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따라 여행길, 율포 앞바다)
가을이 오면 반드시 찾아가야 하는 곳이 서너 군데 있다. 우선은 영주 부석사의 붉음과 노랑을 보아야 한다. 부석사 오르는 길에서 만나는 노란 은행나무와 붉은 사과빛과의 조화는 천상 가을날의 진수이기 때문이다. 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은 여러 곳이 있지만 간월도 어리굴젓이 곁들여진 별미여행이 있다. 짭조름한 어리굴젓이 하얀 쌀밥 위에 앉아 있다. 깨소금으로 치장한 어리굴젓 맛을 포기할 수 없어서다. 또 한 군데 남아 있는 곳이 보성땅 벌교의 꼬막정식, 가을을 넘기고 말았으니 아내와 짐을 챙겨 여행길에 올라야 했다. 오랜만에 떠나는 보성땅은 푸름으로 가득한 곳이다. 곳곳에 녹차밭이 자리하고 있어 언제나 초록으로 가득하다. 망설이던 녹차밭 여행, 허기짐에 지쳐 율포로 직행했다.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하지 않을까 해서다.
서둘러 찾아간 맛집은 이름도 긴 녹차우렁 강된장 쌈밥집이었다. 보성땅이니 녹차가 들어있어야 하고, 강된장이니 두부, 표고버섯 등이 가미된 된장이어야 했다. 여기에 배추와 상추 그리고 연한 열무가 쌈으로 등장했다. 갖가지 나물을 넣고 비며 낸 뒤, 심심한 강된장과 함께 열무잎에 싸서 한 볼태기 넣는다. 여기에 시골스런 된장국을 한 숟가락 떠 넣으면 부러울 것이 없다. 한참의 숟가락질로 배가 불러오는데, 옆 좌석 아주머니들의 수다는 그칠 줄 모른다. 소주 한잔에 얼큰해진 얼굴에 큰 목소리 자랑하듯 떠드는 아주머니들이다. 뇌 속까지 울리는 소리에 얼른 일어서는 수밖에 없다. 남은 곳은 율포 해수탕이었다. 언제나 따스함이 가득한 곳이다.
식곤증이 찾아온 오후, 해수탕으로 빠져들기는 배가 너무 부르다. 소주 한 잔 곁들일 회 한 접시와 매운탕 거리를 준비한 후, 하룻저녁 쉴 숙소를 찾아 나섰다. 토요일이니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고 관광객들을 찾기가 힘들다. 아, 여기도 살아가기는 힘들구나! 곳곳에 있던 그 많은 숙소와 민박집 그리고 펜션이 있지만 문이 닫혔다. 사람이 찾지 않아 문을 닫았단다. 간판만 있을 뿐 잘 곳이 없다. 동해안 자전거 여행길이 떠 올랐다. 동해안에도 하루 쉴만한 펜션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든 펜션이 문을 닫았는데, 경기가 없어서 손님이 없단다. 문을 열면 손해가 되어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단다. 가까스로 펜션 하나를 잡아 놓고 해수탕으로 향했다. 역시, 해수탕은 명성에 어울리게 사람들로 붐볐다.
아주 오래전, 허름한 건물에서 꾸려 나가던 해수탕이었다. 오래된 건물에 시설도 부실했던 곳이다. 그럴듯한 건물이 자리 잡고 손님을 모으고 있다. 널찍한 탕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는 조용하고도 평화롭다. 따스한 물에 몸을 담그고 앉아있는 편안함은 수백 킬로를 달려온 피로를 말끔히 씻어 준다. 와, 해수탕을 이래서 즐기는구나! 따스함에 싱그러움까지 주는 해수탕에 한나절을 뒹굴었다. 한참의 피로를 해결하고 숙소로 향했다. 오랜만에 묵은지가 곁들여진 회와 매운탕, 거기에 소맥이 빠질 수 없다. 한가함에 고요함까지 함께한 아내와의 한잔은 남도에서 만나는 즐거움 중에 하나다. 이런 맛에 또, 남도를 찾아오는구나! 긴 밤을 자고 나선 바닷가는 그야말로 남해의 멋진 그림을 선사했다.
아직도 겨울이지만 남도의 봄은 머지않았다. 붉게 떠오르는 햇살에 푸름이 가득한 남도지방, 언뜻 이런 곳에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따스한 남쪽 나라, 얼마나 아늑하고 편안할 것인가! 한참의 거닐음 속에 겨울날의 남도 맛을 만끽한다. 이젠, 먹거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직선의 고속도로를 외면하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찾아 나섰다. 여기가 남도임을 알려주는 구불구불한 바닷가, 곳곳에 집들이 들어서 있다. 갖가지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골짜기엔 햇살이 찾아왔다. 굽이진 바닷길을 따라나서는 벌교의 맛집, 늘 찾아가는 꼬막정식집이다. 언제나 지리산이 있고 조정래 님이 있어 푸근한 곳, 벌교에 도착했다. 추운 겨울인양 서늘한 바람이 찾아오는 벌교는 언제 봐도 정이 가는 고장이다. 일찍 들어선 식당에는 사람이 없다. 어쩔까? 밥을 주려나?
