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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ug 30. 2024

풍성한 논자락엔 슬픔도 함께 있다

(논농사와 우리의 삶)

계절은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더운 여름이 미적거리고 있어도 계절은 거스를 수 없나 보다. 미련이 남은 듯한  더위도 떼지 못하던 발걸음이 빨라졌다. 조금은 높은 지역, 해발 300m이니 지난해엔 에어컨도 없이 살았다. 몇 번의 선풍기의 수고로움으로 여름을 보낸 지역인데 올해는 대단한 더위였다. 폭탄이라는 전기세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스위치를 눌러야 했다. 인간들의 업보라는 생각과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를 반복하며 보내고 있는 여름이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조금은 서늘한 아침 자전거길, 살짝 두렵기도 한 발걸음이다.


새벽바람을 맞으며 내려가는 길은 서늘한 바람이 앞서간다. 안개가 찾아왔고 길가엔 하얀 거미줄이 예술이다. 잔잔한 거미줄이 있고, 그 위에 하얀 이슬이 내렸다. 어떻게 저런 예술품이 만들어졌을까? 먹고살기 위한 작은 생명체들의 수고로움 덕이다. 널따란 들판엔 푸름으로 가득하다. 아무리 더워도 계절은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진즉 나올 것 그랬다는 후회를 하며 달려가는 논둑길은 언제나 싱그럽다. 


여기가 삶의 터전이라는 듯이 뜸북새가 후다닥 날아오른다. 괜히 단잠을 깨워 놓은 듯해 미안한 발걸음을 서두른다. 부지런한 농부의 발걸음은 골짜기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가물면 가무는 대로, 비가 오면 또 비가 오는 대로 농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논둑길을 오고 간 흔적, 푸름이 가득한 들판이 알려준다. 오래전, 내 아버지의 발걸음을 생각하며 달려가는 들판엔 농부들의 시름도 가득하다. 


가슴이 뭉클했다. 

풀 내음 속에 달려가는 길가에서 긴 현수막을 만났다. 누구에겐가 호소 아닌 호소를 하는 현수막 문구, 아침밥 먹기 운동이 쌀농업의 희망이고 미래농업의 희망이란다. 근처 농협에서 붙여 놓은 처절한 현수막의 내용이다. 오죽하면 저런 문구를 만들어 놓았을까? 쌀 소비량 감소로 쌀 값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배낭 속에 아침거리가 떠올랐다. 자전거를 타는 아침엔 늘 간단한 요깃거리로 대신하는데, 빵 한 조각과 물 한병 그리고 사과 한 덩어리가 전부다. 


자전거길에 만나는 쉼터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간단하기도 하지만 아내의 수고로움도 덜어 줄 수 있어 좋다.  어느 것도 부럽지 않은 빵 한 조각과 사과 한 덩어리에 물 한 병, 지난날엔 어림도 없었던 아침상이다. 밥이 있어야 했고 구수한 국이 있어야 했다. 한 동안 아내의 수고로움이 동반되어야 하는 오래전부터 삶의 방식이었다. 내 부모가 그랬고 내가 그랬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부엌을 오고 가신다. 부엌 대문을 여는 삐그덕하는 소리는 엄마의 소리였다.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어김이 없고, 태풍이 몰아쳐도 그침이 없었다. 군불을 지피고 밥을 안쳐야 했으며, 갖가지 채소가 있는 텃밭을 오고 가셨다. 식구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우리 집 대표 셰프의 책임을 위해서다. 한 끼도 어김없는 밥을 있어야 했기에 처절한 농사를 지어야 했다. 

처절한 삶의 현장이었다.

쌀농사를 짓기 위한 다락논 쟁탈전은 목숨을 건 전쟁이었다.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해야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어깨엔 늘 지게가 지워져 있어야 했다. 처절한 고단함 속에서도 밥그릇엔 보리쌀이 대부분이었고, 내일을 위한 몸부림은 처절했다. 철부지가 알 수 없었던 한 섬지기 논은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소원이셨다. 


한 마지기가 한 말의 씨앗을 뿌릴 만한 면적이었고, 한 섬은 한말의 20배라 했으니 한 섬지기는 20마지기를 뜻했다. 아버지의 소원은 아들세대에 이루었지만 쓸모없는 노력이었다. 쌀 소비량이 줄어들었고 널따란 논자락은 오래 전의 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식을 장려하던 시절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고, 보리밥은 추억을 찾아 먹는 기억의 밥이 되었다. 쌀소비량을 늘리기 위한 처절한 현수막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언제나 말없이 묵묵히 농사일에 전념하신 아버지, 이른 아침 자전거 길에서 아버지의 들판을 만났다. 누렇게 익어가는 논자락은 아버지의 희망이었다. 그리움을 안고 달려가는 자전거길은 성스럽도록 아름답다. 서서히 해가 떠오르며 널따란 들판은 눈이 부시게 일렁인다. 농부에게 누렇게 익어가는 벼 이삭보다 좋은 것이 없겠지만, 풍년 속엔 가격이 하락하는 아픔도 도사리고 있다. 

농민들의 고민, 우리의 몫이다.

올해는 쌀값이 얼마나 될까? 해마다 되풀이되는 농부들의 고민이다. 서둘러 페달을 밟아 아침 먹을 곳을 찾아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들판, 이보다 좋을 수는 없는 아침상을 펼쳤다. 쌀농사를 지어 높은 가격에 팔아야 하는 농부의 자식이 갑자기 불편하다. 벼가 익어가는 들판 한가운데 차린 아침상엔 한 톨의 쌀도 포함되지 않았다. 논이 없어 걱정이었던 아버지의 고민이 이젠, 쌀 생산량을 따르지 못하는 소비량이 고민인 현실이다. 


들판의 아침 밥상에 가슴이 저려왔다. 내 아버지가 짓던 논농사와 길가에 붙여진 현수막이 떠 올라서다. 아내가 차린 아침 밥상은 늘 간편하다. 빵 한 조각에 채소가 주를 이루며 가끔 올라오는 것이 떡 한 조각이다. 아내와 함께 평생 해 온 일, 간단한 아침상을 맞이하게 된 이유였다. 가능하면 간편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하루를 맞이해야 해서다. 


농업기술의 발달로 쌀 생산량은 증가되었지만, 소비량은 감소하고 있다. 세월이 변해도 고집스레 고수할 것 같았던 삶의 방식이 바뀐 것이다. 과일이 밥을 대신하고 빵 한 조각이 쌀의 대용이다. 자전거길에 만난 들판은 풍년이다. 풍년을 기원하며 징과 꽹과리를 치던 내 아버지였다. 한 섬지기를 꿈꾸던 아버지 고민은 오래 전의 추억으로 남았다. 이젠, 넉넉한 들판에서 만난 현수막의 아픔을 극복하고, 변하는 세월 따라 감당해야 할 우리의 몫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현란하게 푸름이 춤을 추는 들판에서 오래전 내 아버지의 아픔과 현실의 고민이 발길을 잡는 자전거길이다(2024.08.26일 오마이뉴스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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