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속에 반항, 사진출처 EBS )
아침 햇살이 비추기 전, 나무 의자에 앉았다. 머리를 깎기 위해 삐걱대는 나무의자에 앉은 것이다. 두어 달에 한 번쯤 찾아가 머리 깎는 집, 울타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초가지붕 처마 밑이다. 꺼벙 머리를 깎기 위해 아침 일찍 찾아온 머리 깎는 집, 일 년에 쌀 두어말 준다든가, 아니면 보리를 두어말 준다는 말만 듣고 수시로 드나드는 이발하는 집이다. 특별히 머리를 감겨주는 시설도 없고, 적당한 때와 머리칼이 묻은 허연 천으로 몸을 감싸고 머리를 깎는다.
새벽부터 찾아오는 이유가 있다. 머리 깎는 아저씨가 들로 나서기 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 늦으면 일을 하러 나서고, 누구라도 먼저 왔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허름한 나무 의자에 앉으면 아저씨는 작은 상자를 가지고 오신다. 작은 상자에는 머리를 깎는 가위와 기계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상자엔 이가 빠진 빗도 있고, 투박한 면도칼과 머리칼을 터는 솔도 보였다. 의자에 앉으면 허연 천으로 어깨 부분을 감싼다. 왜인지 몰랐지만 솔에 물을 묻혀 머리칼을 적신다. 아마 머리칼이 흩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면 온몸이 긴장을 하게 된다.
우선은 찬물이 머리에 닿는 느낌이 싫었다. 여름이면 다행이지만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경우엔 끔찍하게 싫었다. 다음에 머리를 깎는 기계를 들고 나서는데, 찬기계가 머리에 닿는 순간에 두 번째로 움찔하게 된다. 소비자를 생각하지 않은 주인장의 손길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이발소다. 드디어 머리를 깎는 시간이 되었다. 조금은 서툰 손놀림으로 기계가 오르내리는 순간, 또 한 번 움찔하기도 한다. 순전히 손가락 놀림만으로 오르내리는 기계, 가끔은 머리칼을 뜯어내는 듯한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따갑다는 표시는 낼 수 없어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아저씨는 전혀 개의치 않고 본업에 열중이시다. 한동안의 인내 끝에 머리 깎기가 끝머리에 도달했다.
한참의 노동 끝에 머리 깎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다시 면도의 순간이 돌아온다. 다시 긴장의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거무튀튀한 그릇에 놓인 하얀 비누엔 머리칼이 묻어 있다. 움푹 파인 비누 위에 놓인 거친 솔에 물을 찍어 서너 번 문지르지만 비누는 반응하지 않는다. 한번 더 물을 묻혀 문질러야 겨우 비누거품이 움직인다. 하얗지만 검음이 섞인 거품이 일어나면 살과 머리칼의 경계에 칠한다. 드디어 무서운 칼이 곳곳에 오르내린다. 겁에 질려 움찔거리는 소비자에겐 아랑곳하지 않고 면도칼은 노동을 계속한다. 새벽의 서늘한 공기가 몸을 감싼다. 거기에 차가운 면도칼, 검은 자루에 두툼한 몸집을 하고 있는 칼이다.
반으로 어설프게 접혀 있는 면도칼은 이발사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교묘하게 끼어있다. 손가락에 끼어 있는 둔탁한 면도칼을 손목만을 움직이며 신기하게 면도를 한다. 머리칼과 살과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나야 아슬아슬한 면도가 끝이 난다. 어수룩한 아저씨의 솜씨를 믿고 맡겼던 머리칼이 발아래 수북하게 쌓여 있다. 말없는 인내력 끝에 드디어 머리를 깎은 것이다. 동네의 유일한 이발사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내닫는다. 머리를 깎았지만 몸이 근질근질하기 때문이다. 허름한 흰 천을 둘렀지만 온전하게 머리칼을 방어했을 리 없다. 얼른 집으로 내달려 머리를 감아야 했다. 어머니가 데워 놓은 물에 머리를 감는 수밖에 없는 오래전 머리 깎는 풍경이다.
