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살이의 긴 망설임

(전원주택 마련, 아프리카 짐바브웨 초베강)

by 바람마냥

대학을 졸업하고 자그마한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결혼을 하고 집을 마련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마련한 셋방살이는 자그마한 방이 서향으로 지어진 허름한 집이었다. 갖가지 설움을 겪으며 일 년을 살다 쫓겨나다시피 다음 집을 찾아야 했다. 왜 이렇게 셋방을 얻기가 어려웠는지, 한동안의 고생 끝에 시작된 이층의 셋방살이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이층에서 살아야 하는 고단함은 해 본 사람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인집에 대한 눈치와 이층에서의 조심스러운 몸짓은 언제나 고단한 삶이 연속되었다. 우선은 오르내리는 계단이 뒤편 구석에 북향으로 만들어져 겨울이면 더 힘들었고, 주인집인 아래층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어 집 없는 설움을 한껏 안고 살았다.


할 수 없이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하기로 하고 그렇게 원하던 단독주택을 구입하게 되었다. 허허벌판에 지어진 단독주택은 진입로가 포장되지 않아 언제나 고생이었다. 비가 오면 장화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할 정도였으나 그래도 나의 집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시작된 주택살이는 만만치 않은 생활의 연속이었으나 자그마한 땅에 채소를 심고 가꾸는 일에 고단함을 몰랐다. 비가 와도 걱정이 되고, 눈이 와도 걱정이 된다. 모든 것을 내가 손수 해결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자그마한 밭에 작은 모종을 심고 가꾸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것이 신기하고 언제나 즐거움을 주었다. 시골에서 낳고 자라 농사일에 익숙하지는 않아도 늘 보아왔던 일이기에 편안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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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서너 평의 땅에 고추와 케일을 가꾸고, 정원 한 구석에 심은 라일락 향기는 지울 수 없는 삶의 즐거움이었다. 담장 밑에 있는 자그마한 밭에서 자라나는 채소는 언제 바라봐도 즐거운 일거리였다. 이렇게 삶의 즐거움을 주는 시골살이는 원래부터가 시골사람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내는 도시에서 낳고 자랐지만, 이와 같은 생활을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기에 언제나 즐거웠다.


하지만 시골에서만 살 수는 없었기에 조금 큰 도시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단독주택은 생각할 여건이 되지 못해 아파트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아파트에서 답답함을 이기면서 10여 년을 버티다, 시골 주택으로의 살림살이를 꿈꾸게 되었지만 아내가 선뜻 나서지 않아 고민이었다. 도시에서 생활해 온 사람이라 그러려니 하며 생각해낸 것이, 도시에서 시골스런 생활을 할 수 있는 집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련한 것이 산 중턱에 지은 빌라 생활이었다. 조금은 비싼 돈을 주고 마련한 4층짜리 빌라는 아파트의 형태를 갖추고서도 시골스런 분위기를 주는 곳이었다. 1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데, 넓은 정원과 정원수가 아름다움을 주고, 뒤쪽으로는 산이 둘러싸여 누구나 부러워하는 곳이다. 봄이면 꽃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가득히 물들며 갖가지 꽃냄새가 집을 메워준다. 경치가 너무 좋아 언젠가는 영화 촬영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빌라 생활에 빠져 20년이 흐르면서 조금은 지루해지자 촌놈의 본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아 나선 것이 전원주택을 짓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집을 짓기 위한 대지를 찾아 사는 곳을 중심으로 살만한 곳을 샅샅이 찾아도 마음에 드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부동산 사무실에 부탁해서 찾으려 했으나 그것도 어려워 포기하고 몇 년의 발품을 팔았다. 하지만 수년간의 노력이 허사가 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했다. 내 마음에 드는 그런 토지가 있을 리 만무하고, 그런 조건을 만족한다면 엄청난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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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의 조언과 많은 참고도서를 보면서 내 재주로는 손수 대지를 마련하여 집을 짓는다는 것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집을 지어본 친구들이 하는 말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대지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이제는 지어 놓은 집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남들이 지어 놓고 파는 집들이 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어느 정도는 내가 생각하는 집에 가깝고 가격도 적당한 것은 만날 수가 없었다.


우선은, 살만한 주택은 뒤쪽으론 낮은듯한 산이 있고 앞쪽으로는 자그마한 도랑이 흐르면 좋을 듯했다. 남향으로 잡은 대지면 될듯하고, 원주민들과는 조금 떨어진 것이 좋을 듯했다. 남들은 따가운 한낮에 일을 하는데 그늘에 앉아 삼겹살을 굽고 쉰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 듯해서였다. 이런 곳에 집을 지어 파는 곳이 얼마나 될까?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점 전원주택에 대한 꿈을 이룰 수가 없었다.


주변의 전원주택지를 찾아다니며 만난 곳은, 대부분 산을 깎고 축대를 쌓아 대지를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이런 곳에 주택단지를 조성해 놓았기에 내가 원했던 장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에 많은 수량은 아니더라도 물이 있으며, 뒤로는 울창한 숲이 있어 푸르름이 있기를 바랐었다. 세상에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이렇게 집을 찾아 나선 지도 몇 년이 되면서 마음은 점점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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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하지 않았는가? 많은 발품과 어느 착한 부동산 중계소의 도움으로 적당한 동네에 적당한 가격의 집을 만나게 되었다. 집의 위치와 여건은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고, 집을 지은 주인이 여건상 시골생활이 불편해하는 사람이었다. 도시로의 접근시간이 10여분이고, 거리도 10여 km 정도이니 적당한 거리에 있었다. 집을 지은 사람은 어떻게라도 시골에 살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집이었다. 몇 번의 방문으로 집안을 세세히 살펴본 결과 괜찮겠다는 생각과 함께 아내도 마음에 드는 표정이다.


주택 뒤쪽으로는 산이 어우러져있고, 앞에는 자그마한 도랑이 있어 언제나 물이 흐르는 곳이었다. 단지 망설여지는 것은 주택의 앞 도로가 포장이 되어 있지 않고, 주변이 그야말로 캄캄한 시골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에서 앞 도로를 포장해 주기고 약속을 했다는 것이 아닌가? 이것저것을 생각하지 않고 서둘러 계약을 하고 전원주택 생활을 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제 시골에서 살만한 집을 마련했는가라는 생각에 여러 가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고민은 현지인들과 소통이었는데, 사람이 사는 곳에서 어떻게 하면 살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굳혔다. 이렇게 살아도 후회를 하고, 여기에 살아도 후회를 한다면 한번 살아보고 후회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삶의 터전을 시골에 마련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