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를 찾아서, 부석사에서)
가을이 찾아온 아침, 햇살도 천상 가을이다. 골짜기도 더 없는 가을이지만, 온 가을을 외면할 순 없었다. 서둘러 길을 잡아 나서야 했다. 가을이면 꼭 찾아가야 하는 곳이 있어서다. 굽이굽이 섬진강을 찾아 흥얼거리다, 박경리의 악양 뜰을 찾기도 한다. 기분이 올라오면 벌교를 들러 꼬막으로 허기를 메우기도 한다. 남도에 갈 곳이 있는가 하면, 서해 쪽으론 멀지 않은 안면도 백사장과 꽃지 해수욕장이 있다. 대하가 있어 정스럽고 전어가 있어 고소함이 있는 곳이다. 달콤한 게살이 오라 하니 그냥 넘을 수 없는 가을이다. 다시, 남아 있는 곳은 동해를 찾아가는 길이다. 굽이굽이 백두대간을 넘어 찾아가는 동해 길도 떨칠 수 없는 가을 속의 추억의 길이다.
어느 곳으로 찾아갈까? 동해와 서해안은 벌써 발길을 했으니, 남해가 아니면 부석사가 남아 있다. 잠시 고민을 하다 발길은 자연히 부석으로 향했다. 아픔과 그리움이 있는 곳이다. 빨간 사과가 넘치며 사람이 북적이는 곳, 영주 부석사를 보고 오는 가을은 늘 그랬다. 그리움 속 어머니를 보내드린 계절이었다. 삶의 언저리를 서성대는 어머니를 볼 수 없어 훌쩍 떠났던 부석사였다. 마음 둘 곳 없이 헤매던 그리움 속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서서 바라보는 흐르는 산의 물결은 그리움과 고마움이 엉켜있고, 그리움 속의 평안함이었다. 노란 은행잎 밑으로 걸어가는 길, 양쪽에는 빨강 사과가 도열해 있다. 노랑과 빨강이 그리움처럼 그려지는 곳, 부석사가 가을 속에 있었다.
가는 길은 잠시도 눈이 쉴 수 없는 시골길이다. 직선과 빠름보단 곡선이 있고, 삶이 숨어있는 곡선 길이 아름답다. 골골이 살아가는 삶을 보고 싶고, 가슴속 그리움을 꺼내 보고 싶은 곳이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 찾아가는 골짜기마다 맑은 햇살이 남아 있다. 시골의 삶이 남아 있는 들엔 때를 맞춰 들깨를 터는 아낙들이 보이고, 벼를 베는 콤바인이 서성인다. 아, 오래전엔 아버지의 등짐을 빌려야 했던 일들이다. 어머님의 키질을 해야 했던 일들이다. 커다란 기계가 웅장한 소리로 생각을 떨쳐버림에 편안함보단 불편함이 앞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골길을 돌고 돌아 찾은 곳에 충주호의 풍경이 나타났다.
천하의 제일 드라이브 코스라 생각하는 곳이다. 충주시 살미면 용천삼거리에서 월악로를 따라 달려가는 36번 도로, 단양군 단성면까지 이르는 길이다. 봄이면 섬진강의 멋진 코스가 있는가 하면, 가을이면 빼놓을 수 없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한쪽으로 달리는 호수가 있고, 한쪽으로는 가을산이 따라나선다. 곳곳에 단풍이 따라오며 가을을 노래한다. 야, 이런 붉음을 이곳에서 또 만나는구나! 가는 곳마다 옥순봉과 구담봉을 비롯해 곳곳에서 눈길을 휘여 잡는다. 어디다 눈을 두어야 할지 헤매는 사이, 빨강의 계절은 온갖 사람을 다 불러 모았다. 가는 곳마다 사람 천지요, 곳곳에 그간 움츠렸던 관광버스가 줄을 섰다. 삶 속에 일만 있으면 살 수 있다던가?
충주호와 가을이 만들어주는 물감 속을 헤매는 사이 곳곳엔 그리움도 가득하다. 길가에 늘어진 감나무가 있고, 붉은 열매를 달고 있는 사과밭이 있다. 가을이 주는 풍성함이 여름의 고단함을 잊게 한다. 가을을 거두는 발길들이 들녘에 가득하다. 서둘러 달려가는 곳엔 그리움도 숨어 있다. 분재를 찾아 헤매던 산이 있고, 수석을 탐석 하기 위해 발품을 팔던 충주호 언저리다. 묵직한 돌덩이를 지고 산길을 헤매던 젊음의 기억들, 가끔은 고기를 따라 강태공이 되기도 했던 추억이다. 젊음이 가득했던 호숫가에 가을 빛깔이 가득하다. 언뜻 지나온 세월은 허연 머리칼을 얹어 주었고, 기억은 가물가물한 추억으로 잠든 곳이다. 고개를 흔들어 운전대를 움켜잡고 도착한 곳은 죽령고개였다. 여기도 파란만장한 추억이 숨어 있는 곳이다.
