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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Dec 27. 2022

송년회, 망년회의 계절이 돌아왔다.

(연말연시 풍경, 헤밍웨이가 찾던 아바나 선술집)

올해도 막바지에 다다른 세월, 벌써 한 해가 갔나 보다. 신년 계획을 세웠는가 했는데 벌써 세월은 흘러갔다. 가혹하리만큼 공평한 세월은 누구도 남기지 않고 연말까지 데려왔다. 12월 말 그리고 새해의 초, 맞이해야 할 행사가 참 많다. 친구들과 해야 하는 망년회 또는 송년회가 있고, 새해를 맞이하는 모임이 있다. 연말, 연시라 이름이 붙은 모임이지만 살아오면서 많은 모임들이 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모인 모임인지 아니면 먹고 마시기 위한 모임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코로나라는 역병이 찾아와 삶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중에도 모임의 성격이 가장 많이 변했다.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셔야 했고, 2차를 가야 했다. 다시 입가심을 하고 노래방엘 들러야 응어리가 풀렸다. 남은 속을 풀기 위해 포장마차를 들러야 속이 시원한 모임이었다. 가끔은 지겹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우리의 모임이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뒷걸음치면 언제나 역적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점점 세월이 변해 술을 권하고 강요하는 분위기는 변했지만 여기엔 코로나가 한 축을 담당한 측면도 있으리라.

오래 전의 추억, 멕시코에서 한 잔

몇 년 전, 북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던 기억이다. 하루 종일 운전으로 고단했던 몸, 저녁때가 되어 식사를 해야 했다. 출출함을 달래려 찾아 나선 식당,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모두 퇴근을 했고 어느 곳에서도 빵조차 살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친구들 말,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란다. 어느 때건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 나라,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속의 삶이 변하면서 서서히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여기저기서 위하여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무엇을 그리 위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연말이 되었으니 또 해야 하는 행사다.


커다란 식당 한 부분을 차지한 모임, 술잔에 섞임 술이 가득 채워졌다. 뛰어난 목청에 달변가의 외침에 목청을 높인다. 그렇게도 목청을 높여 위해야 한단 말인가? 주변 사람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목소리다. 조금은 화기 치밀어 바라보지만 괜히 망신만 당할듯싶어 얼른 눈을 피한다. 조용한 분위기에서는 되지 않는 것인가? 삶의 이야기를 소곤대며, 조용히 들어주는 자리는 불가능한 것인가? 늘 아쉬움 속에 치러야 하는 모임이지만 올해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많은 식사와 술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노르웨이 베르겐의 선술집

어떻게 이 자리를 모면할 수 있을까? 사회적 동물임을 알려주기 위해 오늘도 발걸음을 해야 한다. 서둘러 잔을 채우고 높이 들어 위하여를 외쳐야 한다. 어젠, 피할 수 없는 자리이기에 술을 마셨다. 오늘은 피해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가끔은 아내한테도 미안하고, 술을 감당해야 하는 간에게는 더 미안하다. 주책없이 들이붓는 알코올 덕에 쉴틈이 없어서다. 가끔은 쉼도 필요하겠지만 짬을 주지 않는 주인 덕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내장 식구들이다. 요즈음이 지나면 편할 날이 있을까? 이 핑계에 저 핑계가 합해 끊임이 없는 날이었다.


젊음이 조금 남아 있던 시절, 밤새 술을 마셔도 될 듯했다. 몇 시간만 자고 나면 거뜬하리라는 쓸데없는 자신감이었다. 언제나 자신감에 속고 말지만, 오늘도 그 사실을 잊고 말았다. 주고받음이 지치면 친구를 불러낸다. 뭔 큰 일을 한 것처럼 호기를 부리지만, 몇 시간이 지나면 후회만 남을 것을 알지 못했다. 기어이 깨어질 듯 아픈 머리를 감싸고 태연한 척 출근했다. 지끈거리는 머리와 메슥거리는 배를 잡고 하루를 버티었지만, 다시 술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할까? 이 자리를 피하면 역적 소리를 듣는다. 다시 참여해야 하는 자리가 무르익었다. 엊저녁에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다시 들이 붓기 시작이다. 모든 것이 리셋되어 움직이는 몸뚱이다.

아이슬란드의 풍경, 아들과의 배낭여행

세월이 조금 흘러갔고, 몸뚱이는 그냥 있을 리 없다. 언제나 운동을 달고 살지만 그것으로 몸은 견디지 못했다. 운동으로 만들어진 몸이지만, 몸뚱이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운동한 것도 알고 있지만,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것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감히 알지 못했던 이 진리를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서서히 자리를 피하고 몸을 돌보아왔지만 시간이 흐르고 만 뒤였다. 이제라도 서서히 챙겨야 하는 몸이 되었다. 슬슬 자리를 봐가며 술을 마셔야 했다. 잠시 방심했다간 내일 아침이 온전치 못하리라. 하루면 거뜬했던 몸이 이틀도 가고, 사흘도 가는 지경이다. 서서히 분위기와 몸을 봐가며 살아가야 하는 계절이다.


간단한 식사와 함께 적당한 술이 있으면 좋은 자리다. 조용한 구석에 앉아 삶의 이야기를 조근 거리며 일 년을 되돌아보는 자리, 언제나 그리운 술자리다. 언제쯤 이런 자리에서 한가함을 즐길 수 있을까? 고즈넉한 카페 같은 술자리에 앉아 지난 세월을 느껴보는 자리는 어떨까? 서서히 변해가는 연말, 연시의 모습이지만 아직도 아쉬움은 남아있는가 보다. 친구가 조용히 외친다. 적반하장이라고. 적당한 반주는 하나님도 장려한단다. 적당한 반주가 어느 정도 일까? 각자의 주량과 기분에 따라 다르리라. 강요할 필요도 없도, 강요받을 필요는 더 없는 세월이다. 언제나 푸근한 자리에서 일 년을 즐기고, 내년을 이야기해보는 술자리는 어떨까? 연말이 되어 다시 생각해 보는 송년회요 망년회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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