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청춘은 또, 도전을 한다.

(수채화 이야기, 동해에서 만난 파도)

by 바람마냥

늙어가는 청춘은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 고단하기만 하다. 시간을 어떻게라도 더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 일도 해 보고, 저 일도 해보고 싶지만 모든 일이 만만치 않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또 확인하고 만다. 왜 이렇게 어렵지? 남들은 쉽게 하는 듯한데 어렵기만 하다. 긴 세월이 흐르고 나서 그럴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피나는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연습을 해야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상상할 수 없는 노력 끝에 전문가의 모습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사람, 그림을 전혀 알지 못했을 때의 기억이다.


화가는 그림을 그냥 그리는 줄 알았다. 쉽게 한 작품을 그리고 또 그려내는 줄 알았다. 전혀 고민도 없고, 어려움도 없는 그림이려니 했다. 참, 어리석고도 무식한 생각이라는 것은 금방 알고 말았다. 수채화를 시작한 지 10년이 되어 간다. 아직도 어렵기만 한 수채화다. 어렵게 시작하게 된 수채화의 세상은 대단했다. 알 수 없는 신비함이 숨어 있는 수채화의 세계였다. 물감의 섞임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물과의 어울림이 그렇게 어려운 줄을 몰랐다. 물감과 물감이 만나는 신비함에 넋을 놓았다. 신비함은 적당한 양의 물에, 적당한 양의 물감이 적당한 시간을 기다려줘야 했다. 과연, '적당한'이라는 말이 얼마를 뜻하는 것일까?

IMG_8164.JPG 전국대회 장려상 작품

아무리 먹어 봐도 엄마의 밥보다 맛있는 밥은 없다. 엄마의 밥을 해보기로 했다. 도저히 엄마의 손맛이 나오지 않음을 알게 된다. 유심히 바라보고 따라 하지만 용납하지 않는 맛을 엄마는 대충대충 하는 것이었다. 계량도 필요 없고 엄청난 식재료도 아니었다. 쉬운 것 같아 따라 해 보지만 맛이 나지 않고,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맛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남편과 아이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어느 순간, 어머니의 맛이 슬슬 나기 시작했다. 긴 세월 동안 무한한 노력과 시간으로 만들어진 음식이었다. 어머니의 밥이 그러했고, 나의 음식이 그러한 것이었다. 고단한 노력과 세월의 무게를 이길 수는 없는 것이었다. 수채화를 시작하면서 이 사실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수채화를 시작하면서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 알았다. 어렵지만 꾸준히 수채화를 해보기로 했다. 나와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기 싫어도 그리고, 시간이 없어도 그려보기를 반복했다. 실망과 절망 속에 시간은 묵묵히 흘렀다. 실망과 절망의 시간이 10년이 된 것이다. 서서히 '적당한'양과 시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스승이 전하는 말과 뜻을 서서히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도저히 알 수 없는 언어들이 이제야 들어옴을 알게 한다. 조금 더 해야겠구나! 조금은 힘들어도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가끔 수채화 공모전에 출품한다. 지역사회의 공모전은 보는 눈이 많이 달라 대개는 사양하지만, 그럴듯한 공모전엔 가끔 응모했다.

IMG_0660.JPG 다시 또 그려보고 싶은 파도

지난해, 서울 강서 문화원에서 실시하는 겸재 미술대전에 작품을 응모했다. 공평한 눈과 잣대를 갖고 있다는 대회, 오래전에 여지없이 외면당했던 공모전이다. 웬만한 공모전에 입선 정도는 가능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회원들과 어울려 제출한 작품이 생각지도 않은 장려상을 받았다. 대상이나 최우수상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차, 장려상이란다. 하지만 장려상도 대단한 상임을 알게 되었다. 생전 알지 못했던 수채화를 전국의 유명 대회에서 장려상이란다. 동호회원들의 대단한 축하를 받았다. 거금(?) 100만 원을 상금으로 받았다. 축하주를 사고, 아내와 며느리 그리고 손녀에게 인심을 쓰고 나니 남는 것은 적자였으나 기분만은 괜찮았다. 괜찮은 장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다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지난겨울 수채화 소재를 찾아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아내와 함께 동해안 파도를 찾아 나선 것이다. 거진항의 동해안 파도를 보기 위해서다. 거센 바람 속에 수많은 사진을 얻고 돌아왔다. 멋진 파도와 햇살 그리고 바람이 만들어 주는 파도는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추위를 무릅쓰고 만들어 낸 파도 장면,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소재였다. 긴 시간 파도를 만나 겸재 미술대전에 출품하기로 했지만, 아직 성이 차지 않았다. 서서히 겸재 미술대전에 출품할 작품을 시작했다. 몇 달간의 노력으로 서서히 작품이 마련되었을 무렵, 전국 미술대전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신다. 수채화를 지도하시는 선생님이 한번 도전해보란다. 화가에 입문하는 첫 관문이니 열심히 준비해 도전해 보라는 권유다. 어쩔까? 며칠을 망설이다 아내와 상의 끝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렇게 시작된 무모한 도전은 전국 미술대전이다.

바위를 만난 파도(수채화)

늙어가는 청춘의 도전 대상은 '대한민국 미술대전'이다. 미술에 관해 관심도 지식도 없던 사람이 또, 시작을 해 보는 것이다. 시작이 아닌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동해안의 멋진 파도를 무기 삼아 80호 수채화, 생각보다 크기도 하지만 이 넓은 백지를 어떻게 채울까 걱정이었다. 늙어 가는 청춘이 다시 시작하는 발걸음이다. 뻔뻔함에 무모함까지 합해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한 번쯤 입상해 보고 싶다. 감히 생각해 볼 수도 없었던 전국 미술대전이다. 고단하지만 수채화를 만나러 화실로 가는 이유이다. 늙어 가는 청춘의 끊임없는 도전이고, 살아가는 재미이기도 하다. 늙어가는 청춘이 다시 또, 무모한 도전을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