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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Nov 29. 2022

가을은 가지려 말고, 가슴속에 담아 둬야 했다.

(가을 풍경을 찾아서, 가을의 선물)

가던 길을 멈추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빛깔이 보여서다. 하늘 높이 달린 단풍에 햇살이 찾아왔다. 단풍잎에 닿아 반사된 빛이 눈부신 가을이다. 떨어진 단풍은 나란히 누워 내려온 햇살을 맞이한다. 야, 이런 빛깔이 만들어질 수 있구나! 가을이니 이런 빛깔을 볼 수 있으려나?  하지만, 봄은 봄대로의 색깔이 있고, 여름은 여름의 색이 있다. 하얀 겨울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있다. 아름다움에 숨이 멎는 것은 가을이기에 그러한가 보다. 무엇인가 그립고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가을이다. 무엇이 그립고 무엇을 찾아 떠나려는가?


가을 속에 자리잡음은 단연 색깔의 조화다. 여기저기에 튀어 오른 색의 조화는 발걸음을 그냥 두질 않았다. 어딘가 가야 했고 무엇인가 찾아야 했다. 들로 나서야 했고 산을 올라야 했으며, 색을 따라 헤매야 했다. 맑은 햇살 따라 찾아 나선 가을은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붉음이 강하게 손을 흔드나 하니 부드러운 노랑이 어림없단다. 붉음과 노랑이 다투는 사이에 하양이 번쩍 튀어나왔으니 가을로 가는 길목이었다. 서서히 가을이 저물어 갈 무렵에 먼산에서 서서히 색이 쏟아져 내렸다. 주황의 물결이 들판을 휘감고, 남은 빛깔은 산 언저리에 남아 있다. 늘 푸름을 자랑하던 소나무와 낙엽송에 앉고 말았다. 푸름 속에 주황을 물들여 만든 색의 조화는 감나무에도 올라앉았다. 서서히 익어가는 가을 속에 만난 절절한 그리움이다. 

가을은 많은 이야기를 주고 색깔을 주었으며 아름다움마저 주었다. 가을은 여름을 지난 더움과의 어울림을 알려 주었으며 이젠, 다가오는 겨울과의 살아감을 알려주려 한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겨울을 기다리라 가로막고 서서히 긴 옷을 준비하게 한다. 마음에 긴 옷을 챙겨 입자 서둘러 순한 바람을 안고 왔다. 산을 넘은 찬바람을 어느새 알아차리고 맑은 햇살을 불러 이내 훈훈함을 불어넣었다. 맑은 햇살은 하얀 서리마저 어루만지며 서서히 늦가을 자리를 마련했다. 들판에 자리 잡은 가을은 삶 속에 신나는 색깔을 뿌려 놓았다. 누렁에 갈색을 가미했고 붉음의 강함을 얹어 노랑의 조화를 마음껏 뿌려 놓았다. 


가을빛깔의 강자는 역시 단풍의 붉음이다. 지나는 길, 강한 붉음 속에 부드러운 붉음을 만났다. 하늘에서 쏟아진 붉음은 대지를 물들였고 마음까지 깊이 자리했다. 해맑은 햇살을 받아친 붉음은 노랑 근처를 서성이다 이내 검붉음으로 옆걸음 했다. 붉음과 노랑에 검붉음이 한데 어우러진 가을은 이내 하양을 초대하고 말았다. 햇살에 하양까지 가미된 조화가 한낮을 맞이하자 연한 붉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려온 햇살에 색의 잔치를 하는 붉음은 가을의 절정인 듯했지만 색깔엔 노랑이 우뚝 서 있다. 노랑으로 물들인 가을은 단연, 은행나무가 으뜸이다. 길가에서 만나고 마당 끝에서도 만났다. 단지 노랑으로의 노랑이 아니라 신나는 노랑이었다. 

은행잎은 연한 녹색으로 시작을 했다. 연한 녹색이 점점 익어 검은 푸름이 자리를 잡자, 가을이 슬며시 내려왔다. 검푸름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검푸름이 변한 잎은 서서히 연노랑으로 갈아입었다. 가을이 오며 초대한 색깔이다. 가을바람을 못 이긴 은행잎이 흔들거렸다. 앞과 뒤를 번갈아 보여주며 가을을 즐기는 은행잎이다. 가을을 즐기는 사이 연노랑이 서서히 진노랑으로 갈 즈음, 맑은 햇살은 그대로 두지 않았다. 진해진 노랑을 건드려 옅은 노랑으로 인도했고, 연노랑은 이내 햇살과 함께 빛의 하양을 자처했다. 대지 위를 뒹구는 노랑과 빨강의 조화가 발길을 묶어 놓았다. 하지만 강함과 부드러움 속엔 하양이 우뚝 솟아났다. 억새의 탄생이었다. 