세월이 많이 변했고, 아저씨의 이발 솜씨는 세월 속으로 밀려났다. 남다른 기술을 뒤로하고 농사일에 전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난을 이기고자 동네를 떠났던 청년이 어엿한 이발사가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동네에 이발소를 차려놓고 이웃 동네 손님까지 불러 모았다. 동네에 신식 이발소가 들어서면서 호사를 누리나 했지만 허사였다. 대처에 있는 학교를 다니기 위해 동네를 떠나야만 해서다. 도시에서 만난 이발소,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신식 의자에 앉아 안락한 자세로 이발을 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까까머리 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에선 고단한 머리칼을 간수해야 했다. 참, 기구한 머리칼의 신세가 된 것이다.
느닷없이 뒤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경찰이 쫓아오는 것이다. 장발을 한 대학생을 잡으러 몇 명의 경찰이 쫓아오고 있다. 모든 힘을 다해 골목으로 달아나기도 하지만, 운이 없으면 그예 붙잡히고 만다. 여지없이 파출소로 소환되어 인적사항이 쓰이고 학생증을 맡겨야 했다. 머리를 깎고 와야만 학생증을 찾을 수 있고, 아니면 학교에 연락한다는 협박을 받기도 한다. 학교에 연락을 해 봐야 겁이 날 것은 없지만, 머리를 깎고 학생증을 찾아가야 하는 노고를 해야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세대에 태어난 죄었다. 머리를 기를 수 없었던 대학시절을 뒤로하고 군대를 갔다. 소위 스포츠머리라는 깔끔한 듯한 머리다. 감기가 편하고 간수하기가 한결 수월하지만, 멋이 그리운 젊음엔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서너 해의 참음 끝에 돌아온 현실, 남들에게 거슬리지 않는 머리여야 했다. 단정히 깎고 손질을 해야 하는 일자리는 늘 부담스럽기도 했다. 가끔은 현실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일탈을 하기도 했지만, 조금은 한계가 있는 몸짓이었다. 그럭저럭 세월은 흘렀고 다시 은퇴라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지만 가득하던 머리칼은 점점 휑해지며 세월의 흔적을 알려주었다. 어떻게 하면 될까? 저물어가는 머리칼 숫자에 고개를 끄덕이며 살아온 삶, 이제는 늙어감에 반항이라도 하고 싶었다. 조그마한 몸짓으로 머리칼에 새로움을 주고 싶었다. 가끔은 길게도 길러보고, 남들이 하는 파마라는 것도 맛보게 되었다. 다시금 서투른 일탈을 시도한 것이다.
소위 알록달록이라는 색깔의 변신을 도모해 보고 싶었다. 변화를 위한 긴 인내는 감내하더라도 머리칼의 숫자가 한계를 드러냈다. 철사와도 같던 질긴 머리칼이요 검은빛이 답답했던 머리칼이었고, 숱이 많아 고민이었던 머리칼이었다. 냉혹하리만큼 공정하게 흐른 세월은 머리칼도 그냥 두질 않았다. 흐물흐물한 머리칼의 숫자가 아쉬웠고 휑한 정수리가 시렸다. 어르신이 모자를 써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었다. 왜 어울리지 않는 모자를 쓰고 다닐까? 머리를 감고 나면 세면대가 머리칼에 아우성이었고, 온 방에서 춤을 추고 있다. 춤추는 머리칼이 보기 싫어 방안을 헤매야 했다.
오래전부터 들락거리던 미용실, 언제나 원하는 것을 연출해주지만 오늘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 할 수 있는 것은 파마와 몇 가지 색깔 그리고 길이의 변신만 가능했다. 다양한 색상으로의 변신이 어려웠고, 머리칼에 힘이 없어 한계가 있단다. 왜, 세월이 가기 전엔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렇게도 해보고 저런 변신도 해보고 싶지만, 세월은 허락지 않는다.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정해진 한계 내에서 이러저러한 변신을 도모해 보지만, 하늘하늘한 머리칼의 숫자에 아쉬움이 남는다. 어떻게 할까? 세월에 거슬리지 않는 용모에 어울리는 머리의 모습은 무엇일까? 에라 모르겠다. 파마 기운이 남아 있는 나약한 머리칼이지만, 길게 자라도록 인내심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긴 머리칼을 질끈 묶어 한번쯤 반항하고 싶은 늙은 청춘의 생각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