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을 배우며)
나의 음악에 관한 지식은 제로 상태에 가까웠다. 초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은 거의 기억에 없고, 풍금이라는 것만 어슴푸레 생각난다. 중학교에 입학하고는 학교에 밴드부가 있었다는 기억만 있다. 다만, 음악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수십 개나 되는 음악기호를 완전히 외웠던 생각은 남아 있다. 고교에 이르러서는 음악시간에 어느 가곡으로 음악시험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실기로 음악시험을 보았는데, 몇 소절 부르면 '그만'이라는 음악 선생님 신호에 따라 멈춰야 하는 음악시험이었다.
학교생활에서 음악을 배웠다는 기억은 없고, 이곳저곳에서 얻어 들은 것이 음악에 관한 지식의 전부였다. 그런데 나의 음악시간에 관한 추억이 전무한 것은 왜일까? 꽤 궁금하다. 음악에 소질이 없어서 일까? 아니면 관심을 둘 기회가 없어서일까? 그런 이유에서 일까?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다. 악기를 다룬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했다. 음악에 대한 나의 허전함만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통기타가 유행이던 시절이었다. 대학생이면 누구나 기타를 들고 다녔기에 부모님을 속이고(?) 기타를 구입했다. 독학으로 기타를 배웠다. 서투른 기타 실력으로 7080 노래를 부르며 유행을 흉내 내기도 했다. 군대와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그럴 시간이나 여유가 없었다.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박자라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운지 고민거리이기도 했다. 어쩌다 노래를 하면 박자가 틀리고, 음정이 맞지 않아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음악에 관해 접할 시간도, 지식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천부적인 소질도 없는 듯했다. 그렇게 음악에 대한 무지함은 늘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아이들의 교육과 결혼이 마무리될 즈음이 되어서야 여유와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가슴에 남아있던 서러움이 고개를 들었다. 악기를 하나 정도 배울 수 없을까? 아내보다 내가 늘 바쁘기만 한 시절이었다. 고민 끝에 생각해 낸 방안은 이랬다. 음악에 관한 지식이 나보다 많은 아내가 먼저 배우는 것이었다. 그 후에 아내한테 배우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피아노를 선택했다. 선생님을 초빙해 아내가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배우는 것이다. 처음 대하는 악기를 배우기는 어려웠다. 악기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아노 배우는 것을 포기하고 세월이 흘렀다. 음악에 대한 응어리만 남아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 색소폰에 관심이 갔다. 멋진 소리가 그냥 좋았다. 색소폰을 구입하고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색소폰 배울 수 있는 곳이 많고, 동호회도 수없이 많다. 색소폰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시기에 배우기는 난감했다. 강사를 초빙해 배우기에는 상당액의 수강료를 요구했다. 독학을 하기로 했다. 익히는 속도가 한없이 느렸다. 연습할 수 있는 장소도 적당하지 않았다. 노래방 한 칸을 대여하여 연습을 했다. 때로는 강가에서 연습을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색소폰을 배우는 고생을 했다. 어렵게 시작한 색소폰 연주는 어렵고도 고단했다. 하지만 쉽게 멈출 수는 없었다. 음악에 대한 앙갚음을 하고 싶어서였다.
색소폰을 배우면서 어려운 것이 또 박자였다. 박자의 극복은 수없이 반복해도 해결되지 않았다. 박자를 해결할 수 없을까? 고민 끝에 드럼을 시작했다. 반박자의 길이가 어려웠고, 한 박자 반이 너무 어려웠다. 드럼을 배우며 조금 해소되었지만 박자는 자신이 없다. 드럼도 재미가 있고 스릴도 있었다. 하지만 손과 발놀림에 한계가 있었다. 눈은 가고, 머리는 따라가겠는데 손과 발동작이 따라가질 못한다. 수없이 노력해도 손과 발이 제때 가질 못했다. 그랬다. 조금이라도 젊어서 배웠으면 어떠했을까를 후회했다. 색소폰을 서두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수없이 연습하고 시간을 보냈다. 흐른 세월은 행동이 따라 주지 않았다. 색소폰에 전념하기 위해 드럼을 잠시 쉬기로 했다. 우선은 박자를 터득한 것으로 만족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연습하며 동호회를 찾아 나섰다. 근처에서 색소폰 동호회를 찾았다.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색소폰 독주와 합주를 하게 되었다. 동호회는 10여 명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동호회 입회 후, 동호회를 맡아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동호회도 운영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마음이 같고 뜻이 같을 수가 없다. 생각과 뜻이 달라 가끔 불편한 일이 생기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입회와 탈퇴를 거듭한다. 하고 싶어 왔지만 도저히 적응되지 않아 짐을 들고나간다. 사람 사는 사회는 어느 곳이나 같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15명의 회원들이 서로 챙기고 도와준다. 일 년이 빠르게 지나갈 정도로 재미가 있다. 일 년간 어울리며 연습을 하고, 연말이면 가족 음악회를 연지도 벌써 십여 회가 지났다.
각종 색소폰 경연대회에 참여한다. 여름이면 합숙훈련도 한다. 가끔은 결혼식에 초대되어 축가를 연주하기도 한다. 200여 명이 초빙되는 연말 연주회는 신나는 가을 축제이다. 응어리로 남아 있던 음악에 대한 서러움이 색소폰을 배우며 조금은 해소되었다. 프로와 같이 멋진 연주는 하지 못한다.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하고 흥얼거리며 나름대로의 연주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이층 서재에 프로그램을 설치해 놓고 색소폰을 연주한다. 봄이면 봄대로, 가을이면 가을에 닿는 연주를 한다. 가냘픈 소프라노 색소폰이 정겹기만 하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즐거움 중에 하나이다. 오래된 응어리를 풀어 준 색소폰 연주가 그렇게,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