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길의 봄날, 아카시 꽃)
아침 일찍 나서는 시골길, 부지런한 농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바쁜 계절에 수선을 떠는 자전거길 같아 얼른 언덕을 내려가야겠다. 늘 미안한 생각에 일찍 출발했어야 했는데 조금은 후회스럽다. 내려가는 언덕길엔 푸르름이 밭을 가득 채웠다. 며칠 전엔 점 푸름으로 배추가 자리했었는데, 벌써 줄 푸름으로 세를 불렸다.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농부들의 정성을 먹고사는 고랭지 배추밭이다. 곳곳에 끝이 없는 배추가 가득한데, 논에는 벌써 모를 심기 시작했나 보다. 반듯하게 줄을 맞추어 심어 놓은 논도 있고, 아직 물만 가두어 놓은 논도 보인다. 얼마 되지 않아 번듯한 논 자락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래전에 많은 추억을 주던 논이다. 길게 줄을 지어 한 손에 모를 쥐고, 다른 손으로 모를 심었다. 논두렁 양쪽으로 줄을 띄워주는 사람이 있고, 줄에 맞추어 모를 심었다. 버거운 허리를 부여잡고 고단함을 참아내면 행복한 새참이 찾아왔다. 논두렁에 앉아 먹는 새참, 사람의 정이 있고 그리움이 있었다. 누구나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모 밥이었다. 하얀 쌀밥에 노란 콩나물무침과 기름소금 콩볶음은 빠질 수가 없다. 가끔은 검은 털이 숭숭 있는 돼지고기도 등장했다. 오랜만에 진수성찬으로 논두렁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 정신을 차리고 내려가는 언덕길엔 하얀 찔레꽃이 가득하다. 널따란 개울 따리 피어 있는 찔레꽃이 물속에도 가득 피었다. 먼 하굣길을 붙잡아 놓던 그 찔레나무다.
허기진 배를 잡고 집으로 향하는 하굣길, 찔레순이 가득한 숲으로 향한다. 찔레순을 꺾어 잎을 따내고 먹는 찔레순, 달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었다. 손으로 한 움큼을 들고 먹던 그 찔레나무 순이다. 다시 언덕을 올라 내려가는 길엔 하얀 꽃들이 가득 피었다. 이웃 동네엔 지고 없는 꽃들, 아카시 꽃과 이팝나무 꽃이다. 해발이 높아 이제야 피기 시작한 하얀 꽃들이다. 밑으로는 노란 애기똥풀이 가득하고 아카시 꽃이 하늘에 걸렸다. 바람 따라 일렁이는 모습이 넋을 놓고 만다. 덩달아 풍기는 향긋함은 콧등을 실룩거리게 하고, 벌름거리던 코를 닫고 내려가는 길엔 하얀 이팝나무가 가득하다. 이팝나무의 맑은 꽃이 하늘을 가득 덮었다. 환상적인 길을 달리는 자전거길이 힘이 들 리 없다. 곳곳에 피어 있는 하양의 잔치가 끝날 줄을 모른다.
야트막한 산 밑에 있는 언덕 밭엔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지난해엔 어르신 내외가 배추농사를 하던 곳이다. 어르신들은 보이지 않고 젊은이들만 보인다. 유모차에 몸을 의지해 밭 나들이를 하던 할머니와 할머니를 부축해주던 할아버지였다. 언제나 정다운 모습으로 배추 농사를 일구던 내외였다.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 어르신들이 궁금하다. 어떻게 되셨을까? 궁금함을 뒤로하고 나서는 자전거길, 멀리서 여름 뻐꾸기가 싱겁게 울어댄다. 뻐어꾹~~ 뻐꾹~ , 어디로 가는 것일까? 조용한 초가집을 깨워주던 여름 뻐꾸기다. 조용히 낮잠에 졸고 있던 초가집, 한가롭게 뻐꾸기가 울며 지나간다. 덩달아 따라가는 눈동자는 아직도 졸음에 젖어 있다. 멀리 날아가는 여름 뻐꾸기를 생각하는 사이 작은 냇물이 보인다.
맑은 냇물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시골길, 키즈 캠핑장이란 팻말이 보인다. 오래전에 아이들이 가득하던 초등학교 건물이다. 오랫동안 텅 비어 있어 폐교 모습이었던 곳이다. 시골에도 아이들이 줄어들어 기어이 문을 닫았던 초등학교, 주인을 만나 야영장으로 변신했다. 밝은 색으로 단장하고 많은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 주고 있다. 곳곳에 텐트가 보이고, 어린이들이 즐겁게 뛰어놀고 있다. 삶의 패턴이 이렇게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캠핑장이다. 캠핑장 주변 논자락엔 모를 심었고, 멀리는 이앙기가 논을 휘젓고 다닌다. 남은 논자락에 모를 심는가 보다. 푸름을 주던 논자락,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모를 심고 정리해야 하는 논둑엔 푸름이 없이 누런 모습 때문이다. 제초제가 만들어 놓은 누런 모습이 어딘지 마음에 걸리는 논자락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르는 길가에도 이팝나무가 가득하다. 산에는 하얀 아카시 꽃이 여전히 세를 과시하고 있다. 저렇게도 많은 아카시나무가 있었나? 다시 한번 생각하며 달리는 자전거길이다. 멀리서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시골 들판을 잔잔하게 만들어 주는 종소리다. 하얀 꽃들이 가득하고, 널 따라 논자락엔 줄을 맞춘 모가 심어져 있다. 푸르른 산은 하양으로 물들어져 있고, 여기에 평화로운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덩달아 산에서 내려온 아침 바람이 이마의 땀까지 씻어 주는 자전거길이다. 자전거가 없으면 어떻게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가고 싶은 대로 가고 막히면 되돌아오면 된다. 삶도 그렇게 할 수 없을까? 쓸데없는 생각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평화스러움이 있으며 마음까지 씻어 주는 자연이 가득한 시골길이다. 오늘따라 깊어지는 봄이 아쉬워지는 아침, 여기는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는 골짜기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