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의 삶의 세계, 수채화 전시회)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은퇴라는 벽이 다가왔다. 거부할 수 없는 일,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야 할까? 아내는 아직 근무를 해야 하는데, 혼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사막에 홀로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무엇으로 채워야 한단 말인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설프기만 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해 한 달여를 헤매며 마음을 잡지 못했다. 모든 것이 처음 해보는 일이다. 혼자 먹어야 했고, 홀로 삶을 꾸려나가야 했다. 한동안의 고민이 있었지만 자리가 잡혀가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쁜 생활 중에서도 틈틈이 기웃거린 취미생활이 있어서다. 전혀 생각지 못한 횡재를 찾아낸 것이다.
새벽부터 운동을 했고 마라톤을 했으며, 색소폰과 수채화라는 아이템이 있었다. 개인 블로그를 만들어 틈틈이 글을 써온 것도 밑천이 되었다. 무던히 더 바쁘던 시간 속에서도 작은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았던 덕분이다. 살기 힘들고도 바쁘던 시절에 허둥대며 해온 일들이다. 남들이 쉬는 시간에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서 이것과 저것을 했다. 아이들과 전국을 돌아다녔고, 아내와는 세계를 누비며 다닌 세월이었다. 모두가 삶이 바쁘지만 짧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은 것이다. 바쁘지만 알차게 보내고 싶어 한 일들이 은퇴 후의 삶에 도움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어쩌면 바보 같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했다. 그림을 그린다고, 음악을 한다면서? 세계여행을 수시로 간다면서? 많은 사람들은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은퇴 후 한 달 여가 지난 후, 삶의 시간을 조금씩 늦추며 살기로 했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임했다. 새벽부터 허우적거리던 운동을 한두 시간 늦추어 시작했고, 서둘던 몸짓을 차츰 수정해 나갔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느긋한 자세로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연의 삶의 무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아파트 생활을 오래 해 온 삶이다. 한참의 아파트 생활이 싫어 아담한 빌라에서 생활한 지 어언 20년이다. 누구나 꿈을 꾸는 전원으로 옮겨볼까? 오랜 세월 꿈꿔오던 전원생활이었다. 틈이 날 때마다 기웃거렸고 곳곳을 찾아 헤맨 전원주택이다. 친구들 덕분에 은퇴하면서 다시 자전거에 입문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구입한 자전거가 새 삶의 활력을 주었다. 전원주택지를 물색하는데 엄청난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이후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온 삶, 탈출하고 싶은 곳이었다. 늘 꿈을 꾸고 있었던 시골이지만 적당한 장소를 마련하긴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거기엔 자전거라는 묘수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도시 근처의 전원주택과 주택지를 샅샅이 찾아보는 것이었다. 수없이 찾아보고 물어봤으며, 고심을 했다. 몇 년간 쉼 없이 헤매다 찾아낸 곳이 지금의 보금자리다. 모두가 꿈꾸는 전원주택, 그렇게 쉬지 않은 삶이다. 터를 마련하고 집을 장만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현지인들과의 어울림은 더 큰 문제다. 어떻게 할까를 수없이 망설이다 부딪쳐 보기로 했다. 삶의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든든한 전원주택을 찾아냈다.
젊은 사람이 살기 위해 마련했지만 아내가 적응하지 못해 도시로 나간 집이다. 집을 짓고 몇 년 동안 남자 혼자서 들락거린 집이다. 할 수 없이 집을 지키다 그예 집을 팔고 나간 집이다. 작은 잔디밭이 있고 텃밭이 있는 전원주택, 삶의 터전을 새로 마련한 것이다. 언제나 꿈에 그리던 전원주택, 수년간을 헤매며 찾아낸 보금자리다. 잔디밭 가장자리에 작은 도랑이 있으며 뒤편으로는 작은 산이 자리 잡고 있다. 배산임수라는 천혜의 자리에 앉은 주택, 은퇴 후의 삶을 책임지어 줄 곳이었다. 은퇴 후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도시에 임대주택을 마련해 놓고 봄부터 가을까지만 거주하는 집이다. 도시에서의 삶이 있어 겨울에는 오고 가기가 힘겨워서다. 우선 주민들과의 만남이 고민이었지만 다행히 모든 것이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우선은 이웃들이 다정다감했다. 작은 것도 나누며 도란도란 살아가는 이웃들이었다. 특히 어려운 원주민과의 어울림은 어렵지만 해결 가능한 일이었다. 먼저 인사하고 다가가는 사람을 미워할 수는 없었나 보다. 원주민들은 전원주택과는 다소 떨어져 있고, 이웃에는 이주한 사람들이다. 거리도 떨어져 있었지만 서로가 조심하면서 살아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민들의 삶에 거북스러운 일을 삼가면서 서서히 다가감은 모든 것을 쉽게 해결되었다. 문제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어떻게 할까? 이젠 여유롭게 하루의 삶을 느긋하고도 천천히 살아가기로 했다. 새벽부터 체육관에 들러 운동을 하며 살아가던 바쁜 삶이었다.
