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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Dec 13. 2022

보이스 피싱, 철없는 가을이 서둘러 갔으면 했다.

(험난한 세월, 쿠바의 코히마르 해변)

수채화를 그리러 화실에 드나든 지 꽤 오래된다. 가끔은 지루해 망설여지는 수채화, 요즈음이 그랬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 나를 보고 친구는 말한다.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으로 다녀보라고.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화실을 드나들고 있는 요즘, 같은 시간에 오던 지인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활기차고 쾌활한 사람이다. 늘 바빠하면서도 열정적으로 배우는 사람이다. 어쩐 일일까? 늘 바빠하는 사람이라 바쁜 일이 있겠거니 하던 중, 아주 불편한 일이 생겨서란다. 말로만 듣던 보이시피싱을 당했단다. 마음을 추스르며 일을 처리하느라 잠깐 쉬는 중이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 


근무 중 일 때 어느 날, 학부형이 급하게 전화를 했다. 아무개가 학교에 있는지 확인해 달란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아무개를 인질로 잡고 있다며 돈을 요구하고 있는데 사실인지 확인해 달라는 전화다. 물론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오래 전의 이야기다.

  또 하나의 사건, 가까운 지인 부친이 보이스피싱을 당했단다. 팔순 아버지가 돈을 찾아 냉장고에 넣어 놓았다는 실제의 이야기다. 뉴스에서나 볼듯한 이야기를 직접 당했단다. 3천만 원을 냉장고에 넣어 놓아 몽땅 잃어버렸다는 지인의 이야기다. 분개하면서 걱정하던 모습이 떠 올랐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 하늘 같다.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했지만, 언제나 안전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할까? 


갑자기 모르는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았더니 본인임을 확인한 상대방, 어느 지방의 지청 수사관이란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정신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더니 내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사용되었단다. 검찰청엘 와야 하는데, 근무 때문에 올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부인했지만, 사실이라면서 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무슨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검사를 바꾸어 줄 테니 상의해 보란다. 전화를 받은 검사라는 사람이 말하는 투가 수상했다. 생각해 보겠다고 전화를 끊자 다시 전화가 왔다. 컴퓨터를 열고 자기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는 말에 낌새를 알았지만, 한동안 너무 무서웠다. 나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방법으로 살아가야 할까?


한 달을 쉬던 지인이 수채화교실에 다시 나왔다.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모르는 척 인사만 하고 있던 차, 본인이 주의하라는 뜻에서 경험을 이야기한다. 느닷없이 4천만 원 가까이 보이스피싱을 당했단다. 돈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었나를 의심하는 사이, 통장에서 뽑아간 것이 아니고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갔단다. 알지도 듣지도 못했던 곳에서 본인 명의로 대출을 받았단다. 알뜰폰이 두 개나 개설되었고, 여러 곳에서 대출을 받아가고 말았단다. 본인이 대출받은 것이 아니라 했지만, 늘어나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그냥 갚아야 했다는 설명이다. 어떻게 나도 모르게 대출을 받아갔단 말인가? 믿지 못할 사실에 가슴이 턱 막힌다.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하고, 금융감독원에 신고를 했지만 방법이 없었단다. 명의가 도용되어 전화기와 통장이 개설되고, 대출을 받아갔다니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나? 본인은 까마득히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수천만 원을 갚아야 할 처지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고도, 답답했다. IT강국이라는 말, 어림도 없단다. 알뜰폰이 어디에서 어떻게 개설되었는지도 알아낼 수 없었단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 알 수도 없단다. 대출해간 돈을 갚는 일밖에 없었단다.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까? 도대체 어떻게, 누구를 믿고 살아내야 할까? 이래저래 가슴 답답한 요즈음엔, 철없는 가을이 서둘러 갔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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