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아니면 또, 어떠한가?

(하루를 살아가면서)

by 바람마냥

여자 가수의 노래가 끝났다. 열렬한 박수 속에 전문가가 평을 한다. 순식간에 끄집어내는 평가는 송곳으로 찌른 듯이 날카롭다. 와, 역시 전문가는 다르구나! 역시 전문가였다. 순식간에 잡아내는 전문가적인 안목에 깜짝 놀라는 순간이다.

수채화를 그리러 일주일에 한두 번 화실엘 간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림에 몰두할 수 있음이 좋아서다. 전문 화가도 아니니 잘 그리지도 못하지만 나 홀로 몰입함이 좋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물감을 섞고 붓을 들어 터치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이는 순간, 한 마디의 조언은 깜짝 놀라게 한다.

전문가가 던지는 한마디의 조언, 왜 그것을 몰랐을까가 궁금하기도 또 쑥스럽기도 하다. 과연 전문가라는 말을 하기에 충분했다.

고희의 세월을 이겨낸 나는 어느 분야에 전문가라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잘 떠 오르질 않는다.

호기심과 자그마한 욕심에 이것저것에 몰두하며 살았지만 퍼뜩 떠오르는 것이 없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한 가지쯤은 전문분야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40년 가까이해 왔으니 언뜻 전문가일 수도 있는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3 아이들과 어울릴 때는 제법 그럴듯했었다.

아이들이 질문하면 대부분은 설명이 되었고, 어려움에 처하면 다시 공부를 해 가르칠 정도는 되었었다.

소위, 입시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지만, 은퇴 후의 삶은 전혀 달라졌다.

은퇴를 하면서, 수학을 가르치는 일에 접할 기회는 없었다. 평생을 해오던 일을 한 번도 되뇐 적이 없어서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멀리하고 있을까?

수학을 가르쳤다 하면 또다시 바라본다. 그걸 어떻게 가르쳤어요?


속속들이 이과체질인 사람, 암기에는 자신이 없다.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나의 영역 밖이었다.

어떤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순조로웠다. 왜 이렇게 될까를 언제나 생각하는 사람, 중3 때의 기억이다.

왜, 근의 공식을 외우라 할까? 대입만 하면 답이 구해질까 가 궁금했었다. 왜 그럴까?

근의 공식을 만들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 그래서 그렇구나!

수학을 전공하고 평생을 가까이했던 이유다. 이젠, 나의 영역 밖으로 밀려났다.

나의 전문 영역을 벗어났으니 전문가임을 내 세울 것이 한 개도 없다.


긴 세월 글을 써 오면서도 책 한 권 만들지 못했다. 수채화를 수년간 가까이하면서도 그림 한 장을 팔아 내지 못했고, 음악에 숨어 살지만 전문가엔 얼씬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헬스장엘 수십 년 드나들어도 알려 줄 수 없다. 모두가 전문가여서 섣불리 다가갔다간 망신을 당한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와 대적하는 사람, 가벼움이 좋다는 말에 걱정하지 말라한다.

얼른 뒤돌아서 후회를 한다. 감히 나설 수 없는 영역임을 알게 하는 이유다.

대부분 어설픔에 다가갈 수 없고 다만, 오로지 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언제나 언저리에서 얼쩡거리는 사람, 궁금했고 나도 할 수 있을까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준비 없이 다가 온 늙음은 잔인하다고 하지 않던가?

어느새 나를 시험하고 싶어 했던 일들은 늙음의 준비였고, 고독을 이겨 낼 친구가 되어 있었다.

나름의 전문가도 안되고 누굴 알려줄 능력도 되지 않는다.

다만, 나를 가르치고 함께 놀 수 있는 놀잇감이 되었으니 이만하면 잘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것마저도 하지 않았다면, 은퇴 후의 고독은 감당할 수 없는 잔인함이었으리라.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던가!

오늘도 친구 삼아 함께 살아가는 친근한 나의 놀잇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