희방사를 찾아 수없이 발길을 했고, 소백산 철쭉을 보러 땀을 흘리던 곳이다. 곳곳에 흘려버린 추억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커다란 대로가 뚫려 굽이굽이 죽령 길은 옛길이 되었지만 아직도 아련함을 안고 있는 길이다. 곳곳에 빨강 사과를 놓고 파는 사람들이 달라진 풍경이다. 오래전에 감히 생각도 못했던 사과가 이곳에도 있다. 붉은 감만 보이던 높은 골짜기에 맛깔난 사과가 넘치는 곳이 되었다. 기후의 변화가 이런 세상을 만든 것이다. 꾸역꾸역 올라간 죽령 휴게소, 오래 전의 추억을 따라 오른 사람들이 가득하다. 추억을 동무삼아 기억을 되살리다 얼른 차에 올랐다. 그리움으로 찾아가는 부석가가 급해서다. 굽이굽이 내려가는 길, 오래전에 배낭을 메고 꾸역꾸역 걸었던 옛길이다. 야, 그렇게도 젊었었는데...
부석을 찾아가는 길, 곳곳에 공사장이 들어서 있다. 무엇을 지어야 하고 만들어야 하는지, 인간들은 끊임없이 파고 또 메워야 했다. 노랑 은행잎이 그리운 길을 파헤치며 끙끙거린다. 곡선이 아닌 직선을 좋아하는 그들이다. 오래전, 노르웨이의 고속도로가 떠 오른다. 이차선으로 만들어진 자연 속 고속도로는 우리의 옛 시골길이었다. 소박하고도 시골스런 고속도로가 그렇게 좋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노랑 은행잎 대신 거대한 중장비가 가을을 즐기고 있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부석으로 향하는 길, 거기에도 공사장은 여전하다. 주차할 공간에 무엇을 짓느라 막아선다. 곳곳에 무질서의 한계를 보여주는 주차, 간신히 주차를 하고 오르는 길에서야 한숨을 쉰다. 노랑과 붉음이 어우러진 부석사 가는 길, 오래 전의 기억을 찾으며 오르는 길이다.
노랑을 볼 사이도 없이 꾸역꾸역 오르는 길, 삶엔 쉼이 있어야 하나보다. 노랑 은행잎에 취해 오르는 부석사 가는 길, 오랜 아픔이 잊히고 가을을 찾아 나서는 길이 됐다. 인간의 기억의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생각하며 오르는 길, 숨이 벅차다는 생각이다. 언덕을 오르고 계단을 내딛는 허벅지가 힘들어한다. 꾸준히 길러온 근육이지만 세월은 그냥 지나지 않았다. 힘겹게 버티며 올라가는 은행나무 길이다. 그리운 사람이 한없이 보고 싶은 길, 인간의 한계임을 스스로 자임하는 길이었다.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던 길이었다. 인간이 나약하다는 생각을 했던 그 길, 이제는 태연하게 걸어가는 인간이 되었다. 한참을 올라 선 절집 앞엔 켜켜이 그리움이 남아 있다. 멀리 보이는 겹겹이 쌓인 산이 그렇고, 하늘 높이 가을 하늘이 그렇다.
한숨을 고르고 앉은 절집 앞, 어쩐지 마음이 편해진다. 절집 안으로 들어가는 아내는 무엇을 바라며 절을 할까? 한참을 앉아 바라보는 절집과 삶을 생각해 보는 나, 삶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지금이다. 시원함과 궁금함이 함께하는 사이, 사진을 찍느라 바쁜 사람들이 보인다. 언제 보려고 사진을 찍을까? 저렇게 많이 찍는 사진을 보기라도 할까?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을 때도 있었는데. 무심히 앉아 있는 아내를 찍자, 아내도 핸드폰을 꺼내 든다. 한 방향을 보고 살았지만, 서로의 서 있음과 앉아있음을 인정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구태여 같이 서지 않아도 되고, 손을 잡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었다. 긴긴 세월이 삶을 그렇게 바꾸어 놓았는가 보다. 서서히 올라온 길 아닌 길을 택해 내려오는 길.
거기에도 자연은 가을을 초대했다. 밝은 햇살 아래 꽃이 피었고 붉음이 찾아왔다.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온 절집도 이제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나의 계절은 어디쯤 와 있을까? 서서히 늦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드는 것이 아닐까? 늦가을을 어떻게 정리하고 무엇으로 겨울을 준비해야 할까? 머리를 흔들며 내려오는 길에 만난 은행잎은 다른 색이다. 햇살의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은행잎의 색깔엔 무관심한 듯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이 길을 오고 갈까? 쉴 새 없이 떠드는 부산함 속에 혼자만이 고요함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하며 길을 내려온다. 굽은 허리를 부여잡고 사과를 파는 할머니, 열심히 사람을 불러 모으는 동네 아주머니 그리고 무심한 듯 지나는 사람들이 가득한 길이다.
가을은 무엇을 알려주려 갖가지 색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을까? 부석으로 오르는 길과 내려오는 길은 같지만 만나는 생각은 전혀 다르다. 부석을 찾아가는 가을은 지난해 가을이지만, 마음속 가을은 전혀 다른 가을이다. 가을이 점점 깊어가는 소풍길, 조용한 숨결로 가을을 마무리해 보고 싶은 부석사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