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를 배우며, 노르웨이 비겔란 조각공원, 본인 촬영)
오래전, 아마 10여 년 전부터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림에는 아는 것이 전무한 내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려 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초등학교에서는 크레용, 중학교에서는 파스텔이 미술에 관한 지식을 얻게 해 준 전부였다. 고등학교에서는 미술과 음악 중에 음악만 배웠던 기억이 난다. 음악시간에 배운 것은 가곡을 배웠던 기억만이 어슴푸레 남아있다. 따라서 미술은 중학교 때 배운 것이 인생에서 가장 최근에 배운 것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스케치북을 사고, 파스텔로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다. 칭찬은 듣지 못했고 꾸지람은 아니지만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늘 가슴에 남아 있던 미술에 관한 나의 생각이었다.
해외여행을 자주 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만났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려 수많은 인파 속에 몸부림쳤다. 노르웨이에서 Edvard Munch를 찾아 수백리를 갔었다. 스페인에서는 가우디 작품을 보려고 허둥거리기도 했다. 미술관을 찾는 이 많은 노력은 미술에 대한 부족한 지식을 감추어 보려는 숨은 속셈이 아니었을까? 유럽이나 남미의 여행지를 가도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미술관이었던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국내 여행에서도 여러 미술관을 다닌 이유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실에 부딪치면서 미술에 관해 관심을 갖기는 어려웠다. 우선은 삶에 지쳐 있었고, 현실이 그리 녹녹지 않았다. 집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처지에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은 할 수도 없이 세월은 흘렀다. 삶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 지나고 잠깐의 여유를 찾을 무렵, 미술에 대한 생각이 번뜩 떠 올랐다. 하지만 그림을 배우려 선뜻 나선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고민을 하던 중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평소 그림에 관심이 있던 아내가 수채화를 배우려 나선 것이다. 아내는 나보다 미술에 관해 소질도, 지식도 풍부하다. 하지만 새로운 영역에 도전은 힘겨워했다.
아내도 처음엔 그림 그리기에 나서기를 꺼려했었다.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이 누구나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내는 미술에 소질도 있었고, 관심이 많았기에 빨리 적응해 나가는 듯했다. 일 년 정도가 지났을 때, 생각을 했다. 한 번 그림에 도전해 볼까? 오랫동안 미술에 대한 응어리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망설이면 하나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한번 해 볼까?
아내가 화실에 서서히 적응하고 있을 무렵, 여유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뒤로 미루면서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선을 그리는 것부터 수채화의 기본부터 익혀 나갔다. 젊은 사람들 틈에 끼어 기초부터 한다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화실 분위기가 그렇고, 어린아이들 틈에서 배운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있어 쉽게 적응되어 갔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오기를 생각하며 화실을 들락거렸다. 어색함과 어려움을 이겨가며 수채화에 매진했다.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늘 실감했다. 3년쯤 되었을 무렵, 수채화 동호회에서 매년 하는 전시회가 있었다. 수채화를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부족하지만 전시회라는 것에 관심이 갔다. 한 번 도전해 볼까? 내가 언제 수채화 전시회라는 것을 해 볼 것인가? 수채화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전시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작품을 완성하고 팜프릿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깜짝 놀라며 웬일이냐는 반응이다.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위인이 아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전시회장 앞에 커다란 현수막이 내 걸렸다. 참여 작가라는 곳에 내 이름이 커다랗게 명기되어 있다. 그림에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고 소질도 없으며, 전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수채화 전시회를 하게 된 것이다. 전시회를 맞이하는 기분은 뿌듯했다. 서러움을 씻어 주는 말끔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수채화 작업은 계속되었다. 다시 각종 수채화 공모전에 응시해 보기도 했다.
실력이 얼마나 되는가, 남의 그림은 어떤가를 알고 싶어서였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수채화 전시회를 해 보고, 공모전에 출품하여 특선이라는 상장도 받아 보았다. 학창 시절에 도저히 생각하지도 못한 그림이다. 수채화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짐에 지금도 감사해하고 있다. 무모한 듯한 도전을 해보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뿌듯함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겠는가? 언제 나 같은 사람이 수채화 전시회를 해 보겠는가?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작가'라는 말을 들어 보겠는가?
아내와 함께 수채화를 해 오면서 집에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일층에도 걸려 있고, 이층 서재를 비롯한 곳곳에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작품들이 뿌듯함을 준다. 가끔 찾아오는 지인들이 그리고 가족들이 깜짝 놀라기도 한다. 손녀는 가끔 찾아와 나의 작품을 평가해 주기도 한다. 앙증스러운 손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설명을 해준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손녀는 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수채화, 시작이 어려웠던 그림이 이제는 나의 커다란 재산이 되었다. 미술에 전혀 상관이 없던 사람이 그림을 그려 공모전에 입상을 하고, 가끔 전시회를 한다고 바쁘다 한다. 무엇이든지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일이 있을까? 오늘도 화실로 간다. 하고 싶을 때 하지 안거나, 망설이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없다. 내가 시작했기에 그리면서 뿌듯해지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림이다. 만약에 어떤 생각으로든지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무엇을 하면서 즐거워할까? 오래전에 남아 있던 미술에 대한 서러움이 꽃을 피워 삶의 활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