서둘러 지나갈 수 없는 색의 조화는 하양을 빼놓을 수 없다. 물가에 앉은 하얀 억새풀, 느닷없이 하양이 덮고 말았다. 가을의 심술이었다. 하양은 하양이 아닌 순백의 품위를 안고 있었으니 가을의 백미였다. 이내 찾아온 햇살 따라 순백의 색깔은 하양을 넘은 맑은 하양으로 둔갑하며 하늘 속을 헤매고 있다. 순간, 호숫가에 서 튀어 오른 햇살을 되받은 억새는 순백의 하양으로 백색의 풍미를 더했다. 하양이 하양만으로 끝나게 하는 가을이 아니었다. 가을 속에 만나는 색깔의 조화는 먼 산에서도 만날 수 있다. 야, 저런 빛깔이 있을 수 있구나! 낙엽송의 푸름이 만들어 낸 색깔이다. 푸름의 지루함을 달래던 잎새, 어느덧 누름의 성스러움을 안고 있었다. 점점 햇살이 전해진 낙엽송은 이내 숨겨 온 색을 꺼내 들었다.

맑게 빛나는 황금색이 선을 보이더니 여기에도 햇살은 그냥 두질 않았다. 노릇한 주황이 바친 소나무의 푸름이 가득한 산이었다. 발길을 움켜잡은 빛깔은 이내 인간은 어림도 없었다. 저런 빛깔을 담아낼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수작이었다. 주황이 물든 산가에 내린 햇살, 거기에도 미묘한 색의 조화가 있었다. 주변의 푸름이 강한 주황으로 어울린 산, 햇살의 방향에 따른 조화는 신기했다. 연함이 주어지더니 이내 강함이 반전됐고 점점 하양이 가미된 주황으로 변신을 했다. 주황의 변함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다던가? 주황의 그리움은 감나무로 익어갔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하늘 속에 바람 그네를 타는 감이었다. 

뒤뜰에 자리한 터줏대감은 단연 감나무였다. 둥근 몸집을 자랑하는 감나무에서 어울리지 않는 연초록이 선을 보였다. 초봄에 만난 색이었다. 서서히 연초록이 강인한 비바람을 버티고 살아남았다. 기어이 진한 초록으로 물들어 갈 무렵, 아기 조막만 한 푸른 열매가 얼굴을 내밀었다. 올망졸망 내민 얼굴은 이내 여름을 이겨내고, 서서히 푸름을 자랑하더니 서서히 주황빛으로 변신했다. 주황의 조화는 세월이 더해줬다. 잎은 초록이 주황빛 되어 아기 감과 어울리며 서서히 붉음이 되어갔다. 덩달아 신이 난 열매는 주황이 진해지더니 붉음으로 변신하고 말았다. 서서히 가을이 찾아온 것이다. 가끔은 빨강 빛으로 홍시로 변했고, 끝까지 주황으로 물들어 지조를 지켰다. 너그러운 주인장의 은혜로 까치밥이 된 붉음 몇 송이가, 바람 그네를 타는 가을 속 그리움이었다.  

가을 속엔 갖가지 사연과 색깔이 있다. 계절 따라 변하는 색깔을 찾아 이리저리 나서는 가을 나들이다. 곳곳에서 만나는 가을 빛깔이 가는 걸음을 멈추었다. 붉음도 보고 싶고 노랑도 갖고 싶은 색깔이었다. 가지려 애를 쓰면 달아나고, 다시 또 다가서면 더 멀어지는 가을색이었다. 인간이 근접할 수 없는 가을 색이 온 세상에 가득하다. 색깔 따라 깊어진 가을이 주는 아름다움이다. 어설픈 인간의 힘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색, 다가서면 멀어지고 또 쫓아가면 더 멀어지는 가을 색이었다. 감히 다가설 수 없는 가을 색깔은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담아야 했다. 어디 색깔뿐이던가? 노랑도 그렇고 붉음도 그랬듯이 가을은 감히 가지려 하지 말고 가슴속에 담아둬야 했다. 가을은 모든 것을 범상치 않은 색깔로 대변하는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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