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찾아서, 간월암)
가을은 성큼 우리 곁으로 오고 말았다. 먼산에서 내려오던 가을은 들판에도 가득 담겨있다. 푸릇한 비탈밭은 휑한 모습으로 변했고, 누런 들판엔 거대한 콤바인이 바쁘게 오고 간다. 누런 소와 고단한 지게가 바쁘게 오고 가던 들판이었다. 아기자기한 들판은 오간 데가 없고 편리함과 경제논리가 가득한 들판이다. 곡선보단 직선이 대세이고, 느림보다는 빠름이 가득하다. 모를 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푸름이 가득하고, 휑한 가을들판은 더 빠르게 찾아온다. 가을이 가득한 골짜기에도 붉음으로 물들었다. 오랜만에 가을 나들이를 가고 싶었다. 어디로 갈까? 망설임도 잠깐, 가을이면 빼놓을 수 없는 간월도로 향했다. 간월도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골짜기를 벗어나자 곳곳에 가을 흔적이다. 푸름이 가득하던 길가 메타쉐콰이어에는 주황색이 내려왔다. 붉음도 아니고 노랑도 아닌 빛, 저 빛도 저렇게 예쁠 수가 있구나! 햇살이 찾아온 연한 주황빛은 그 빛을 주체하지 못하고 대지로 쏟아낸다. 눈이 부시도록 예쁘다는 것이 저런 빛이구나! 길을 나선 가을 나들이 길을 설레게 하는 이유다. 먼 산에선 낙엽송도 가을을 거들었다. 언제나 푸를 것 같았던 낙엽송이었다. 계절에 순응하듯이 황금빛 잎을 바람결에 뿌리며 가을을 알려준다. 햇살에 반짝이는 황금빛 낙엽송 잎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야, 세월의 흐름이 아쉽지만 자연만은 여전히 아름답구나! 서둘러 가야 한다. 오후엔 또 할 일이 있어서다.
골짜기를 벗어나자 곳곳에서 배추를 수확한다. 김장철의 대세인 절임배추를 하기 위함이다. 여름을 벗어나자 배추를 심고 정성으로 가꾼 산비탈의 푸름이다. 산짐승을 막아내며 온갖 정성으로 기른 배추가 농부에게 보답하는 계절이다. 어머니의 온갖 정성이 깃든 김장철도 변했다. 정성으로 기른 배추를 뽑아 소금으로 절여 놓았다. 밤새 무를 닦아 깍두기 만들 무를 썰어내고, 양념으로 넣을 채를 썰었다. 여기에 아기자기한 엄마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김장은 딸과 아들네로 보내졌다. 뒤 울에 묻은 김장독은 언제나 부자였고, 찾아오는 자식들에게 무한정 건네지는 엄마표 김장이었다. 아기자기함은 사라지고 절임배추라는 품목이 선보였다.
산더미처럼 배추를 쌓아 놓고 소금과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번듯한 차량 짐칸이 열리면 순식간에 포장된 절임배추가 실린다. 고단함과 정성이 얼마간의 돈으로 해결되니 마다할 젊은이들이 있겠는가?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은 널따란 들판에도 가득하다. 모를 심고 벼를 베는 일손들이 가득했던 들판에도 가을이 먼저 와 있다. 서서히 찾아오는 가을에 누런 들판이 앞서 가고 있다. 어느 날 콤바인이 오고 가던 누런 들판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들어선 것은 낯선 풍경, 하얀 공룡알이었다. 느닷없이 들어선 볏짚을 말아 둔 하얀 눈덩이가 가득해졌다. 저것이 무엇일까? 어느 순간 눈에 익은 진풍경으로 변했다. 인간의 속성인가 보다.
등짐으로 날라 타작을 하던 넓은 마당 대신 논 자락에서 벼를 타작하고 남은 볏짚을 포장한 것이다. 누른 빛이 가득하던 들판에 가을날의 새로운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하얀 공룡알 또는 마시멜로라고도 불리는 곤포 사이리지(梱包 silage)다. 볏짚을 가지런히 포장한 동물용 먹이로 대략 500kg 무게란다. 오래전엔 감히 생각지도 못하던 기계가 지나가면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하얀 물체, 세상이 변했음을 전해주는 새 시대의 공룡알이다. 지불놀이를 하고 쌓아 놓은 짚단 속에서 놀던 어린 시절이었다. 집집마다 겨울철 땔감으로도 사용하고, 지붕을 덮는 이엉으로도 사용했던 추억 속의 볏짚이다. 모락모락 연기 나는 시골집을 연상하는 초가지붕에 없어서는 안 될 볏짚이었다. 서서히 큰길로 들어서자 나들이 차량들이 가득하다.
