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맞바람만 있었다.

살아감의 즐거움(공작 단풍나무)

by 바람마냥

친구들과 더불어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자전거길이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쉬운 듯 어려운 운동이다. 거기에 바람은 자전거 타기에 많은 영향을 준다. 자전거에 오르며 오늘도 바람이 어떤가 가늠해 본다. 바람에 따라 힘겹기 때문이다. 바람이 뒤에서 불어주지는 못해도 맞바람만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흐르는 물과 같은 방향이면 바람은 뒤에서 불고, 반대 방향이면 맞바람이라는 생각을 잠시 한다. 다시 깨닫는 오산이다. 대부분은 맞바람만 부는 듯하다. 대수롭지 않은 바람 같지만, 힘겨울 때는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바람이 어떻게 불까 걱정이다.


친구가 세상에 쉬운 일은 한 개도 없단다. 머리를 끄덕거렸다. 사람과의 관계가 쉽지 않고, 모든 일이 녹녹지 않다. 복잡한 세상살이가 편안하게만 되진 않는다. 살면서 녹녹한 일이 몇 가지나 있겠는가? 가족 간에도 이견으로 얼굴을 붉힌다. 남과 같이 사는 세상이야 말하면 뭐하겠는가? 남과 만나야 하는 사회생활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친구의 말대로 세상에 쉬운 일은 한 가지도 없다.


악기를 다루면서, 반박자의 길이에 수없이 좌절했다. 처음 만난 드럼은 재미있다. 중급 정도 악보는 그래도 만만하다. 조금 난해한 악보는 골이 아프다.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강사가 연주하는 것을 보면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림도 없는 생각이다. 연주를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땀이 흐르고 만다. 오른발과 왼발 그리고 오른손과 왼손이 따로 움직여야 한다. 속도에 자신이 없어 수없이 연습을 한다. 한 박자를 나누고 또 나누어 연주를 해야 한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역시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결론에 또 도달한다.


어럽게 만난 악기 연주를 터득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일이다. 추운 겨울 지하실에서 피나는 연습을 했다.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한다. 색소폰의 시원한 음을 낼 수 있었다. 잊지 못할 환희였다. 반 박자에 좌절했다. 수없이 반복해서 연습했다. 어림도 없는 반박자였다. 할 수 없이 드럼을 몇 달 배우며 터득했다. 덩달아 한 박자 반도 터득했다. 다시 얻을 수 없는 희열을 맛보았다. 어려운 고충이 있었기에 즐거움은 진한 감동으로 돌아왔다. 해 볼 만한 일이었다.


7번 국도의 자전거 길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다. 길이 힘들고 고단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포항에서 통일 전망대까지의 길을 가볍게 볼 수 없다. 굽이 굽이 고갯길은 어려움과 시련을 주었다. 준비하지 못한 체력이 아쉬웠다. 준비 못한 물건들도 아쉬웠다. 통일 전망대에의 희열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는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기쁨이었다. 세상은 힘들어도 고단함이 있어 즐거움도 존재한다. 고단함이 있어 성취 기쁨을 가질 수 있다. 평지도 있지만 힘든 고갯길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자전거길이기에 소중하게 기억된다.


친구들과 자전거에 올랐다. 따스한 봄날에 바람이 없다. 자전거 위에서 바라보는 들녘은 생기가 있다. 새싹이 돋는 모습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짙어진 녹음에 머리가 숙여진다. 가을 벌판의 일렁임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기분에 자전거를 타지만 먼 길을 돌아오는 길은 만만치 않다. 고요하던 바람이 느닷없이 앞에서 불어온다. 갈 때 앞에서 불어온 바람, 돌아오는 길에도 맞바람이 되어 불어온다. 조금은 야속하다.


삶도 같다는 생각이다. 어려움이 나에게만 온다고 원망한다. 야속하기도 원망스럽기도 하다. 자전거길에 만나는 맞바람은 나만의 바람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있는 바람이었다. 가끔은 밀어주는 바람도 기대해 본다. 노력이 있으면 가끔 오지 않을까? 엄청난 고통을 참는 노력으로 7번 국도를 달렸다. 거센 바닷바람과 비바람을 견디어 냈다. 왜 이 고생을 하는가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그것을 해 내고 말았다. 노력과 인내가 없이 통일 전망대에서 동해바다를 만날 수 있겠는가?


살아감에는 늘 맞바람이 있다. 그 바람은 나에게만 오는 바람이 아니다. 모두 견디며 살아가는 바람이다. 적당한 맞바람은 있어야 삶의 재미도 있다. 적당한 긴장이 삶의 기쁨도 준다. 전적으로 수긍하며 살아가긴 쉽지 않다. 하지만, 고단한 삶 속에 만난 성취감의 짜릿하다. 고단한 삶을 겪어 봐야 알 수 있다. 힘든 마라톤을 완주해야 희열을 맛볼 수 있다. 뛰어보지 않은 사람은 희열을 알 수 없다. 고단한 맞바람을 기꺼이 끌어안고 페달을 밟아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