조심스레 들어선 식당엔 손님이 없지만, 식사는 준비되었단다. 오랜만에 찾아온 단골집은 변함이 없다. 곳곳에 유명인들의 사진이 걸려있고 많은 종업원들이 바쁘게 오고 간다. 조금의 기다림 끝에 차려진 밥상,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갖가지 해물 반찬과 꼬막으로 만들어진 음식들이다. 우선은 채소가 곁들여진 꼬막무침이 으뜸이고, 삶은 꼬막이 뽀얗게 앉아 있다. 꼬막이 들어선 부침개는 노릇한 빛을 발하고 있고, 꼬막이 듬뿍 들어간 된장국이 일품이다. 노란 꼬막 튀김도 한 자리하고 있고, 양념으로만 무장한 꼬막무침도 입맛을 돋우었다. 우선은 꼬막으로 입맛을 돋우어야 한다. 꼬막 부침개와 꼬막 튀김으로 워밍업을 한다. 풍성함이 가득한 입안이다. 다시 삶은 꼬막을 정성스레 벗겨 입에 넣으니 고소함과 달큼함이 어우러진 꼬막맛이 일품이다.
입이 심심하면 꼬막 된장국으로 입가심을 하고, 꼬막 무침으로 간을 맞춘다. 이젠, 꼬막정식의 중심 비빔밥을 제조해야 한다. 고실고실한 쌀밥에 채소가 곁들여진 꼬막무침을 넣는다. 여기에 콩나물과 시금치 그리고 각종 야채를 넣고, 고소한 김가루를 빼놓을 수 없다. 참기름으로 화장을 하고 나면 이보다 더한 맛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한 술을 크게 떠서 입안에 넣으면 우선은 고소한 참기름과 김가루가 침샘을 자극한다. 이어서 짭조름한 꼬막이 씹히면서 여기가 벌교임을 알려주면, 구수한 된장국이 들어와 개운함을 선사한다. 이어지는 숟가락질이 끊임이 없으니 먼 길을 찾아온 보람을 찾을 수 있다. 한참의 노력 끝에 한 상이 비워지면, 벌교여행의 정점이 다다른다. 배가 불렀으니 별교의 재래시장을 외면할 수 없다.
곳곳에 키위를 놓고 여행객을 유혹한다. 오래전에 찾았던 벌교, 추운 몸을 덮었던 옷이 너무 더웠다. 여름옷을 사 입어야 했던 기억이 떠 오른다. 벌교에 키위가 많은 이유였다. 중국 남부에서 재배되다 뉴질랜드로 전해졌고, 뉴질랜드 키위새와 비슷하여 '키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70년대 제주도와 남부지방에 재배된 키위, 벌교 날씨가 제격이란다. 시장에서 만난 아주머니, 키위의 전문가답게 설명해 준다. 비교할 수 없는 값에 얼른 한 상자를 사고, 봄의 전령인 달래를 외면할 수 없었다. 여기도 삶은 팍팍해 인적이 뜸한 시장터지만 곳곳에 커피집은 들어서 있다. 전국이 커피 향으로 덮을 정도의 수많은 커피집, 삶의 모습이 변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서둘러 베이스캠프로 돌아와야 하는 길이지만 맛의 고장 순창은 피할 수 없다. 고추장이 있고 된장이 있으며 삶의 이야기가 가득한 곳이다.
한참을 돌아 찾아간 순창은 역시, 많이 변한 모습이다. 반듯한 도로가 오래 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삶의 이야기가 가득한 고추장민속마을에 도착했다.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 장아찌를 맛보기 위해서다. 남도여행길엔 반드시 찾아가는 여행길이다. 여기도 삶은 녹녹지 않음을 알게 한다. 오가는 사람들이 뜸하고, 곳곳엔 문을 닫은 상점이 많다. 쓸쓸함이 가득하던 발길, 한 할아버지가 발길을 잡는다. 얼른 들어와 보란다. 할아버지를 따라 들어선 곳도 손님은 우리뿐이다. 식탁에 차려진 갖가지 장아찌를 맛보며 지난날을 기억해 본다. 언제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곳곳에 사람이 넘쳐 오갈 수가 없는 여행길이었다. 보성도 그렇고 벌교도 썰렁했다. 여기 순창도 사람 발길이 뜸한 것은 왜일까? 얼른 장아찌 몇 개 안고 돌아오는 남도의 여행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