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Sep 12. 2022

누룽 국수 찾아 헤맨 제자는 여든이 넘으셨다.

(자전거 길에 만난 이야기, 태백에서 만난 닭국수)

날씨가 선선해진 9월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 자전거길에 올랐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자전거 길은 한 여름 더위에 밀려 산을 찾아가던 친구들과 동행했다. 언제나 설레는 길이지만 오랜만에 오른 자전거길, 엉덩이가 아려온다. 한동안 멀리했던 자전거가 서운해 골을 부린 것이다. 한 달여를 쉬었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길엔 지난해의 가을이 성큼 와 있었다. 여름을 이겨낸 논 자락엔 누런 벼가 고개를 숙였다. 따가운 햇살 아래 탐스럽게 익은 벼이삭이 무거운 모양이다. 벌써 벼를 베는 농부는 쉴틈이 없다. 부지런이 오가는 거대한 탈곡기가 세월이 변했음을 알려준다. 아버지의 등짐을 빌려 고단한 타작을 했던 기억이다. 서서히 자전거 속도를 올려 들길을 벗어났다. 그 길엔 늘 들러야 하는 방앗간이 있다.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골의 작은 가게다. 가게를 열고 농사를 짓는 여자 주인장, 가끔은 장작을 패기도 하는 여장부다. 농사일이 바쁘니 알아서 찾아 먹으라고도 한다. 막걸리 한 병에도 김치 그릇을 내놓는 오랜 단골이다. 오랜만에 들렀더니 자전거 타는 법을 잊지 않았느냐 한다. 한 달 만에 찾은 손님 보고 하는 인사다. 소소한 물건을 파는 시골 상점엔 음식도 겸하고 있다. 닭백숙도 있고 각종 국수도 있다. 콩국수에 누룽 극수가 단돈 4,000원이면 족하다. 어디서 이런 가격을 볼 수 있나? 시골의 구수한 국수 맛이다. 시원한 음료수를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거칠 것이 없는 훈훈한 대화다. 여자 주인장, 오늘은 이야기 주제가 다르다. 대뜸 얼마 전부터 귀한 손님이 찾아온단다. 주인장은 신이 나서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저 산을 넘어야 한다(낙동강 라이딩 길)

어느 날 찾아오신 여든은 넘은 듯한 노인, 누룽 국수를 해줄 수 있느냐 하셨단다. 해 줄 수 있다는 대답에 서슴없이 누룽 국수 2인분을 예약해 놓고 홀연히 돌아가셨고. 예약 전날 다시 확인 전화가 왔었는데, 예약한 날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80이 넘은 국수를 예약한 어르신이 90이 넘은 멋진 노인을 모시고 나타나신 것이다. 극진한 예의를 갖춰 모시고 온 어른을 의자에 안내하는데, 보통 사이가 아닌 듯했다. 두 사람은 어떤 사이일까? 부모 같지는 않고 도저히 알 수 없는 관계였다. 누룽 국수를 차려 드리고 나누는 대화를 듣어 보니 은사와 제자 사이였단다. 은사님을 대하는 모습이 너무 극진해 깜짝 놀랐다. 90이 넘은 꼿꼿한 노인은 80이 넘은 노인의 존경하는 은사님, 그 외에는 언급이 없었다. 


제자와 은사 관계지만 그렇게 정중할 수가 없었단다. 공손하게 수저를 드리고, 음식을 들기 좋게 놓아 드리는 것이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 도대체 누구인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고. 한참 지나 어디에 사시는 누구냐는 질문엔 대답이 없고, 이름을 대면 알만한 사람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의자에 정중이 모신 어르신, 갖가지 시중을 다 들어주며 은사를 모시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90이 넘은 은사님은 누룽 국수가 그리운 음식이었다. 오래 전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누룽 국수가 그리웠던 은사님을 모시고, 80 제자가 찾아온 사연은 이러했다.  

