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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Nov 03. 2024

자전거길의 추억, 세상 아들들은 분발하란다.

(자전거 길에서 만난 어르신들)

친구들과 어울려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오전에 만나 하루를 보내는 일정이다. 10여 명이 어울리며 자연을 동무 삼던 친구들이 서서히 줄어들어 서글프기도 하다. 이젠, 겨우 네댓 명이지만 황금들판을 거침없이 달린다. 손주를 보러 간 친구도 있고, 일을 하는 친구 또는 무릎이 골을 부려 쉬는 친구도 있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힘겹지만 같이 어울리는 고희의 청춘들은 친구가 있어 누려보는 행복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서너 명이 자전거길을 달린다. 아침에 만난 장소엔 많은 사람들이 운동에 진심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걷는 사람과 뛰는 사람들이 다양한 운동을 한다. 운동길에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살아간다. 한편에선 간신히 몸을 가누는 부부가 운동을 한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어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30분여를 달려가다 찾는 곳은 시골의 구멍가게다. 잠시 쉼이 필요하고 삶이 궁금해서다.


자전거길에서 만나는 구멍가게엔 오래 전의 추억이 남아있다. 시골의 삶이 있고 아픔이 있으며 즐거움이 있다. 아직도 할머니들이 물건을 팔며 구수한 입담으로 발길을 잡아 놓기에 충분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간 구판장, 언제나 씩씩하신 아주머니가 지키고 있다. 밭을 일구고 장작을 패며, 먹거리를 팔고 있는 고희 또래의 아주머니 가게다. 언제나 씩씩해서 삶에 걱정이 없는 듯한 주인, 허리가 아파서 일을 못한단다. 


언젠가 장작을 패서 산더미처럼 쌓인 놓았던 주인이다. 세월의 흐름을 지나칠 수 없었던지,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단다. 간신히 몸을 가누며 고구마가 든 상자를 옮긴다. 친구가 얼른 일어서 옮겨주기도 하는 친근한 구멍가게다. 음료수를 손수 꺼내먹고, 계산도 손수 하는 편한 가게에서 음료수 한 잔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출입문이 열린다. 자그마한 할머니가 배낭을 메고 들어 오시는데, 자주 만나는 동네 할머니다. 


무슨 사연인지 손주, 손녀와 사시는 할머니다. 자전거를 타시는 할머니는 늘 배낭을 메고 다니신다. 배낭을 메고 오시기에 물건을 넣으려는 배낭이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눈물겨운 사연이 담긴 배낭이다. 가끔 장을 보려 오시고, 병원을 가실 때는 구멍가게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신단다. 자전거를 가게에 놓으시고 시내버스를 이용하시는데, 오늘은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꺼내 놓으신다. 심심해서 가게 주인과 먹으려 가져온 쑥개떡이다. 오래전에 어머님이 해주시던 쑥개떡을 얼른 받으며 음수를 건네자 촌사람이라 마시지 않는다며 거절하신다. 가게 주인이 눈물겨운 배낭엔 무거운 돌멩이도 들어 있다며 사연을 전해준다.


굽은 허리로 자전거를 타기가 너무 어려우셨다.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다 무거운 돌멩이가 든 배낭을 메시게 되었단다. 무거운 배낭이 굽은 허리를 뒤로 당겨주면 자전거를 타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할머니다. 돌멩이 사연을 말씀하시면서 부끄러움이나 서글픔은 전혀 없다. 연신 웃는 목소리로 즐거운 하루살이를 설명하신다. 언제나 쾌활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  손주들을 홀로 돌보는 할머니가 저렇게도 밝은 웃음으로 살아가 실 수 있을까? 가슴 아픈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한참을 달려 만난 구멍가게에도 할머니가 지키고 계신다.


어떻게 가게 주인들은 그렇게도 명랑하실까? 오랜만에 들러 안부를 묻는다. 다친 팔은 괜찮으시냐며 묻자 벌써 완쾌되었다며 자랑이다. 팔을 들어 올리며 보여주는 주인장, 세상 아들놈들은 분발해야 한단다. 괜히 목소리를 높이는 할머니, 옆집 친구네 딸은 친구를 해외여행 보내주셨단다. 친구가 자랑을 하는데, 아들놈은 여행은커녕 전화도 하지 않는다며 속이 상해 말을 못 하겠단다. 고희의 청춘들에게 늘어놓는 하소연, 내 자식들은 또 나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가슴이 뜨끔하다. 


아들에게 집에 좀 오라 하니 상의해서 전화하겠다더니 전화가 없단다. 상의는 무슨 상의냐며 노여움이다. 늙은 부모가 오라 하면 오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뭘 상의하고 말고 하느냐 야단이다. 어떻게 기른 자식인데 이제 와서 이모양이냐며 노여워하신다. 괜스레 늙은 청춘들이 화풀이 대상이 되었으니 편하긴 편한 손님인가 보다. 저마다의 삶이 있고 생활이 있으니 쉬이 올 수도 없고, 해외여행도 보내 드릴 수 없을 테다. 하지만 늙어가는 부모들의 하소연에 조금은 서글퍼지는 늙어가는 청춘들이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자전길에 만난 사람들, 수많은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처절한 운동으로 미래를 찾으려는 부부도 있었고, 무거운 돌멩이가 든 배낭을 메신 할머니도 계셨다. 아들들은 분발하라며 거창한 웅변을 하시는 점방 주인이 떠오르는 자전거길에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를 생각해 본다. 내 부모는 어떤 생각이셨고, 내 자식들은 어떻게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나를 생각하게도 한다. 급변하는 세월이지만 많은 생각을 전해주는 자전거길은 젊은 세대와 늙어가는 부모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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