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당신)
나는 엄마를 너무 좋아했다. 밥상을 들고 들어오시던 구부정한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아침내 차린 갖가지 반찬이 놓여있고, 국과 밥이 놓인 밥상이다. 된장이 끓는 화로는 이미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얼른 일어나 밥상을 받으려 하면 엄마는 눈짓으로 그만두라 한다. 밥을 먹기가 죄송해 어정거리는 아들, 얼른 어깨를 눌러앉아 먹으라 하셨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엌으로 향하시던 어머니, 어떻게 저리도 당당하실 수 있을까?
아무리 힘겨운 일도 내색하지 않던 당신이었다. 일철이 돌아오면 아버지를 따라 들로 나서야 했다. 논일을 하시는 아버지 곁에서 콩을 심고 고추를 따며, 언제나 아버지의 언저리를 떠나지 않으셨다. 다정다감도 따스함도 한 점 없는 아버지였지만, 어머니는 말없이 내조를 하셨다. 모두 자식들 때문임은 벌써 알았다. 가끔 말다툼은 자식 편에 선 어머니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서둘러 집으로 향하신다. 점심을 챙기러 서두르시는 것이다. 허연 치마로 이마의 땀을 닦으시던 신비한 어머니를 나는, 너무 좋아했다.
밥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오시던 어머니, 한 손에는 주전자가 들려있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오로지 논일에만 집중하다 밥상을 차려놓아야 허리를 피셨다. 한참을 기다려야 밥상으로 오시던 아버지를 한 번도 탓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와 마주 앉아 말없이 점심을 드시고 오후 일을 하신다. 동부를 따고, 고구마를 캐며 가끔은 논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일을 하셔도 힘이 들지 않을까? 철부지 아들은 서둘러 집에 가길 바랐고, 가끔은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해가 넘어갈 무렵, 어머니는 서둘러 집으로 향하셨다. 식구들의 저녁밥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온종일 들일을 하시고 다시 저녁을 해야 하는 어머니다.
쌀이 흔하지 않던 시절, 언제나 먹거리는 고민거리였다. 여름에 수확한 보리쌀을 삶아 밥솥에 넣으시고, 다시 쌀을 한 주먹 얹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쌀밥은 아버지의 밥사발에 그리고 소중한 아들의 밥그릇에도 조금 얹혔다. 나머지를 섞어 밥을 뜨면 어머니의 밥그릇은 언제나 보리쌀뿐이었다. 어머니의 말씀, 보리밥이 맛이 있다 하셨다. 언제나 밥그릇을 들고 드시던 어머니는 보리밥을 좋아하셨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려니 하면서 세월을 보냈고, 끝내 어머님의 심중을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줄 알고 평생을 보낸 철부지다. 평생 이어지는 밥상은 어머니의 잔 일에 불과했다. 일을 하면서 밥을 짓는 것은 부업이었다.
소중한 텃밭 채소는 늘, 어머님의 일이었다. 호박과 옥수수를 심어야 했고 가을이면 김장을 위한 배추와 무도 어머님의 몫이었다. 여기에 양념을 해야 하는 파와 마늘도 대부분은 어머니가 돌볼 일이었다. 큰 일이야 아버지의 도움이 있었지만 잔일은 언제나 어머님의 일거리였다. 종일토록 일을 하시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던 어머니는 아픈 곳이 없는 줄 알았다. 언제나 씩씩한 삶은 아들의 머릿속을 어리석게 만들고 말았다. 서서히 세월이 지나면서 어머님의 삶은 달라졌다. 허리가 아프다 하셨고, 머리엔 언제나 끈이 묶여있었다. 아픈 머리를 달랠 길이 없어서였다. 간간히 약으로 버티셨고, 더러는 소주 몇 잔으로 하루를 보내셨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어둑한 밤이 찾아왔다. 컴컴한 방안에 등잔불을 밝히고 어머니는 책을 읽으셨다. 고단함을 물리친 책 읽는 소리는 어린것의 자장가였다. 박씨전이 있었고 흥부전이 있었다. 읽을거리가 없던 시절, 읽고 또 읽으며 같은 책을 수없이 읽으셨다. 등잔불에 비춘 어머니의 모습, 헐렁한 돋보기를 쓰셨다. 몸을 앞뒤로 흔드시며 읽어내리는 소설책은 거무튀튀한 종이에 세로로 쓰여 있었다. 어머니는 늦은 밤까지 책을 읽으시곤 했다. 언제나 어머님의 책 읽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던 밤, 성스러웠던 어머니가 그냥 좋았다.
언제나 내 편이었고 우리 편이었다. 먹거리를 준비하고 가족의 삶을 준비하는 거룩한 몸짓이었다. 어느 것에도 굴하지 않고 자식들을 감싸 안았고, 든든한 울타리를 쳐 주셨다. 어떻게 저리도 당당할 수 있을까? 여자의 몸으로 할 수 없는 근엄함이 있었다. 자식을 위해선 거칠 것이 없었던 어머니다. 누구의 말도 그리고 누구의 요구도 거침없이 해결하셨다.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는 당당한 어머니, 언제나 어머니를 좋아했던 이유다.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어머님은 내 곁을 떠나셨고, 어머님의 세월이 된 아들이다. 왜 그렇게도 어머님의 생각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보리밥을 좋아하셨고, 아픈 곳이 없었을까? 자식의 성공을 위해 타지에 남겨놓고 떠나시던 어머니, 뒤를 흘끗흘끗 바라보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린것을 떼어 놓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던 어머님이다. 이젠 철부지는 그렇게도 좋아하던 어머님의 세월이 되었다. 내 곁을 영원토록 지켜줄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던 아들, 터무니없는 철부지는 어머니를 마냥 좋아했다. 아직도 좋아하는 나의 어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