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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un 21. 2024

술을 마신 아침, 나도 머리가 나쁜가 봐.

(아내와 술 한잔)

주말저녁이면 골짜기는 부산하다. 긴 도랑을 따라 형성된 작은 골짜기, 외지에서 찾아온 이웃들 때문이다. 친구들이 오고 친지들이 찾아온다. 덩달아 찾아오는 사람들은 늘, 삼겹살을 굽는다. 전원에선 삼겹살이 최고 아니던가! 원주민들과 떨어진 곳에 형성된 동네이기에 부담이 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밝은 불빛이 가득이다. 집집마다 삼겹살을 굽는 풍경이다.


긴 도랑을 따라 황금낮 달맞이꽃이 피고, 도랑 건너 야트막한 산에는 금계국이 지천이다. 여기가 천국임을 알려주는 골짜기에 가끔 고라니도 찾아온다. 심심하면 여름뻐꾸기가 '뻐꾹'하며 마실을 간다. 모두 삼겹살에 진심인 골짜기, 아내와 동참하기로 했다. 삼겹살을 굽고 한가한 저녁을 보내는 시간은 늘 여유롭다.

야트막한 앞 산에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 불빛이 내려온 거리다. 노란 꽃들이 줄을 지어 피어 있는 곳, 삼겹살 맛이 없을 수 없다. 여기에 시원한 소주 한잔을 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아내와 한잔의 술을 마시고 초저녁부터 잠이 들었다. 시원한 골짜기 바람 따라 잔잔한 동네, 새벽에 눈이 떠졌다. 엊저녁 마신 술이 잠을 깨운 것이다.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으니 아내도 거들어주어 가끔 마시는 술이다.


맥주에 소주를 섞었고, 기분 따라 약간의 양주도 동참했다. 머리가 아파서 잠을 깬 새벽이다. 어떻게 할까를 망설이다 잠을 청했다. 다시 눈을 떠 보니 6시인데 머리가 말끔하다. 갑자기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은 아직 쓸만한 몸뚱이한테다. 언젠가 아내가 한 말, 술을 마시는 사람은 머리가 나쁘다 했다. 얼른 수긍하게 된 것은 머리가 아픈 것을 잊고 또 마시기 때문이다. 술을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가끔 마셔도 간에 미안스럽다. 간은 얼마나 할 일이 많을까라는 생각에서다.


지금이야 간이 제 일을 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일하다 지치면 그만둘 것 아닌가? 가끔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에 갑자기 정신이 든다. 이만큼 해결해 준 몸을 마음대로 쓰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아직은 감사한 몸뚱이를 제멋대로 쓰면 안 되지 않을까? 술을 마시고 난 아침이면 반성하는 이유지만, 또 잊고 술을 마시지 않으려나?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머리가 나쁘다는 아내의 말이 언뜻 떠오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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