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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un 13. 2024

지붕 위엔 늘, 닭 한 마리가 있다.

(동물의 세계)

고요한 골짜기엔 언제나 바람만이 오고 간다. 모두들 일터로 나선 한 나절, 아무도 없는 골짜기를 지키고 있는 것은 자그마한 도랑이다. 계절 따라 물의 양이 다르지만 일 년 내 끊임이 없다. 물의 양과 분위기에 따라 들려오는 소리도 다르다. 봄철의 작은 동화를 전해 주는 소리에서, 화가 난 여름 한나절의 물소리다.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은 가을 한 나절 소리, 봄을 불러 주는 겨울의 귀엣말이다. 여기에 장단을 맞추는 소리가 있으니 이웃집 닭이 우는 소리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른 새벽부터 소리를 지른다. 용케도 알아내고 빛이 왔음을 알아내는 것은 동물적인 감각임이 맞다. 이른 새벽이면 이웃은 닭집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잎산에 올라 맑은 공기를 맞으며 하루를 시작하라는 주인의 배려다. 20여 마리가 살아내는 닭장, 야트막한 천막으로 지어져 있다. 오늘도 많은 닭들이 나와 먹이를 찾아 옹기종기 몰려다닌다. 하지만, 지붕 위에는 언제나 수탉 한 마리가 올라 있다. 다른 무리 속에 끼지 못하고 언제나 홀로 다니는 닭, 오늘도 어김없이 닭장 위로 날아오른다. 그들 속의 '왕따'였다.

도랑을 따라 황금낮 달맞이꽃이 가득이다.

닭들의 삶 속에 '왕따'를 당한 닭, 이웃 닭들의 괴롭힘에 살아 내질 못한다. 언제나 구석에 앉아 있고, 나무 밑으로 몸을 피한다. 홀로 살아 내야 하니 문을 열자마자 지붕으로 날아오른 것이다. 하얀 수탉이 느닷없이 공격하면 어느새 나무밑에 숨거나 지붕 위로 날아오른다. 지붕 위에서 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린다. 저 닭은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까? 갑자기 떠오르는 학교폭력이다. 한 아이를 두고 괴롭히는 일,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는가?


여기에 성폭력이 더해진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낼까? 아직도 세상을 흔들고 있는 밀양성폭력사건, 한 학생을 수많은 학생들이 괴롭혔다. 하루도, 한 시간도 편안한 삶이 되지 않았을 당사자의 삶을 생각해 보았을까? 아내에게 되뇐다. 죽던 살던 한 번 덤벼보지 어째 피해 다니기만 하느냐고. 동물 세계의 잔인함을 보고 있는 아침은 늘 서늘하다. 인간도 동물이니 어찌할 수 없을까? 혹시, 괴롭히는 닭을 단죄하는 방법은 없을까?

붉은 나리와 금계국의 조화

닭장 밖으로 나오면 지붕 위로 날아가지만, 닭장 안에서는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먹는 것도 쉽지 않은 분위기 속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리라. 모두가 어울리며 살아가는 곳에서 멀찍이 서성거리기만 하는 닭의 모습이다. 동물의 세계 속의 현상,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에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들의 생각 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당하는 사람의 처지를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가해자들의 삶은 언제나 떳떳한 듯이 당연하게 살아내는 모습이 가증스럽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모이를 찾아다니는 닭들, 인간의 모자람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어떻게 해결해 줄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 속으로 지껄이던 말, 죽든 살든 한 번 덤벼보면 좋지 않을까? 인간들이 살아가는 삶 속에도 처절한 이런 일이 존재한다는 것이 슬퍼지는 아침이다. 지붕 위에 있는 닭 한 마리가 언제나 슬픈 이야기를 되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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