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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Oct 29. 2022

버티며 살아야 노란 은행잎도 볼 수 있다.

(아침운동을 하면서, 은행잎의 예술)

창밖에 은행나무는 지난해의 모습으로 팔랑거린다. 노랗게 물든 잎, 한쪽을 보여주더니 바로 반대쪽으로 돌아선다. 얇고도 노란 잎이 작은 바람도 이길 수 없어서다. 노란 은행잎이 대롱대롱 매달려 밝은 햇살을 맞이했다. 노란 잎을 통과한 햇살이 찾아온 아침,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 중이다. 지난해 그 가을이 다시 찾아와 바람과 놀고 있는 은행나무가 보이는 체육관이다. 


힘겹게 뛰는 러닝머신 위에서 바라보는 창밖은 평화스럽기만 하다. 하늘은 높고, 앞 산에는 맑은 햇살이 반짝인다. 어렵게 5km 뛰는 것을 버티고 있다. 똑같은 동작을 반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한다. 거리에서 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쓰이는 근육이 다르고 기분이 다르다. 40여분 근육운동을 하고, 러닝머신 위에서 열심히 뛰는 중이다

지난해의 그 가을입니다.

세월의 흐름이 빠르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운동이다. 여느 때와 같이 근육운동을 마치고 러닝머신 위에 올랐다. 보통 때와 같이 5km 정도 뛰고 나면 땀이 흐른다. 언제나 상쾌하고도 소중한 땀이다. 온몸이 흠뻑 젖게 해주는 땀, 더워서 흘리는 땀과는 질이 다르다. 마무리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나면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짜릿함이 찾아온다. 여기에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30여 년을 해 오는 삶의 루틴이다. 일주일에 세 번, 죽지 않았으면 해 오는 일과다. 근무 중일 때에는 새벽 5시에 시작을 했고, 지금은 시간이 되는대로 가는 체육관이다. 


운동을 해야 해서 가고, 심심하면 간다. 할 일이 없으면 또 간다. 늘, 운동하는 것이 밥 먹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오늘도 갖가지 운동을 하면서 늘,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게도 버텨야 하고, 지루함도 참아야 한다. 운동이 그렇고, 삶이 그러하다. 오래전, 하프마라톤을 할 때의 기억이다.


어떻게 하프마라톤 거리를 뛸 수 있을까? 내심 시험해 보고 싶어 시작한 하프코스였다. 21km를 한번 달려 볼까? 나도 버틸 수 있을까? 힘을 다해 뛰어보니 뛸 수 있었다. 야, 하면 되는 것이구나! 이렇게 시작한 하프마라톤을 수없이 달렸다. 아침에도 달렸고, 밤에도 달렸다. 친구들이 마라톤 하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길가에서 뛰는 것을 보았단다. 언덕을 오르면서의 생각, 이 언덕만 버티어 내면 된다. 이를 악물고 오르고 나면 찾아오는 것은 통쾌함이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짜릿함이었다. 

칠자화 꽃이 피었습니다. 

아, 정말 통쾌하구나! 이래서 운동하는 거네. 끝없이 달리고 달렸던 하프마라톤을 하면서 풀코스가 궁금했다. 풀코스, 할 수 있을까? 남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한 번 해 봐야지,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또 할까? 시작하려는 순간, 망설임을 알았는지 무릎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프 마파톤으로 만족하라는 신호가 왔다. 할 수 없이 하프 마라톤만 한 이유다. 세월이 가면서 서서히 하프마라톤이 10km가 되었다. 


마라톤을 버틴 근육으로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자전거를 타야 하니 체육관에선 5km만 고집하는 이유였다.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는데 또 일주일에 서너 번 10km를 뛰는 것은 무리였다. 할 수 없이 5km를 고집하면서 운동을 한다. 얼마 전, 5km를 뛰면서 이 거리도 힘에 겨웠다. 갑자기 숨이 벅차고 무릎이 버티질 못한다. 야, 큰일 났다. 아내에게 이야기하면 당장 그만 두라 할 테니 모른 척했다. 다시 체육관에 들러 뛰어 본 5km는 역시 힘에 겨웠다. 다시 걱정되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 자전거는 계속 타야 하기에 얼마간의 쉼을 두었다가, 오늘 5km를 시험해 본 것이다. 가볍게 근육운동을 하고, 러닝머신에 올랐다. 서서히 속도를 올리면서 달려가는 5km의 거리다.


처음에 숨이 가쁘더니 점점 익숙해지는 심장이다. 젊음의 기억에 머무르면 안 되는 세월, 이 거리만이라도 오래도록 버티어 보려 한다. 근육운동 후에 뛰어보는 거리로는 적당하다는 생각이다. 숨이 참아줄까 고민했지만, 오늘은 수월하게 5km를 뛰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얼마 전의 상태로 되돌아와 살랑대는 은행잎이 보이는 것이었다. 5km도 뛰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40여분의 근육운동과 5km의 달리기가 만만치 않은 세월이 되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노랑으로 가을을 초대합니다.

어렵게 만든 근육을 보면서 언젠가 그려봤던 복근이 생각난다. 무던히도 버티며 만든 근육들,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를 수 있는 소중한 재산이다. 고집스럽게 버티며 드나들던 체육관이 만들어준 보물이다. 젊은이들과 같은 몸은 아니어도 근육으로 만들어진 어설픈 복근은 그런대로 쓸만하다. 근육을 위해서라도 버티어야 한다. 단단한 근육으로 무장하고, 뛰어 보는 5km의 달리기다. 운동도 그렇고, 삶도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다. 언제까지 버티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가까운 거리 5km, 노란 은행잎을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버티어야 한다. 노랑 은행잎 팔랑거림에 눈이 부신 가을을 많이 보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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