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만년필에 잉크를 채운다.

(파란 글씨의 산뜻함) 사진 : pixabay

by 바람마냥

아침나절 책을 읽는 중, 메모하고 싶은 문구가 보인다. 가슴에 담고 싶은 글은 늘 정리하며 메모를 한다. 얼른 손을 뻗어 만년필을 잡았다. 언제나 굵직한 손맛에 부드러움을 주는 만년필이다. 파란 잉크가 글씨를 따라 흘러나옴이 언제나 신기했다. 앗, 잉크가 나오지 않는다. 얼른 파란 잉크병 뚜껑을 열고 잉크를 넣는다.

글씨를 쓰기 위해 만년필이 가는 대로 흘러나오는 파란 잉크, 하얀 불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신비로워서다. 파랗게 빛나는 신비함에 포기할 수 없는 만년필 글씨, 아직도 고집하고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처로 중학교를 갔다. 변변한 필기도구가 흔하지 않던 시절, 펜이라는 필기도구가 필수품이었다. 잉크병과 펜촉이라는 신기한 필기도구를 만난 것이다. 잉크가 있어야 하고 뾰죡한 펜이 있어야 했으니 어린것들이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불편한 도구지만 신기했다.

생전 처음 배워보는 영어 필기체, 조심스레 잉크를 찍어 펜으로 써낸 모습은 신기했다. 비스듬히 누워있는 듯한 파란 글씨는 너무 아름다웠다. 글씨를 쓰려면 잉크가 있어야 하고 뾰죡한 펜촉이 있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늘 불편했다. 실수로 잉크병이 엎어지면 지울 수 없는 험난한 난리가 났고, 뽀쪽한 펜촉에 손을 찔려 아찔함도 찾아왔다. 온갖 어려움에도 파란 글씨가 만들어 놓은 신비로움은 아직도 남아있는 미련이다.

고집인지 아집인지 서너 개의 만년필을 놓고 어느 것으로 써볼까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책상 위엔 세 개의 만년필이 있다. 각각의 인연을 가지고 있는 만년필은 언제나 충전상태인데 오늘은 빈 것이 있었나 보다. 책을 읽다가도, 글을 쓰다가도 생각나면 메모를 위함이다. 기분에 따라 골라서 쓰는 만년필, 하나는 제주도 여행길에 구입한 것이다. 기십만 원을 주고 면세점에서 구입했으니 나름대로 고민을 했던 디자인이다. 묵직한 느낌에 부드러움을 주는 만년필은 언제나 정감이 가는 여행의 소산물이다.

또 하나는 세월이 만들어 준 만년필이다. 세상에 나와 육십갑자의 세월을 살아 냈다고 아내가 선물한 고급 만년필이다. 이름이 나 있는 나름대로의 멋진 만년필은 부드러움에 묵직함을 주는 소중한 만년필이다.

또 하나의 가느다란 만년필은 검은색에 무늬가 아름답다. 평생을 아이들을 가르치며 이젠, 은퇴의 길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현직에서 물러나면서 아이들이 선물한 만년필이니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삶의 도구들이다. 세월은 흘러갔고 마냥 변해 만년필도 귀하고, 잉크도 구입하기엔 쉽지 않다.


서기병이었던 군대시절엔 검은 볼펜을 사용했고, 세월은 흘러 컴퓨터가 나타났다. 글씨라고는 쓸 기회가 없는 현실, 모두는 손으로 쓰는 글씨를 멀리하고 말았다. 가끔 만나는 손글씨는 오래 전의 정성 담긴 글과는 너무 달랐다. 글씨의 모양도 다르고 멋대로 써 내린 글씨는 개성이 뚜렷이 담겨있다. 더러는 읽기도 힘겨운 글씨체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세월에 수긍하고 만다.

현대 사회의 대세는 컴퓨터를 이용한 프린터기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프린트기라는 괴물체가 모든 것을 대신한다. 글씨체를 택할 수 있고, 크기를 조절할 수 있으며 색깔도 마음대로다. 얼마나 편리한 세월인가?


편리하고도 쉬운 세상에 만년필을 구입하기도, 사용하기도 번거로운 일이다. 잉크를 사려면 여러 문구점을 찾아야 하고, 어느 구석에 있는지도 찾을 길이 없다. 필요로 하는 사람이 드물기에 주인장도 곤란해한다. 가끔은 가격도 몰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잉크이고 만년필은 구입도 어렵다. 기어이 면세점에 들러야 찾아낼 수 있고, 고가의 만년필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귀중품 노릇만 하고 있다. 오늘도 만년필에 잉크를 충전했다.


컴퓨터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도 만년필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파란 잉크롤 고집하고 있다. 검은색은 선명하지만 조금은 답답하다. 앞뒤가 꽉 막힌 느낌을 주는 검은 잉크 글씨다. 언젠가 잉크를 구입했는데 검은색, 할 수 없이 문구점을 다시 찾아 교환했던 이유도 그렇다.

검은색보다는 파란 잉크글씨가 가볍지만 선명했고, 선명하지만 묵직함이 주는 색깔이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그 선명한 글씨가 전등불에 빛이 나는 모습은 여전히 신비롭다. 신비함에 산뜻함을 주는 파란 잉크 글씨, 오래전에 주었던 펜글씨의 잔상이 남아 있고, 비스듬히 누은 필기체의 매력은 아직도 기억 속에 있다. 아련한 추억을 주는 파란 잉크 글씨가 주는 아름다움, 아직도 파란 만년필 글씨를 고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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