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살며 생각하며, 인도 고아 해변의 해넘이)

by 바람마냥

먼지가 뿌옇게 앉은 정류장 마루, 안쪽으로 허름한 문을 열면 방이 있다. 거무스름한 창호지로 바른 문이다. 마루는 높아서 가까스로 엉덩이를 걸칠 수 있다. 주인은 문에 달린 작은 유리로 밖을 내다본다. 가끔은 버스표를 팔기도, 먼지가 뿌옇게 앉은 과자를 팔기도 한다. 언제나 집을 나와 한참을 걸어가야 만날 수 있는 버스 정류장이다. 장날이면 어머니를 기다려야 하고, 대처로 가려면 늘 거쳐야 하는 곳이다. 어디론가 가야 하고, 누군가는 이곳을 통해 집으로 온다.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정류장이다.


학생들은 학교를 가기 위해서이다. 누구는 대처에 나가 볼일을 보기 위해서이다. 버스는 오는 방향에 따라 느낌이 달랐다. 산모퉁이를 돌아오는 버스를 타려면 항상 긴장해야 된다. 모퉁이를 돌아 바로 정류장에 오기 때문이다. 목을 늘이고 버스를 항상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대신 반대쪽에서 오는 버스는 여유가 있다. 굽이를 돌아오는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방향에 따라 긴장과 여유가 공존한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어딘가를 가야 한다. 타는 방향에 따라 긴장과 여유를 선택할 수 있다. 삶에도 타야 하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긴장을 주는 쪽을 택한 유년 시절이었다. 긴장으로 선택한 방향은 설렘과 긴장이 있었다. 삶이 긴장되고 불안하지만 설렘이 있었다. 가는 길이 어떨까 궁금했다. 굽이진 길인지 언덕을 오르는 길인지 궁금했다. 같이 가야 할 사람도 궁금했다. 모르는 사람이라 불안함도 같이 있었다. 내리면 무엇이 있을까 더 궁금했다. 새로운 환경이 어렵고 불안했다. 적응해야 할 것 같아 무던히도 노력했다. 한 걸음 내딛는 것부터 조심스러워했다. 아침이 두렵지만 설레는 날이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하루하루를 성장하게 했다. 정류장엔 그리움과 기다림도 있었다.

오는 손님을 기다린다. 장에 가신 어머님을 기다린다. 이번 버스에서 내리실까? 장 보따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기대된다. 목을 빼고 기다려지는 곳이다. 무거운 짐을 들고 내리신다. 보따리가 제법 묵직하다. 무엇이 들어 있을까? 기다림은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시골 정류장을 지나는 버스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을 지키는 경우도 많지 않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세찬 비나 눈이 오면 마냥 기다려야 한다. 긴 시간 속에 많은 생각이 머문다. 그리움과 기다림이 짙어진다. 갖가지 생각과 상상으로 한나절을 보내는 곳이다. 살아가며 만나는 정류장도 있다. 잠시의 쉼이 필요한 정류장이다. 쉬면서 생각하고 또 다른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이다.


다시 만난 정류장엔 누가 있을까 궁금하다. 무엇을 기다리며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사람들은 어느 방향을 택할 것인가도 알고 싶다. 어느 방향을 택할까도 망설여진다. 타고 내리는 정류장엔 아직도 두려움과 기대감이 있다. 어느 곳에 실어다 줄 것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같이 탄 버스에는 또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궁금하다. 같이 타고 갈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있다. 어떤 사람이 어디서 내리고, 어떤 사람이 오를까도 궁금하다. 언제나 궁금한 생각은 끝도 없이 드나든다.


무슨 꿈을 꾸며 기다릴까 궁금하다. 가득 메우고 가는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하러 가는 것일까? 끝도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생각을 정리할 겨를 없이 오를 때도 있다.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붙잡을 겨를도 없이 흔들린다. 가끔은 부축해 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일 때도 있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 무감각하고 무관심하다. 손에 닿지 않는 손잡이 잡으려 발뒤꿈치를 들어야 한다. 조상을 원망해도 소용없는 현실은 어쩔 수 없다.


정류장에 앉아 기다림과 설렘으로 생각이 가득했었다. 흔들리는 버스에 올라 오늘도 가고 있다. 손잡이를 부여잡고 설렘을 찾아 오늘도 가고 있다. 어디쯤 가야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우리는 어디로 무엇을 찾으러 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