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운동을 하며)
봄이 오자 연초록 물이 들었다. 세찬 여름비 속에 진초록이 된 은행나무, 가을 깊어지면서 노란색으로 물들여야 했다. 바람이 불면 기력이 다 한 듯이 노랑잎을 팔랑이며 이쪽과 저쪽을 보여줬다. 운동을 하는 체육관 앞에 있던 은행나무의 지난가을 모습이었다. 더 가을이 익어 갈 무렵, 가느다란 바람도 힘에 겨워 잎을 떨구었다. 앙상한 가지에 긴긴 눈보라를 이겨냈고, 아직도 일렁이며 계절을 즐기고 있다. 운동을 하며 창문을 통해 바라본 풍경이다. 어디를 가는지 도로엔 수많은 차량들이 오고 간다. 뭐가 그리 바쁠까?
살아 있으면 찾아가는 체육관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간 체육관, 힘겹게 40여 분간 근육을 풀어내고 올라선 러닝머신이다. 옆에선 젊은 청춘이 열심히 달리고 있다. 무엇이 궁금한지 연신 핸드폰에 눈을 두고, 헐떡이며 힘차게 내딛는다. 역시 젊은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이내 멈추고 만다. 도저히 뛸 수 없는지 포기하고 만다. 조금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뛰었으면 하는 아쉬움에 천천히 속도를 올렸다. 오늘도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운동이다. 하프마라톤으로 다진 몸이 어느덧 10km도 힘겨웠고, 이젠 5km로 만족하고 있는 늙은 청춘이다. 아직은 참을 만 하지만 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몸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말에 오늘도 쉴 수가 없다. 운동한 것도 기억하지만, 술 마신 것도 기억한단다. 짧은 5km라도 뛰며 살아있음을 확인해야 하루가 편하다. 운동 한 거리를 보며 뛰면 더 힘이 든다. 창문을 통해 자연을 친구 삼아 운동을 하는 이유다. 창밖으로 눈을 돌리자 눈에 들어온 것이 은행나무였다. 지난해 넉넉한 푸름을 자랑하던 은행나무, 노랗게 물이 들더니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차가운 겨울 속에서도 계절을 즐기는 듯한 은행나무,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추운 바람에 흔들림이 살아있고, 탄탄한 너울거림이 의젓하다. 바람결에 흔들림이 살아있는 흔들림이었다.
누구의 세월인들 멈출 수가 있겠는가? 야속하리만큼 정직한 세월은 더듬거리지만 흘러갔다. 몇 해 전의 사진이 낯설고, 지난해의 얼굴도 어설프다. 어설픈 얼굴을 되찾으려 산도 가고, 자전거에도 오른다. 하지만 그 얼굴이야 찾을 수가 있다던가? 오래 전의 기억에 세월을 탓할 수도 없는 몸, 흐름 속에 몸을 맡기며 살아가기로 했다. 20km를 뛰다 갑자기 숨이 가빠진 날, 한동안 말을 잊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전과 같지 않은 몸을 인정할 수 없어서다. 기어이 같은 거리를 뛰어야 했다. 몸은 망가져도 같은 거리를 뛰어야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이젠, 감당할 수 없는 거리가 된 것이다. 오래 전의 기억을 고집해선 안 되는 세월이 된 것이다.
계절을 즐기는 은행나무의 흔들림을 보며 천천히 속도를 높여 본다. 살아 있음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다. 조금만 더 버티면 5km를 넉넉히 주파할 수 있다. 시속 10km로 달리던 몸이 어느새 시속 8km가 적당하다 한다. 언제 이렇게 되었지? 하프코스를 두 시간도 되지 않아 돌아오곤 했다. 기어이 흐르는 세월이 알았는가 보다. 가끔은 튼튼하던 무릎이 골을 부리고, 가슴이 엄살을 떤다. 힘차게 내딛는 달림이어야 하는데, 가끔은 숨이 가쁘다. 자전거로 단련하고 산행으로 다져진 몸이 힘들다 한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고, 긴 산길을 넘어오던 종아리가 쉬었다 가자한다. 하루종일 페달을 밟던 허벅지가 고단하다 응석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세월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다. 바람에 일렁이는 은행나무가 있다. 추운 겨울에 거역하지 않고 순리대로 일렁이고 있다. 계절 따라 푸름이 노랑이 되고, 힘겨우면 노랑마저 떨쳐내야 했다. 온몸을 지켜주던 잎마저 떨구어야 살아 낼 수 있다. 계절에 순응하는 은행나무다. 지난날을 기억하며 한 순간에 달려갈 수 있는 젊은이가 아님을 알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조금은 느려도 꾸준하게 달려야겠다. 40여분의 힘겨운 근육 운동과 5km의 달리기를 하면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운동이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얼마 남지 않은 5km를 마저 달려야 한다. 오래 전의 기억은 떨구어 내고, 계절에 순응하는 은행나무처럼 달려야 한다. 오늘도 살아 있음을 확인했으니 마음만은 넉넉해진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