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맑은 아침이 너무 좋다.

(아침 해를 맞이며, 골짜기 풍경)

by 바람마냥

시골집 앞엔 높은 산이 있고 많은 나무들이 있었다. 산을 넘은 햇살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는 숲이었다. 가끔 밝은 화살이 되어 찾아온 햇살이 너무 반가웠던 지난해였다. 지난해 가을, 앞산을 벌목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렇게도 많은 혜택을 주는 나무를 베면 어떻게 살아갈까? 너무나 상심이 되어 한동안 머리가 아프기까지 했다. 봄철에 갖가지 푸름과 나물을 주고 여름내 그늘을 만들어 주던 숲이다. 가을 다가왔다. 곳곳에 떨어지는 알밤소리와 도토리가 곳곳에 굴러다녔다. 푸른 잣나무엔 청설모가 오르내리고, 한적한 곳엔 다람쥐가 한가하게 앉아 잣을 까먹던 평화스러운 마을이었는데.


느닷없이 들이닥친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나무를 베었다. 한참을 바라보다 올라선 산말랭이엔 톱소리만 요란했고 사람의 기척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말을 걸자 바라본 일꾼, 위험하니 가까이 오지 말란다. 다가서면 한 대 쥐어박을 기세였다. 한참을 망설이다 앞 집에 사는 사람이라는 말에 허리를 편다. 나무는 일정 세월이 되면 수명이 다 한단다. 수명을 넘기면 저절로 수명을 다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수명이 다하기 전에 베고 다른 나무를 심는 이유란다. 며칠을 고민하던 머리를 끄떡이는 수밖에 없었다. 한 달여의 소란스러움 끝에 앞산은 민둥산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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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겨울이 찾아왔다. 동네에 들어서면 보이는 민둥산이 바로 시골집 앞산이다. 마치 머리를 깎다 만 형상을 하고 나타난 앞산, 어쩌다 저런 모양이 되었을까? 자연의 이치를 따라야 하다니 어쩔 수 없음은 안다. 하지만 반가움도 있다. 산을 넘은 햇살이 거칠 것이 없다. 우거진 숲을 비집고 찾아오던 햇살이 순식간에 찾아온다. 맑은 햇살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우거진 숲을 지나야 하는 고난의 역경이 없어진 것이다. 겨울이면 빙판이 되던 동네 길, 내린 눈이 순식간에 녹는다. 하얀 눈이 가득 내린 앞산에 햇살이 찾아왔다. 야, 이런 햇살을 또다시 만나는구나! 시골에 자리를 잡고 잠시 만날 수 있던 햇살을 눈치도 보지 않고 만날 수 있다.


시골로 자리를 잡은 후, 맑은 햇살이 좋아 새벽같이 일어났다. 맑고도 깨끗한 햇살을 쉬이 보내고 싶지 않아서다. 녹음 위에 떨어진 맑은 햇살을 한 줌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눈을 뗄 수 없는 해맑은 햇살에 눈을 감고 말았다. 이슬 위에 떨어진 햇살은 어떠했는가? 붉은 방울토마토에 이슬이 내렸고, 이슬 위에 앉은 맑은 햇살에 눈이 멎었다. 어느 틈에 흘러내린 눈물을 얼른 닦고 말았다. 야, 이런 햇살을 보고 살 수 있다니, 너무 행복한 아침이었다. 잔잔한 텃밭을 찾은 햇살은 넉넉히 녹음을 어루만졌다. 어느 틈에 자란 녹음은 햇살의 고마움에 너울 거렸다. 시골에 자리를 잡고 만났던 행복한 아침햇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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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앞에는 작은 도랑이 있다. 사시사철 끊임이 없음에 늘 감사한 도랑이다. 어린 시절을 소환해 주고, 시골집을 연상케 하는 귀중한 도랑이다. 도란도란 흘러내리는 물 위로 내린 햇살, 맑고 투명함에 숨이 멎는다. 한참을 바라보는 아침, 얼른 뛰어내려 만나보고 싶다. 행복한 순간이 흐트러질 것 같아 숨을 멈추고 바라만 보던 햇살이었다. 녹음이 없어짐에 원망만 하던 앞산, 풍성하던 녹음은 볼 수 없다. 갖가지 나물을 주던 그리움도 몇 년 후에나 만날 수 있다. 많은 산식구들의 살 곳이 없어지고 말았다. 다람쥐가 오고 고라니가 오던 곳, 저녁이면 뻐꾸기가 찾아오던 곳이다. 드문드문 찾아오던 부엉이가 울고, 여름내 울어대던 매미가 찾던 곳이다. 이젠, 많은 산식구들을 볼 수 없지만 그곳엔 맑은 햇살이 내려왔다. 하얀 눈 위에 내려온 햇살은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는 맑음이다.


