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자살자 살아왔다, 가을이 왔다.)
긴 장마는 꼬리를 감추었지만 아직도 더위를 감당하기 어려운 한낮이다. 더위가 그렇게 힘들다 하셨던 어머니 생각이 떠오른다. 왜 더위가 그렇게도 힘드셨을까? 그늘에서 쉬고, 더우면 찬물로 씻으면 될 텐데.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있고 그늘이 있는데. 한참의 세월이 흐르고 어머님의 세월이 되었다. 참, 덥다. 더위를 견디기가 그렇게 어럽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세월이 알려준 것이다. 무심코 앉아 있는 오후, 오늘은 무엇을 할까? 무엇부터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하다. 글을 먼저 쓸까? 책을 읽을까? 아니면 운동을 하고 올까? 저녁엔 그림을 그려야 하니 오후에 자전거를 타볼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은퇴를 얼마 앞두고 걱정이 생겼다. 혹시, 내가 은퇴를 하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세월이 한참 지나고 시작한 고민이었다. 막연하게 친구들과 어울리면 되지 뭐. 심심하면 여행이나 다니고, 가끔 소주나 한잔 나누면 되는 것 아닌가?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 은퇴를 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한계가 있으며, 여행도 늘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늙어 가는 몸이 늘 소주를 받아들이질 않았다. 은퇴 후 고민거리가 생긴 것이다. 어떻게 살까?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또 지나곤, 그렇게 고민되지 않은 일이었다. 찌는 듯한 더위에도 늘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늙을 줄 모르고 살아오면서도 가끔 기웃거린 일들이 있었다. 지금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 나에겐 있었다. 그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 또 있을까? 난, 늙을 줄을 모르고 살아왔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거나 잔디밭을 돌본다. 가끔은 텃밭에 풀을 뽑기도 하고, 나무를 돌본다. 운동은 10여 km 떨어진 곳에 가서 두어 시간 한다. 근력운동을 40여 분 한 후, 5km를 뛰어 본다. 그날의 몸 상태를 체크해 보는 가장 좋은 운동이다.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가운 커피 한잔을 뽑아 고단한 몸에 쉼을 준다. 커피 양이 너무 많아 반만 마시고, 아내에게 건네주면 좋아하는 모닝커피다. 아침 운동을 하는 날이 일주일에 3일이니, 나머지는 잔디밭과의 씨름이다. 풀을 뽑고 나무를 돌보며 뜰앞 도랑물에 발을 씻는 것이 아침 일과다. 격주로 아침 운동을 하고, 나머지는 잔디밭과 텃밭을 돌본 후에 자전거를 타거나 산행을 한다.
운동을 하고 돌아온 시간 그리고 산행이나 자전거를 타기 전 시간,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글을 읽고 쓰며 시간을 보낸다.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고, 나의 글을 써서 올리곤 한다. 쉽지 않은 글이지만 삶을 기술해 나간다는 것이 즐거워하는 일이다. 가끔 읽어주고 동감해주는 작가들이 있어 좋다. 뼛속까지 이과 체질인 사람이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나의 삶을 정리해 본다는 의미에서 쓰기도 하고, 다른 작가의 글을 읽기도 한다.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책상 옆에 수북이 읽을 책이 쌓여 있다. 심심하면 읽고, 할 일이 없으면 또 읽는다. 엄청난 기억력이 있는 겄도 아니다. 한참을 읽어가야 지난 줄거리가 생각난다.
오래 전의 기억이다. 친구들과 배낭여행을 많이 다녔다. 수많은 나라를 헤매며 젊을 시절을 보냈다. 어떻게 그렇게도 많은 나라를 다녔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30여 년 가까이 해외를 떠돌았으니 여행비가 아파트 한 채는 되지 않을까? 한 번 나가면 20여 일을 헤매고 돌아온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기억력, 메모가 필요 없었다. 거리가 생각나고 먹거리가 생각나며,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되었다. 책상에 앉아 출발부터 돌아올 때까지의 여정을 기억해 낸다. 어떻게 그렇게도 기억하고 있었을까? 세월이 많이 흘러갔다. 읽은 책 줄거리가 생각 날 리가 없다. 한참을 읽어 나가야 지난 줄거리가 생각나는 삶이 되었다. 한 줄씩 읽어 나가는 즐거움이 있다.
난, 늙을 줄을 몰랐다. 나의 부모는 영원할 줄 알았다. 무심코 살아왔음을 증명해주는 일들이다. 노년 후의 일을 생각한 적이 없었고, 노후 설계를 한 기억이 없다. 하루하루가 바빠 숨 쉴 틈 없아 살아온 삶이었다. 다만 하루를 뜻 없이 보내기 싫어 바쁜 틈을 만들었을 뿐이다. 새벽부터 운동을 서둘렀고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해보지 못했던 하프 마라톤을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다. 음악을 해 보고 싶어 많은 것을 시도했다. 피아노를 시작해 봤고, 드럼을 해 봤으며 색소폰을 시작했다. 음악의 기초도 없는 사람의 무모한 도전이다. 참,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다시 시작은 수채화였다.
오래전 중학교 시절, 미술을 접해 본 마지막 기회였다. 파스텔이라는 것을 이용한 미술시간, 시골에서 처음으로 접해본 그림이었다. 도시에선 여가로 대할 수 있는 그림, 생각지도 못했던 그림이었다. 못내 아쉬워 시작한 수채화였다. 물감을 섞고 물을 섞어 색을 만들어 낸다. 좌절과 고민을 거듭한 수채화, 10여 년이 흘러갔다. 지금 하지 않으면 할 수 없을 것 같아 시작한 그림이다. 무더운 여름철이다. 언제나 운동으로 살아가는 늙어가는 청춘, 습한 여름은 갈길을 막고 있다. 주체할 수 없는 습한 더위가 그늘 속으로 밀어 내고 말았다. 무슨 운동을 할까 망설이다 친구들과 산으로 숨어들었다.
마침 근처에 있는 산이 그늘로 이어지는 산이다. 적당히 평지도 있고 언덕도 반복되어 운동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자전거를 타기에는 너무 더운 여름날이기에 산행을 택한 것이다. 서늘한 바람을 타고 오르는 산, 언제나 감사한 자연의 베풂이다. 난, 늙을 줄을 몰랐다.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생각할 겨를도 없는 세월이었다. 왜 그랬을까? 아이들의 진학지도를 위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씨름을 했다. 가르치고, 진학 상담하고 또 생활지도를 했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난리가 나는 것처럼 온몸을 바쳐 일을 했다. 왜 그랬을까는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휴일도 야간도 없었던 생활이었으니 우리 아이들은 돌 볼 기회가 없었다.
한참이 지난 후의 생각, 조금은 쉬면서 할걸 그랬다는 생각이다. 너무나 짜인 삶이었지만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서 살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남보다 못한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이것저것에 기웃거린 이유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린 일들이 후에 삶에 바탕이 되고, 즐거움이 될 줄은 알지도 못했으며 상상도 못 했다. 늙을 줄을 몰랐고, 은퇴 후의 살아갈 방법은 생각지도 않았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삶이었기 때문이다. 노년을 생각한 저축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무지하기도 했고 아내가 맞벌이를 했기에도 그러했으리라.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은퇴를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갈까? 막막하고도 험난한 과제였다. 어떻게 하루하루를 메우며 살아가야 할까? 해답은 이곳저곳을 기웃거린 취미생활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