놀이거리를 만들어 봄직하다. '도레미파'에 머뭇거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다 보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