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익숙해진 맛, 어머니의 쌀밥은 싱거웠다.

(쌀밥이 주는 기억)

by 바람마냥

하얀 쌀밥에 검푸름이 물들었고, 검은 콩이 드문드문 섞여 있다. 아내가 차려 놓은 점심상에 검은 콩이 섞인 쌀밥의 표정이다. 흰쌀밥에 물든 검푸른 색깔로도 입맛을 자극하는데, 검은콩과 어우진 쌀 밥은 거절할 수 없다. 얼른 밥 한 숟가락을 뜨고, 김 한 장을 올렸다. 숨을 가다듬고 입으로 밀어 넣자 '음'소리가 절로 나온다.

검은 콩이 섞인 쌀밥과 김이 이렇게도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

하얀 쌀 위 검푸른 빛과 검은 콩이 씹히며 주는 고소함과 김이 주는 짭조름한 점심상을 순식간에 비웠다.


오래 전의 기억이다. 어머니는 하얀 쌀밥이 싱겁다 하셨다. 싱겁다는 맛이 어떤 맛일까?

하얀 쌀밥이 전해주는 포근함은 포기할 수 없었지만,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에 하얀 쌀밥이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보리쌀을 삶아 놓고, 끼니때마다 보리쌀을 가마솥 밑에 깔았다.

보리쌀 위에 한 줌의 쌀을 놓고 밥을 짓는 시절의 고단한 살림살이다. 불을 지피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 밥솥이 하얀 김을 쏟아낸다. 밥이 다 되었다는 귀띔인데, 밥솥을 열자 하얀 김이 부엌을 가득 메운다.

검은 솥바닥엔 보리쌀이 대부분이고 하얀 쌀밥은 두어 그릇 양이다.

아버지 몫이 퍼지고, 남은 것은 귀한(?) 아들에게도 분배되었다. 이맛을 잊을 수가 있을까?

미안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그 맛, 하얀 쌀밥이 전해주는 맛이었다.

누님과 동생의 보리밥이 미안했고, 어머님의 밥그릇에 죄송함이었다.

보리밥을 좋다 하셨던 어머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지만, 쌀밥은 싱겁다 하셨다.


세월이 흘러 쌀밥이 대세가 되었고, 언제나 하양으로 맞이하는 밥상시대가 되었다.

여전히 어머니는 보리쌀을 넣어야 했고, 콩이 있어야 밥이 맛있다 하셨는데, 정말 쌀밥이 싱거워 싫으셨을까?

쌀밥이 정말 싱거웠는지 아니면 귀한 쌀밥을 남편과 자식을 위한 양보였는지 끝내 확인하지는 못했다.

어린 철부지는 하얀 쌀밥만으로도 충분히 맛이 있었고, 언제나 콩이나 보리쌀의 섞임은 불편했다.

쌀밥이 싱겁다는 어머님의 궁금함을 잊었고, 세월이 흘러 어머님의 세월이 되었다.


여전히 쌀밥은 맛이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콩이 섞인 밥이 좋았고, 맛이 있었다. 콩이 주는 부드러움과 구수함은 신선해서다. 몇 년 전부터 시골 작은 텃밭에 채소를 심고 남은 구석에 강낭콩을 심었다.

강낭콩은 무럭무럭 자랐고, 가을이 되면서 밥에 얹은 몇 개의 강낭콩이 주는 맛에 깜짝 놀랐다.

이런 맛을 주는구나! 아, 어머님의 입맛이 이런 것이었구나! 궁금했던 기억을 찾아냈다.

쌀밥이 싱거워 싫다는 말은 어머님은 원래부터 쌀밥을 불편해하셨을까? 아니면 귀한 쌀밥을 남편과 아들에게 양보하기 위함이었을까?


세월이 지난 철부지의 생각은, 아무리 보리밥과 콩밥에 익숙한 어머님의 입맛이더라도 하얀 쌀밥은 맛이 있었을 것이다. 쌀밥이 싱겁다며 싫어하신 진짜 이유는, 싱거워 싫은 것이 아니라 귀한 쌀밥은 나의 몫이 아니라는 아내와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내가 차린 점심상에서 쌀밥이 싱겁다고 하신 이유를 나만의 해석으로 추측을 해 본다.


얼마 전에 만난 여동생이 텃밭에서 농사지은 검은 콩이라며 비닐봉지 한 개를 전해 준다.

구수한 맛이 일품인 쥐눈이 콩이라는 말에 환호성을 지른다. 쌀밥을 고급지게 만들어 주는 검은콩은 구수함과 고소함을 함께 주는 신성한 맛이다.

오랜 세월 익숙한 밥맛에 쌀밥이 정말 싱거워 싫으셨는지, 귀한 쌀밥을 양보하기 위함인지 어머님의 정확한 뜻을 알아낼 길은 없지만 아내가 차린 검은 콩밥은 오래전 어머님의 입맛을 추측해 보는 아름다운 맛이었다.

검은 콩이 섞인 점심상에서 어머님의 밥 맛과 순식간에 흘러간 세월을 실감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