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서의 생각)
세월은 머리칼도 그냥 두질 않았다. 듬성듬성한 머리칼마저 희끄무레하게 퇴색시켰고, 힘없는 머리칼은 작은 바람결도 이기지 못했다. 희끄무레해진 머리칼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희의 청춘은 언제나 고민거리 중에 하나다. 세월이 준 것, 그냥 살아 볼까도 고민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이 그냥 두질 않는다. 이기지 못하는 척하며 가끔 염색을 하며 살아가는 이유다.
아이들과 아내의 성화로 염색을 한지 두어 달이 지나자 곳곳에서 하양이 드러났다. 검은 머리칼의 아랫부분만 하얗게 변하자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행색이다.
아내에게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에,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염색을 하란다.
가끔 아내가 부분 염색을 해 주지만, 어쩐지 어설프고 순식간에 하양이 드러난다.
이번에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단골 미용실로 향하기로 했다.
미용실로 들어서자, 대기 손님이 세분 계셨다.
하지만, 사장님은 두 명이니 금방 할 수 있다는 말에 머리가 갸우뚱해진다. 분명히 세명인데?
젊은 친구 한 명에,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 두 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상황이 정리되었다.
순서에 따라 젊은이가 머리를 깎고, 어르신 중 조금 더 연로하신 어르신이 자리에서 간신히 일어나신다.
지팡이를 짚고 간신이 일어선 어르신을 따라 머리가 허연 또 다른 어르신이 부축을 한다.
아, 어르신의 아들인가 보다. 아드님이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미용실을 찾으신 것이었다.
하지만, 아들도 머릿결은 하얗게 변해 있었고 편치 않은 몸놀림에 고희는 넘긴 듯한 모습이다.
지팡이에 의지하신 어르신을 정성스레 부축하며 의자에 앉게 하셨다.
머리를 깎기 위해 모시고 온 아버지이지만, 아드님도 이발을 해야 하는 허름한 모습이었다.
아버지를 의자에 앉히자 미용사가 어르신 머리를 조심스럽게 다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불편할까 의자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안절부절이다. 미용사가 조심스레 머리를 다듬고 있지만 주변을 서성이며 눈을 떼지 못한다.
미용사는 어르신의 자세에 따라 조심스럽게 머리를 다듬는다. 어르신에게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자세를 고치며 머리를 손질하는 사이, 고희의 아드님은 아직도 주의를 맴돌며 안절부절이다.
아드님이 잠시도 그냥 있지 않는 모습에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미용사가 머리를 다듬는 순간순간마다 눈길을 거두지 않는 것이었다. 기어이 머리 깎기가 끝이 났고 샴푸를 해야 하는 순간이다.
얼른 아버지 겨드랑이에 손을 끼어 어르신을 일으킨다. 다시 겨드랑에서 손을 거두지 않고 아버지를 안내한다. 순간순간의 눈동자가 아버지를 떠나지 않는 자세다.
모든 것을 아버지의 행동에 집중하며 잠시도 소홀함이 없다.
머릿결이 희끗한 아들 몸이 기우뚱하신다. 저런 몸으로 아버지의 안전을 위해 잠시도 눈을 떼지 않는 아드님,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어이 샴푸가 끝나고 머리 손실이 마무리되었다. 아드님은 정성스레 계산을 하고 아버지와 미용실을 벗어났다. 다정스레 부축을 하고 문을 나서는 두 어르신을 보고 내 머리는 휑하니 비어가며 눈물이 핑 돌았다.
아, 아직도 저런 아들과 아버지가 있구나! 누가 아들이고 아버지인지 구분은 어려운 모습이다.
머릿결의 하양은 두 어르신이 같았지만, 발걸음과 자세는 전혀 달랐다.
혹시나 아버지가 불편할까 잠시도 눈과 손을 떼지 못하는 자세였고, 정성스러운 그 자세는 왠지 가슴이 멍하니 숙연함을 알게 해 주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의 삶은 어떠할까?
지금도, 장모님은 몇 년째 요양원을 전전하신다.
처음 몇 년은 수없이 찾아가고, 전화를 드렸지만 이젠 몸도 마음도 멀어진 느낌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늘 하지만, 마음과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 찾아가 뵈어야지 하면서도 선뜻 나서 지지 않는 고희의 철부지, 미용실에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다.
세월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도 잔인하게 흘러간다. 모든 것이 남의 일 같지만 내 일이고, 나의 일이다.
누구도 자신할 수 없고, 자신해서도 되지 않는 일이다.
어느 요양원 앞에 쓰여 있는 문구, "당신이 오실 곳입니다"라는 구절이 번뜩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조금 허연 머리칼을 감추려고 찾았던 미용실에서의 풍경이 긴 여운으로 가슴에 새겨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