거침없이 찾아온 햇살은 여전했다. 녹음을 비집고 찾아온 햇살이 귀했다면, 산을 넘은 넉넉한 햇살은 너무나 소중했다. 도랑에 내려온 햇살은 지난해의 수줍은 햇살이 아니다. 넉넉함을 안은 햇살은 오래전 네팔 포카라에서 만났던 그 햇살이다. 히말라야의 끄트머리에 앉은 페와 호수의 천상에서 떨어진 그 햇살이었다. 천상에서 내려온 그 햇살은 맑음이 가득했다. 투명한 빙하가 식어 내린 영롱한 물을 닮은 햇살이었다. 어느 가을, 햇살이 맑은 이슬 위로 내려왔다. 맑고도 투명한 이슬에 비친 햇살은 얼른 튀어 오르고 말았다. 해맑은 이슬에 닿을 수가 없는 수줍은 맑음이었다. 이젠, 맑은 햇살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아침이다. 가끔 고요함을 흩트려 놓는 도랑 물소리만 들려온다. 졸졸 흐르는 도랑물은 아직도 그침 없이 흐른다. 어디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가끔 찾아오는 산새가 작은 물살을 가르는 고요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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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햇살은 모든 것을 끌어 앉는다. 깨끗함도 서러움도 끌어안았고, 무엇도 그르침이 없이 살짝 왔다 슬그머니 가버린다. 살며시 골짜기를 찾은 맑은 햇살에 오랜만에 기지개를 켠다. 앞산에 녹음이 사라진 서러움을 한꺼번에 덮어주고 있다. 감히 다가설 수 없는 하양에 내려온 햇살이 반짝인다. 무슨 모습일까 다가선 하얀 눈은 내려온 햇살을 머금고 있다. 서서히 몸을 낮추어 가는 하얀 눈, 맑은 햇살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다. 점점 몸을 낮추는 하얀 눈이 아직도 햇살을 머금었다. 그예 햇살은 도랑을 살지게 할 모양이다. 따스함을 가득 안은 햇살이 온종일 눈 위에 앉아 있다. 하얀 눈이 작은 키를 낮추는 사이, 서서히 햇살이 작아지고 있다.


서서히 햇살이 작아질 무렵, 가느다란 도랑은 여전히 옹알거린다. 서서히 서산으로 햇살이 넘어갈 무렵엔 산말랭이 낙엽송이 일품이다. 드문드문 하양이 남아 있는 산에 아직도 맑은 주황빛이 있구나! 어느 화가도 만들 수 없는 맑은 주황을 아직도 햇살이 비추어 준다. 맑은 하양을 배경으로 비추는 주황빛은 서서히 산을 넘는 햇살이 하루를 마감하기 아쉬워함이다. 기어이 산을 넘은 햇살이 어둠에게 넘겨준 골짜기는 정적 속에 숨어든다. 고요함이 가득한 골짜기 어둠 속 산 말랭이엔 아직도 하양이 남아 있다. 앞산에 자리 잡은 겨울의 잔해가 남아서다. 종일 옹알대던 도랑물은 아직도 여념이 없고, 이웃집 닭소리만 정답게 들려오는 골짜기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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