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 3국 여행을 마치고, 코카서스 산맥의 풍광)
코카서스 3국, 동유럽과 서아시아 사이 캅카스 지역에 위치한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의 3국으로,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부와, 남쪽으로는 이란과 티르키에 접해있다. 카스피해와 흑해를 가로지르는 캅카스 산맥을 중심으로 위치한 코카스서는 Caucasus의 영어식 발음이다. 코로나시대가 지나면서 해외여행이 활성화되고 있던 시절, 코카서스 3국의 삶의 궁금했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긴, 지금 가지 않으면 평생 갈 수 없다는 생각에 패키지여행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평생을 배낭여행으로 다져진 몸이지만 늙어가는 청춘은 두렵기도 했다. 아내의 걸음걸이가 시원치 않아 편할리 없는 여행은 친구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에 출발했다. 출발하기 전, 많은 공부를 해야 했지만 이리저리 바쁘다는 핑계로 가까스로 동선과 지역명칭만 기억하며 출발했다. 출발 전에 국내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서 마음이 놓인 것은, 활달하면서도 서글서글하다는 인상이었다. 언젠가 모로코 여행에서 만났던 가이드 생각이 났다. 거만한 듯이 버스에 올라 여행안내서를 보여달라는 가이드, 여행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전혀 준비가 없는 듯한 태도, 무엇이든지 알고 있다는 태도가 불손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언제나 인천공항은 텅 빈 가슴을 만들어 준다. 복잡한 일상사를 통째로 털어버릴 수 있는 곳, 아무 생각이 없어 좋다. 수없이 드나든 인천공항이지만 긴장이 되어도 전혀 부담이 없는 텅 빈 가슴이다. 멍하니 앉아 낯선 곳의 밤의 풍경은 어떨까? 낯선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처절한 오체투지만을 보러 떠났던 티베트 여행, 첫눈이 오면 공휴일이라는 사실이 궁금해 찾았던 부탄이란 나라, 광활한 사막이 보고 싶어 떠났던 몽골여행이 생각나는 인천공항이다. 시원시원한 가이드를 만나 절차를 밟고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긴 고행의 비행시간이다. 이스탐블까지 12시간 정도, 다시 아제르바이잔 바쿠까지 두 시간여를 앉아 있어야 한다.
기나긴 인내심은 남아프리카를 가면서 조금 닦았고, 남미를 여행하면서 단단히 굳혀 놓았다. 처절한 인내와 두근거림으로 찾은 아제르바이잔, 많은 사연과 삶이 있었다. 작지만 풍부한 석유자원은 곳곳에서 꿈틀거렸다. 곳곳에 보이는 시추작업광경, 어쩐지 낯설기만 했다. 우리나라 들판에서 볼 수 있는 우물과 같은 흔한 광경에 부럽기도 했다. 곳곳에 설치된 시추광경은 그들의 주머니를 풍족하게 해주는 듯했지만 곳곳에서 만나는 교통체증이나 뿌연 매연은 부러울 것이 없었다. 뿌옇게 가려진 시야에 우뚝 솟은 대형 건물은 대통령 부인 소유라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 모든 것을 대변해 준다. 바닷가를 중심으로 쌓아 올린 거대한 건물들이 즐비했다.
패키지여행의 운명, 서둘러 아제르바이잔을 지나 조지아로 향했다. 기나긴 출입국 절차를 마치고 도착한 조지아, 풍광이 가장 좋다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아제르 바이잔에서 만났던 현지가이드의 인상이 평범하다면, 다시 만난 현지가이드의 인상은 대단한 열정과 노력이 가미되어 있었다. 언젠가 이집트에서 만난 가이드를 여행 중 최고의 가이드라 칭하고 있다. 어떻게 동서양을 넘나들며 역사를 연관 지을 수 있을까? 오랜 기억 속에서도 남아 있는 최고의 가이드였다. 며칠을 같이 생활하면서, 최고의 가이드 중 한 명을 만나고 간다는 인사로 이별을 했다. 조지아, 순수함에 전혀 손색이 없는 나라였다.
조지아에 도착해 만난 첫 번째 시그나기, 복음 전도자 성녀 니노의 유적과 성골함이 안치되어 있는 보드베 수원을 찾았지만, 자연을 보고 싶어 찾은 코카서스 3국이다. 기어이 코카서스 산맥이 보여주는 광경에 넋을 놓았다. 저런 광경을 본지가 얼마만이던가? 티베트에서 만났던 광경, 푸른 하늘 아래 설산이 펼쳐지며 아래로는 노란 유채밭이 있고, 푸르른 암드록초 호수가 있어 말을 잊었었다. 맑은 하늘 속에 구름이 어슬렁거리며 아래로는, 하얀 설산이 펼쳐진다. 푸르른 산을 배경으로 널따란 들판에 녹색이 흘러내리는 코카서스는 아름답기에 충분했다. 이래서 코카서스를 동경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번뜩하게 된다. 한참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들이대도, 역시 눈에 담는 것엔 비교할 수가 없다. 아름답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면서 곳곳에 같은 광경을 맞이했다. 조지아의 풍경을 담을 시간도 없이 아르메니아로 이동해야 했다. 패키지여행의 운명이다.
