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주전부리)
하늘엔 촘촘히 별이 박혀있고, 가끔 반딧불이가 어둠 속을 유영한다. 윙윙거리는 모기를 향해 약쑥을 놓고 지핀 모깃불이 대활약을 하고 있는 저녁, 아버지가 엮은 까끌한 멍석 위에 온 식구가 앉아 있다. 오늘도 멍석 한가운데엔 실하게 영근 옥수수가 담긴 소쿠리가 놓여 있다. 구수함이 가득한 옥수수가 입맛을 자극하지만, 언제나처럼 어머니가 나누어 주길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이다.
실하게 영근 옥수수 두 자루는 아버지 몫이다. 아버지 몫이 결정되고 나면 하나, 둘씩 어머니 손을 거쳐 자식들에게 돌아갔다. 옥수수 알갱이 줄을 따라 따 먹기도 하고, 한 주먹을 따서 입에 털어 넣기도 했다. 옥수수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을까?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고소함이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온 식구가 모여 하루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소박한 풍경이다.
한가함이 가득한 오후,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린다. 현관에 나가보니 이웃이 실하게 영근 옥수수를 한 아름 안고 찾아왔다. 가끔 풋 호박을 건네주고, 한 바가지 토마토를 전해 주던 이웃이다. 텃밭에 심은 옥수수를 멧돼지에게 선사하고 남은 것을 들고 온 것이다. 봄부터 땀 흘리며 가꾼 옥수수, 어디 이웃에게 나누어 주기가 그렇게 쉽다던가? 고마움에 어쩔 줄 몰라 가끔 수박 한 덩이를 전해주고, 농촌 친구에게 얻어 온 오이 몇 개로 빚을 갚기도 한다. 언제나 이웃의 훈훈함에 감사함과 고마움이 가득한 시골살이의 모습이다.
아내는 옥수수 껍질을 벗겨 큰 솥에 넣었다. 급히 불을 지피고 나니 어느새 구수함이 가득한 시골집이다.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는 옥수수가 구수함을 안고 이웃의 훈훈함을 전해준다. 시골로 이사 오면서 하던 걱정, 이웃과 어떻게 살아갈까가 큰 고민이었다. 혹시 텃세를 하면 어떻게 할까? 작은 다툼이라도 있으면 불편해서 어떻게 살아갈까? 시골에 이사 온 지가 벌써 여러 해 되었지만 전혀 걱정 없는 이웃들이다. 더러는 소주잔을 나누기도 하고, 텃밭 농사법을 알려준다. 대문 없는 이웃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어도 전혀 상관없다. 텅 빈 이웃집 닭 모이를 주러 가고, 실하게 영근 자두를 따 먹으러 간다. 옥수수가 솥에서 익어가자 아내가 서두른다.
얼른 두어 봉지를 싸서 현관문을 나서는 것이다. 따스할 때 먹어야 맛있다며 이웃에게 얻은 옥수수를 삶아 다시 윗집에 전해주러 가는 길이다. 이웃에 사는 젊은 부부들, 시골살이가 좋아 자리 잡은 사람들이다. 늘 부지런해 예쁜 꽃을 가꾸며 잠시도 쉼이 없는 사람들이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러 오라며 어른으로 대우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웃 간에 훈훈함이 가득한 동네, 이웃에게 얻은 옥수수임을 알려주라 하니 얼른 수긍한다.
봄비가 추적거리는 한나절, 어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질끈 얹고 텃밭으로 나섰다. 처마밑에 매달려 일 년을 기다렸던 옥수수를 심기 위함이다. 지난해 수확한 옥수수 중에 옹골차게 영근 옥수수를 씨앗으로 남겨 놓으셨다. 옥수수 껍질로 적당히 엮어 일 년을 처마밑에서 버틴 씨앗이다. 텃밭에 심은 옥수수가 여린 싹을 밀어내더니 기어이 긴 잎이 나풀거렸다. 가끔 매미가 찾아 외로움을 달래주고, 여름비와 씨름을 하더니 어느새 옥수수수염이 검게 변했다. 기어이 옥수수가 익어가는 한가한 오후, 어머니가 옥수수를 수확해 삶은 것이다. 가끔 점심으로 대신했고, 여름날의 진정한 주전부리 옥수수는 시골로 보금자리를 옮기고 더욱 친근해졌다.
옥수수는 터를 잡은 시골의 특산물로 시골살이의 큰 밑천이다. 산자락을 타고 내린 비탈밭에는 옥수수가 가득이다. 봄배추를 수확해 낸 비탈밭엔 어김없이 옥수수가 심어진다. 어느새 이웃나라 사람들이 몰려와 순식간에 심어 놓고 간 옥수수는 여름날의 진풍경이다. 점으로 시작한 푸름은 줄 푸름으로 변했고, 어느새 꾀꼬리를 내밀어 몸을 흔들었다. 산자락엔 푸름이 가득하고 길가 좌판에도 옥수수가 넘쳐나는 골짜기다. 한가한 오후에 이웃이 전해준 옥수수가 진한 그리움과 훈훈함을 전해준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훈훈함은 매캐한 모깃불 속 어머님의 기억을 불러 주었고, 낯선 시골의 푸근함을 전해주었다. 여름날에 만난 이웃의 옥수수는 구수함을 우려낸 진한 그리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