김홍도의 서당

시내버스를 타고 지나는 길, 노인은 누룽 극수를 해준다는 가게 앞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누룽 국수가 그리웠던 노인은 궁리 끝에 제자에게 얼핏 이야기를 하셨다. 노인은 제자에게 누룽 국수 현수막 이야기를 했지만, 그 사이에 현수막은 비바람에 찢겨 떨어지고 말았다. 누룽 국숫집을 찾던 제자는 고민에 빠졌다. 길을 오가면서 아무리 찾아봐도 현수막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바람에 찢기어진 현수막은 오간 데가 없었고 제자는 고민에 빠졌다. 궁리 끝에 도로에 있는 모든 음식점에 들러 누룽 국숫집을 찾아 나선 제자였다. 더위도 마다하고 은사님의 말씀을 들은 80 노인 제자는 누룽 국숫집을 찾아 나선 것이다. 


간단한 배낭에 물 하나를 넣고 십리 길을 걸어 누룽 국숫집을 찾아 나선 제자, 무더위도 마다하고 국숫집을 찾아야만 했다. 오가는 사람에게 묻고 또 물었다. 모든 상점에 들러 국숫집을 찾던 여든의 제자가 고생 끝에 찾아낸 누룽 국숫집이었다. 은사님이 그리워하시던 국숫집을 찾았고, 은사님을 모시고 찾은 것이었다. 정중히 의자에 모시고 시중을 드는 제자, 도저히 만날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어도 아직 찾아볼 수 있는 따스함이 있는 국수상이었다. 은사님은 누룽 국수가 그리웠고, 갖가지 나물이 곁들여진 보리밥이 또 그리웠다. 오래전엔 주식이었던 보리밥은 어르신들에게는 따스한 추억의 밥상이었으리라.


다시 제자는 보리밥을 예약했고, 은사님과 함께 가게를 찾았다. 예약을 한 후, 하루 전에 반드시 확인 전화를 한다.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은사님을 전중히 모신 제자는 공손함에 모자람이 없었다. 갖가지 나물을 넣은 비빔밥을 원하는 은사님이다. 보리밥에 넣어야 할 나물을 일일이 묻고, 젓가락으로 넣으며 시중들 든다. 다소곳이 보리밥을 비며 은사님이 뜨시게 좋게 대령했다. 은사님을 모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제자였다. 은사님의 입맛은 돼지고기 수육으로 옮겨갔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주인장 왈, 웬만해서는 해 줄 수 없는 음식이란다. 농사일이 바쁘기도 하지만 돈을 따지면 얼마 남지도 않는 돼지고기 수육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80이 넘은 제자의 부탁에 어쩔 수없이 고기를 사다 수육을 해 드렸단다. 세상이 이럴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누구신가 알고 싶어 성함을 물었지만, 또다시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단다. 가게를 찾은 손님과 이야기를 하던 중, 우연히 찾은 지방신문 기자가 솔깃했다. 얼마나 훈훈한 이야깃거리겠는가? 지방신문기자의 부탁으로 누군가를 알고 싶었지만 또다시 묵묵부답이었다. 스스럼없는 농담 속에는 멋진 사람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가게 주인이다. 어떻게 그런 음식을 해 줄 수 있었느냐는 말에 제자의 성의에 거절할 수가 없었단다. 아무리 힘겹고 바빠도 해줘야 하는 어르신이었단다. 


웃으며 주고받는 이야기지만 가슴이 뜨끔해진다. 40여 년을 교단에 있었고, 십수 년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어느 위치쯤에 서 있는 것일까? 졸업한지 50년이 지난 고등학교 친구들이 떠 오른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고등학교 은사님, 추석이 지나고 성묘를 가자는 연락이다. 그랬지, 여든의 제자처럼 살진 못했어도 비슷하게는 살았지. 하지만 생각도 못하는 기사들이 측은하게 한다. 갖가지 사연들이 신문을 장식하고 있는 세월, 무엇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는가? 웃통을 벗고 수업을 받는다. 선생님을 촬영했느니 아니니 떠들고 있다. 하필이면 수업시간에 교단에 누워 충전을 해야 한단 말인가? 어처구니없는 일들 훌훌 털어 버리고 자전거길에 올랐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구질구질한 생각 날려 버리며 성스런 가을이나 찾고 싶어서다. 가을은 어김없이 가슴으로 오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가 쓰레기통을 홀대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