아르메니아의 알라베르디로 이동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아흐파트 수도원을 찾았다. 입구에는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이 있고, 다른 관광객들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다. 비잔틴 양식의 수도원으로 10~13세기에 번성했던 키우리크왕조의 중요교육기관이었다 한다. 하지만 전혀 관리가 되어 있지 않은 느낌을 받으며 나온 밖의 풍경은 역시 흥미로웠다. 곳곳에 푸름이 넘치는 아르메니아를 대변하는 듯하고, 이어서 만난 세반 호수의 풍경은 이번 여행의 압권이었다. 조지아의 풍경엔 인간의 조미료가 담겨있다면, 아르메니아 풍경엔 인간 조미료가 들어 있지 않은 느낌이다. 곳곳에서 만나는 푸르름은 자연 그 자체였고, 오래전 부탄에서 만난 푸름이 되살아 나는 듯했다. 곳곳의 유적지를 만나고 다시 찾은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는 복잡했다.
교통의 혼잡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고, 어떻게 운전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두 차선은 세 차선으로도 변했고, 끼어들기는 일상의 다반사처럼 처절했다. 아르메니아에서 조지아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만난 푸르름은 역시 평화스러웠다. 곳곳에서 방목하는 소떼나 양 떼들이 한없이 자연스러웠지만 다시 만난 교통난은 푸름을 검게 변하게 하고 말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유람선 아닌 바지선을 탄 소감은 조지아의 생각을 다시 하게 해 준 큰 사건이기도 했다. 이튿날 찾게 된 카즈베키의 길은 험난했다. 조지아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나선 길은 산뜻했다. 곳곳에서 호수가 맞이해 주고 푸른 산을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으나, 바로 교통이 발목을 잡았다. 조지아 국경에서 러시아로 들어가는 수천 대의 트럭행렬, 깜짝 놀라게 했다. 2차선 도로의 갓길을 따라 수천 대의 트럭이 주차해 있다.
러시아로 들어가는 컨테이너를 실은 차량이 국경에서 입국절차를 기다리는 차량이란다. 트럭이 막아 좁아진 이차선을 수도 없는 차량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한다. 누구 하나 제재하는 사람도 없는 차량행렬, 그예 포기하고 말아야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도착한 카즈베기엔 비가 내리고 있다. 산 꼭대기에 있는 성당을 찾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사륜구동으로 바꾸어 타고 오르는 길, 여기에도 추월은 이루어지고 있다. 험난한 비탈길을 경쟁하듯 오르는 차량이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 내려다본 풍경은 대단했다. 곳곳에 남아있는 하얀 설산이 있고 부스럭거리며 비가 내리고 있다. 여기에 사진을 찍느라 난리가 났다. 여행의 목적은 역시, 사진을 찍는 것인 듯 보였다. 부지런히 사진을 찍으며 여행의 말미를 장식하며 돌아오는 길은, 역시 패키지여행은 피곤했다. 어느 여행이듯 피곤하긴 마찬가지지만 패키지여행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쉬는 듯한 프로그램은 찾는 손님이 없다. 여행사 측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보여줘야 손님을 채울 수 있다. 현지 가이드는 목숨을 걸고라도 계획된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패키지여행의 특성답게 많은 유적지를 찾아 늦은 밤까지 서성였다. 얼마나 가슴속에 남아 있고 감동을 받았을까? 자연이 그리워 찾은 코카서스이기에 푸름을 중심으로 눈과 마음을 두었다.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쉬면서 하는 여행은 없을까? 언젠가 몽골 북부 흡수골을 여행한 적이 있다.
몽골 남부의 고비사막에 혼이 빼앗겼다면 북쪽의 끝없는 야생화에 넋을 놓았었다. 끝없는 야생화를 찾아 떠났던 흡수골 여행, 따스한 게르 안에서 장작불이 타고 있다. 따스함이 찾아온 밤은 넉넉하기만 했다. 끝없는 흡수골이 흥겨워하고 밤하늘의 별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곳곳엔 사진기술자들이 설치고 있었다. 쉼과는 상관없는 그들이 있고, 쉼을 찾은 여행자가 있었다. 쉼이 있는 여행을 하면서, 또 쉼을 갖는 여행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런 여행은 다시 할 수 없을까? 늙어가는 몸이 감당할 수 없는 패키지여행은 피곤함을 피할 수 없다. 새로운 여행을 찾아보고 싶은 심정으로 아름답다는 코카서스 3국 여행을 마무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