새벽에 운동하던 것을 조금 늦게 시작했으며 여유를 부리는 삶이 시작되었다. 하나같이 바쁘게 살았던 삶, 왜 그렇게 살았는지 후회스럽기도 했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서두르는 삶이 최선의 삶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가능하면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살아감을 택했다. 새벽부터 서두르던 운동을 늦게 시작하고 늦게 끝냈다. 한번 하던 운동을 두 번 하는 여유를 갖고 시작하는 하루였다. 남은 시간은 늘 해오던 삶을 길게 잡고 살아가기로 했다. 하프마라톤을 하던 지구력으로 자전거를 택했다. 고단한 마라톤은 자전거를 타기에 충분했고 자연과의 만남을 알려주었다. 늙기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전국을 누비는 자전거 라이딩이 계속되었다. 언제나 상쾌한 삶을 주는 라이딩이 삶에 활기를 불러 주었고 친구들과의 어울림을 주선해 주었다.
살아가는 도시에서 시작한 자전거는 일주일에 한 번 이루어진다. 일주일에 서너 번 체육관에서 근육운동을 한다면, 일주일에 두어 번 자전거로 지구력과 유산소 운동을 한다. 다시 하루를 택해 산을 오르며 맑은 바람과 함께하는 삶이 계속되었다. 근처에서 시작한 라이딩은 어느덧 전국을 찾아 나섰다. 포항에서 통일 전망대까지의 라이딩이 백미였다. 3박 4일간 7번 국도를 따라 오르는 자전거길은 평생을 잊을 수 없는 거대 행사였다. 어떻게 긴 길을 달릴 수가 있었을까? 친구가 있고 아직은 늙어가고 싶지 않은 반항심이 있었다. 있는 근육의 힘을 다해 달리는 7번 국도는 아름다움을 다 전해주었다. 달리고 또 달리는 자전거길엔 친구가 있었고 자연이 있었다. 어디서 이런 맛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일주일에 한 번 모여 자전거를 타고 맛깔난 먹거리를 찾아 나선다. 가끔 먼 거리를 택하는 자전거길, 낙동강을 따라 부산까지 이르렀고, 북한강과 남한강을 찾아 나섰다. 여기에 호반의 도시 춘천을 지나칠 수 없었고, 위도와 선유도에서의 즐거움은 잊을 수 없는 라이딩이다. 다시 충주호를 따라 달리는 자전거길과 대청댐을 중심으로 달리는 자전거길은 언제나 신선함과 즐거움이 있는 자전거길이다. 여기에 산행을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일부였다. 친구들과 어울림은 어느 곳이나 찾아갈 수 있는 믿음이 있었고 즐거움이 있었다. 은퇴 후에 많은 걱정을 한 것이 사실이다. 홀로 남겨진 세상,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지만 방법이 있었다.
은퇴를 했다고 해서 엄청난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해왔던 취미를 느긋하게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꾸준하게 해 온 취미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활동도 있지만,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취미가 있어 천만다행이다. 친구들과 시간이 그리고 장소가 맞아야 한다. 경비가 지출되어야 하니 걱정도 된다. 조정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을 수도 있다. 늙어 갈수록 외로운 것이 인간, 언제나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어야 했다. 홀로 살아봐야 했고 외로움을 이겨야 했다. 방법은 취미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특별하게 새로 준비한 것이 아니고 평소에 해 온 것들이었다. 아침운동과 산행 그리고 자전거 타기가 건강을 위한 일이다. 다시 삶의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이 브런치의 글 쓰기와 색소폰 연주가 있고, 다시 수채화가 남아 있다. 여기에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원에서의 삶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은퇴 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