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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an 24. 2023

장모님, 고마우니 전화를 또 해달라 하신다.

(요양원에 계신 장모님, 여성시대 소개 글)

친구들과 등산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아내가 급하게 전화를 했다.

장모님이 쓰러지셨다는 것이다. 왜 그랬냐는 말을 할 것도 없이 택시를 탔다.

연세가 아흔에 가까우시니 근력도 없으신데 혼자 살고 계셨다. 자식들도 있지만 야속한 세월은 그렇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하시고 검사를 받았으나, 심각한 상태였다. 며칠간 중환자실에서 계셔야 했다. 몸에는 온갖 줄로 연결되어 처참한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이 없었다.시간에 맞추어 맞이한 얼굴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늙어감의 설움과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야만 했다. 

다행히도 점차 회복이 되고, 정신은 정상으로 돌아 오셨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오래전부터 앓아 오시던 무릎 관절이 오기를 부렸다.

언젠가 수술을 해 드리려 했지만, 의사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연세가 많으시니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신은 회복되었지만 무릎이 온전치 않았다. 할 수 없이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 어찌해야 할까? 고민을 해 봤지만 나에겐 방법이 없었다. 그 일이 있은지 3년이 지났다. 


봄이 오고 꽃이 피면 언제나 차에 모시고 꽃놀이와 맛있는 것을 사 드렸었다.

뒷 좌석에 앉아 아내와 지난 일과 먼 옛날의 고생담이 그치지가 않았다. 한이 많으셨나 보다.언젠가, 젊어서 사셨던 강원도 인제를 가보고 싶다 하신다. 고생스러웠지만 젊었을 때의 삶이 그리우셨는가 보다. 아내와 얼른 모시고 다녀온 적도 있다. 한없이 바라보는 모습에 가슴이 짠하기도 했었다.다시는 올 수 없는 마지막 추억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갔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요양원에 계시면서 우리는 시골집으로 이사를 했다. 작은 전원주택을 마련해 이사한 것이다. 

이사를 했다는 말에 이것저것 일러 주시며, 꼭 감나무를 심으시라 하셨다. 노란 감이 열린 집이 보기 좋단다. 아내도 바라던 감나무를 사서 잘 기르고 있지만, 장모님의 쉽게 모실 수가 없었다. 어쩔까를 망설였다.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 된 날, 어렵게 병원에서 외출 허락을 받았다. 코로나가 오기 전의 이야기이다.힘들지만 장모님을 시골 주택엘 모시고 왔다. 언젠가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망설일 수가 없었다.집이 좋고 나쁘기 이전에,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너무 좋아하신다.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 도착했다. 생전 만나지 못했던 조용한 시골집이다. 이곳에 딸이 살고 있다 하니 너무 좋아하셨다.

고즈넉한 시골집에 잔디가 푸르게 자리했고, 갖가지 꽃이 가득했다. 

식사를 하시며 이것저것을 보시고 너무나 좋아하셨다. 역시 모시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시 요양원 생활을 하시고 있다. 어쩔 수 없어 안타까웠다.


요양원에를 자주 들렀다. 시간이 나면 들렀다. 일주일에 몇 번을 오갔더니 사람들이 아들이 왔다고 한다. 사위를 아들인지 아는 모양이다. 누가 올까를 기다릴 장모님을 생각해 시간이 나는 대로 찾아뵈었기 때문이다. 먹을 것보다 사람 발길을 좋아하셨다. 면회를 마치고 떠나는 발길이 무겁기만 했다. 어떤 말을 하면서 문을 나서야 할까? 언제 무슨 말로 발길을 돌려야 할까? 말문이 막혀 고민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3년이 흘렀고,  다시 아름다운 봄날이 왔다. 하지만 코로나가 발길을 묶어 놓았다. 면회도 할 수 없으니 만날 수도 없다. 전화만 할 수 있어 자주 전화를 한다. 요양원 옆을 지날 때도, 생각날 때도 전화를 드린다. 한가해도 하고, 꽃이 피어도 한다. 전화를 하면 너무 고마워하신다. 그렇게도 고맙다 하신다.  그래서 전화를 하고 나면, 어떤 말로 전화를 끊어야 할까가 고민스럽다. 어떻게 무슨 말로 전화를 끊어야 할까? 


창밖에 꽃이 너무 아름답다 하신다. 보고 싶단다. 아름다운 봄이 그립다 하신다.

창문으로라도 보니 다행이라 하시지만 심정이야 오죽할까? 아내는 밑반찬을 만들어 수시로 요양원 엘 드나든다. 만날 수는 없지만 밑반찬이라도 드리려는 심정이리라. 집안일에 고단하지만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다. 가끔 돼지고기 수육을 해다 드리면 너무 잘 잡수셨단다. 같은 방에 사람들과 나누어 드셨다며 신나 하신다. 그래도 그 정도의 건강이 있어 잡수시고, 말씀을 나눌 수 있어 다행이다 싶지만 모시고 살 수 없음이 가슴이 아프다.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나서 얼굴이라도 불 수 없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오늘도 전화를 드렸다. 두런두런 이야기 끝에 전화를 해 주어서 고맙다 하신다. 너무 고맙다고 몇 번을 되뇌이신다. 그러면서, 전화해 달란다. 전화를 또 해달라 하신다. 

(2023.01.20, MBC라디오 여성시대에 소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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