어느 쪽으로 길을 택할까? 늘, 직선보다는 곡선을 좋아해 지방도를 택한다. 오늘은 고속도로를 택하기로 한 것은 저녁시간이 촉박해서다. 연말 색소폰 연주회를 위한 마지막 연습이 있기 때문이다. 서둘러 들어선 고속도로 곳곳에 나들이 차량들이 가득하다. 먼 산으로부터 내려온 가을은 고속도로변에도 예외일 수 없다. 노랑으로 무장한 산국이 대세이고, 어느새 노랗게 물든 싸리나무 잎이 팔랑이고 있다. 모임의 조화가 저런 멋을 주기도 하는구나!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만난 직선 위의 아름다움이다. 먼산에 내린 단풍이 맞이하면서 달려간 홍성 끝자락 서산 천수만 간척지가 보인다. 한 사람의 발상이 만들어낸 엄청난 변화다.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가 보다. 시원함을 맞이하며 달려가다 보니 멀리 간월암이 보인다. 오랜만에 만나는 간월도다.
간월도, 이름과는 다른 섬이 아닌 육지 속 간월도다.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육지와 연결된 간월도다. 널따란 갯벌엔 시골 아낙들이 굴을 따는 모습, 짭조름한 어리굴젓이 떠오르는 간월도다. 허연 수걸 질끈 두른 할머니가 고단한 몸을 이끌고 갯벌로 가신다. 쭈그리고 앉아 하나씩 쪼아 담는 자연산 굴, 작지만 맛이 다르고 풍미가 있었다. 고향의 맛이 있었고 그리움이 있었다. 얼큰한 양념과 어우러진 어리굴젓은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하얀 쌀밥 위에 빨간 양념과 어우러진 어리굴젓을 한 젓가락 얹는다. 덩달아 올려진 고소한 참께가 어우러지는 맛, 간월도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맛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아기자기한 시골맛이 없어진 간월도엔 거대한 건물들이 들어섰다.
관광버스가 드나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끔 찾아가는 식당 앞엔 수많은 차량이 있고, 긴 줄이 그려져 있다. 순서를 기다려야 한단다. 식당엔 손님들이 가득해 들어설 곳이 없다. 순서를 기다리라는 엄명에(?) 예약을 해 놓고 간월암을 찾아갔다. 간월암,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깨쳤다 하여 암자 이름은 간월암(看月庵)이요, 섬 이름을 간월도(看月島)라 하였단다. 여기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었다. 바닷물이 들어오면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작은 암자가 넓어졌다. 절집 앞이 훨씬 넓혀지긴 했으나 소박한 암자는 없다. 조용함이 좋아 찾아왔던 절집이 전혀 다른 맛이다. 얼른 절집을 빠져나와 식당으로 갔지만 아직도 기다려야 한단다. 한 시간여를 기다리고 드디어 식당으로 입장했다. 굴밥을 만날 수 있는 은혜(?)가 베풀어진 것이다.
식당으로 들어가 다시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도저히 기다릴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아내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기다리고 또 참아야 했다. 긴 시간을 기다려 먹어야 할 인내심은 없는 사람이다. 어쩔 수 없는 여건에 무한한 인내심을 꺼내본다. 30여 분여가 흐르고 위대한(?) 굴밥이 나타났다. 밥을 먹는 방법이 기계음처럼 안내되고 드디어 굴밥과 대면을 했다. 지난날에 만났던 굴밥과는 모양이 달랐다. 고슬고슬한 하얀 쌀밥을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굴과 밤 그리고 대추를 비롯한 여러 가지가 가미되어 하양은 간데없는 영양굴밥이란다. 나물과 간장을 곁들여 비벼 먹는 영양굴밥, 오래 전의 맛과는 다른 맛이었다. 수많은 사람 속에 밥을 먹는 분위기가 다르고, 복잡함에 정신이 없다. 이렇게까지라도 참으며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숨기며 거사(?)를 끝냈다. 얼른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닷바람이 맞아준다. 와, 굴밥보다는 바닷바람 맛이 훨씬 좋다.
간월도에 왔으니 얼큰한 어리굴젓을 외면할 수 없다. 잔잔하고도 얼큰했던 오래 전의 어리굴젓을 맛보고 싶어서다. 다시 찾아간 간월암 부근 시장은 썰렁하다. 많은 상점과 인파로 북적이던 곳이다. 언제나 사람이 북적이고 사람 사는 맛이 있던 곳이었다. 왜 이렇게 한적할까? 일요일인데도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아직도 코로나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삶의 모습까지 변하게 해 놓았던 질긴 역병이다. 상점에 들러 어리굴젓 한 병을 구입했지만, 오래 전의 어리굴젓은 아니었다. 자연산으로 얻어진 할머니표 어리굴젓, 소박하고도 정이 그리웠다. 순식간에 변하는 세월 속에서도 사람 손길이 가득한 밥상이 그리웠다. 얼큰한 어리굴젓에 하얀 쌀밥이 제격이었고, 텃밭산 얼갈이 겉절이가 한자리 차지했던 밥상이 그리운 것이다. 간월도엔 오래 전의 그리움만 있고 모든 것은 찾을 수 없었던 가을 나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