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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ug 13. 2024

더덕은 두 뿌리면 충분했다.

(여름날의 기다림)

향긋한 듯 향긋하지 않고, 묵직한 듯 쌉싸름해 코를 한번 더 들이밀어 보고 싶은 냄새다. 코끝을 스치는 냄새가 이층 창문을 타고 넘었다. 일층 텃밭에서 보내주는 더덕 냄새다. 야, 이제 더덕이 향을 전해주네! 열대야로 잠을 못 이루는 밤에도 창문을 닫고 자야 했다. 혹시 모를 산바람 때문에 목이 아플까 염려에서다. 우선은 아프지 말아야 하지만, 병원엘 가기는 너무도 불편해서다. 시골이라는 불편한 점과 모두 그렇진 않아도 친절한 의사를 만나기가 그렇게 쉽지 않아서다. 환자 덕에 먹고사는 사람들이 왜 그럴까? 오지 말라는 뜻일까? 아니면 굻어 죽어도 좋으니 온전한 몸을 보전해 달라는 뜻일까?


언제부터 아팠느냐는 말에 무심코 '며칠 전'이라 했다. 며칠 전, 젊은 의사의 훈계는 시작되었다. 도대체 '며칠 전'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는 짜증 섞인 말이다. 또다시 찾은 병원, 눈길도 주지 않으며 말을 한다. 후딱 나와 버리고 말까? 한바탕 싸워 주고 올까? 여러 생각 끝에 진료를 받고 나왔지만 다시는 근처에도 가지 않는 병원이다. 더워도 문을 닫고 자야 하는 이유였지만, 지난밤엔 문을 열고 누웠다. 새벽에 목은 온전했고 창을 타고 넘어오는 묵직한 냄새에 깜짝 놀랐다. 텃밭 농사의 성공을 알려주는 더덕냄새, 얼마나 대단한 농사일까?

텃밭이라야 10평도 못 미치는 작은 밭이다. 다양한 상추가 심어졌고, 쑥갓이 있으며 오이가 있고 가지가 있다. 한 구석엔 참외와 고추가 출렁이고 싱싱한 파가 자라고 있다. 여기에 냄새를 위해 심은 더덕이 있고, 심오한 보랏빛 색깔을 보기 위한 도라지가 있으며, 추억을 찾아주는 토란이 키워지고 있다. 더덕 내새가 넘어왔지만, 고작해야 더덕은 두 뿌리가 전부다. 더덕을 먹기 위해 심은 것이 아니라 묵직한 듯 향긋함이 있고, 아작하고 질깃한 맛에 쌉싸름한 달큼함이 섞인 향을 맛고 싶어서였다. 초봄, 뒤뜰에서 싹을 내민 더덕을 만났다.


몇 년 전에 뒤뜰에 심어 놓은 더덕은 꽤 여러 포기였다. 하지만, 햇살이 부족한 식물은 살아 낼 수가 없었다. 서서히 자취를 감추더니 몇 뿌리만이 삶을 이어왔는데, 그중 두 뿌리를 옮겨 심은 것이다. 정성스레 햇살이 많은 텃밭으로 옮겨 지지대를 설치했다. 싱싱하게 자라난 더덕 잎은 앞뜰 정원으로 세력을 넓혔고, 풍성한 잎을 자랑했다. 여름이 깊어지면서 언제나 더덕 향을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다. 왜 그럴까? 아무리 기다려도 더덕의 지긋한 향은 소식이 없었는데, 오늘 새벽에 창문을 뛰어넘은 것이다. 야, 이런 향기덕에 심은 더덕인데 이제야 만나게 된 것이다. 더운 날보다는 조금 시원한 온도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인가?


지난해,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언제나 만날 수 있는 향기였다. 올해도 그 맛에 옮겨 놓은 더덕이 기어이 보답을 하고 있다. 뒤편에 있는 도라지는 벌써 자연의 심오한 보랏빛을 보여주었다. 수채화를 한다지만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그 보랏빛,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보랏빛 꽃이었다. 이제, 토란만이 남아 있다. 널찍한 녹색의 잎에 물방울을 담았다. 가느다란 바람에도 일렁이며 균형을 잡으려는 하얀 물방울이 신비스럽다. 초록에 하양이 드러난 물방울이 흔들리다 균형을 잡고, 다시 일렁이는 모습은 늘 신비스러웠다. 아내가 오래 전, 뒤뜰에 많은 토란을 심었다. 지난해 수확한 토란을 창고에 보관 중이었다.

삐죽이 싹이 나온 토란을 뒤뜰에 심은 것이다. 토란이 촉이 자라나 작은 우산을 펼쳐 들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며 잎이 커지길 기다리는 토란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오면 토란은 넉넉하게 잎을 키울 것이다. 오래 전의 어머님의 추억이다. 텃밭 한 구석에 토란을 심으셨다. 커다란 잎이 일렁이는 사이 비가 내렸다. 싱싱한 토란 잎에 빗방울이 앉아 일렁이는 모습은 늘 신비했다. 어머니는 토란을 캐서 국을 끓였다. 조금은 미끌거리며 아린 맛이 배인 토란, 어머니는 늘 맛이 있다 하셨다. 한참을 망설이다 입에 넣은 토란국, 구수함에 향긋함은 떨칠 수 없는 맛이었다. 다시 버릴 수 없는 토란 줄기였다.


토란을 캐고 남은 토란 줄기를 대충 잘랐다. 가느다란 새끼에 얼기설기 엮어 처마밑에 걸어 놓았다. 오가는 바람에 꾸덕꾸덕해지만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맛깔난 식재료였다. 닭개장을 끓일 때 넣기도 하고, 나물로 간장에 무쳐 먹는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오래 전의 추억이 그리워 심어 놓은 토란, 가을비가 내리면 커다란 토란잎은 물을 담고 일렁일 것이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토란잎에 앉은 하얀 물방울이 춤을 출 것이다. 올해에도 먹기 위함보다는 향을 맡아보고, 색깔을 보며 추억을 되새기려는 더덕과 도라지 그리고 토란이 제 역할을 다 할 것이리라. 소소한 재미로 살아가는 골짜기의 풍경은 그렇게 여름이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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