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전시장을 가다)
수채화를 그리러 드나든 화실도 꽤 여러 해 된다. 그림이라고는 어울리지 않는 옷임을 알고 있지만, 세월에 밀린 삶을 이어가는 데는 그럴듯했다. 그림을 그린다는 말, 어쩌면 화려하진 않아도 뭔가 있어 보이지 않은가? 가슴에 숨어 있는 나름대로의 믿음이었다. 친구에게 화실에 간다 하면 별짓을 다한다 했지만, 이젠 그러려니 한다. 음악을 한다고 추석거리고, 어쭙잖은 글을 쓴다고 들썩이더니 그림을 그린다 해도 반응이 없다. 술잔을 돌리거나 리모컨을 주물덕거리는 것보다는 낫다는 나만의 오만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해의 첫 달이 지나갈 즈음, 주섬주섬 그림을 싣고 집을 나섰다. 입춘즈음에 시작되는 수채화전시장으로 향하는 길이다.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수채화를 전시하러 가는 길이다. 전시장이 그 유명한 세종시라나 뭐라나! 왜 그리 멀리 정했을까 하며 말을 더듬는 이유는 내 그림이 팔릴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찾을 것도 아닌데 괜히 먼 길 가는 수고가 아까워서다. 전시회라는 그럴듯한 단어와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전시회를 탓할 수 없어 말없이 따르는 수밖에 없다. 서둘러 나서는 길은 설레기도 하고, 괜히 겸연쩍기도 했다.
설레는 이유는 나라는 사람이 전시회를 한다는 것이고, 겸연쩍은 이유는 걸맞지 않은 옷을 걸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것에 무게가 더 실리느냐면 후자 쪽이 분명하다. 10여 년이 넘어가는 시점이지만 세월이 더해질수록 어렵다는 생각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인내심이 갸우뚱해서다. 그림에 대한 자신감도 줄어들고, 언제 그만둘까를 수없이 고민하기도 한다. 친구들은 화가라고도 하고, 화백이라고도 한다. 친구이기에 그냥 건네는 말이라고 생각해도 늘 부담스러운 호칭이다. 호사스러운 말을 들을 자신이 없어서 이기도 하다. 시원하게 뚫린 행복도시로 가는 길, 행정중심 복합도시에 들어섰다. 어리석음에 웃었던 기억이다. 행정중심 복합도시인 행복도시, 정말 행복을 주는 행복한 도시인줄 알았다. 정말 행복도시일까?
거대한 아파트 전시장인 세종시 언저리다. 긴 강을 따라 들어선 아파트가 숨길이 막힌다. 산이 허물어지고 근사한 하늘이 가려짐에 어쩐지 슬퍼진다. 햇살을 받아내며 흐르던 강을 따라 들어선 아파트는 눈길을 막아서다. 왜 여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국민과 나라를 위한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일까? 아니면 또 다른 흑심이 숨어서는 아닐까?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접고 정신을 차려본다. 반듯하게 이어진 길은 여기가 어디인지 알 길이 없다. 오래전 박 선생이 생각나고 정선생이 떠오르는 길다. 박 선생의 집이 여기쯤 아니었나? 교대를 졸업하고 발령을 기다리던 정선생님, 재건학교에서 만났던 정 선생네 약국도 여기쯤이었걸. 졸업식날 어설픈 꽃다발로 슬퍼하던 선생님을 위로했던 금순이네 동네는? 어렴풋이 기억해 보지만 어림도 없는 세월이다. 대학시절, 재건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동료들이다.
오래전엔 그 아름답던 자그마한 면소재지, 장기면 언저리다. 대학을 다니며 수없이 드나든 곳이다. 중학교가 있고 파출소가 있었으며, 하숙집 아저씨가 근무하던 양조장이 있었다. 어둑한 중국집이 하나 있고, 약국이 있었던 동네다. 대단한 교육자가 된 것처럼 아이들을 가르쳤다. 소위 재건학교라는 곳,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배움을 멈추어야 하는 아이들이었다. 부모를 설득하고 아이들을 찾으러 눈길을 헤매던 곳이다. 아이들과의 만남은 어언 4년이 이어졌다. 일을 해야 한다며 배움을 포기한 아이들, 그 부모의 설득은 어려웠다. 장사꾼이 찾아온 듯 멀리했고, 내 자식을 해할까 봐 망설였다. 설득하러 또 찾아오는 성의에 그예 허락하고 말았던 어르신들이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너무 어려웠다. 어렵게 아이들을 모으고 3년을 가르쳤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서다. 학교를 운영할 돈이 없었고, 먹거리가 없었다. 잠자리가 없어 교실에서 숙식을 했다. 평소엔 하숙집에서 살았지만, 방학이 되면 잠자리와 먹거리를 손수 해결했다. 용돈을 아껴 털어 넣어야 했고, 부모님을 속이며 아이들을 가르치며 방학을 보냈다. 쌀을 삶아 고추장과 풋고추로 여름을 이겨냈다. 소변이 붉어지는 영양실조였다는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나 알았다. 어려움을 딛고 아이들을 생각했던 시절이다. 어렵게 소풍길에 나섰다. 눈물 어린 김밥이 생각나고, 수줍음에 사진 한 장 찍자 소리를 망설이던 아이들이었다.
언젠가 전국에 살고 있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오래 전의 추억을 되새기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추억을 되살려 주기도 했다. 너무나 고마웠다는 말 한마디에 서러움과 고단함은 물러가고 말았다. 추억 어린 그 거리에 아파트가 주저앉고 나라를 되살린다며 높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오래 전의 그 아이들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아마도 지천명의 세월이 지나 이순은 되었을 아이 아닌 어른들이다. 아무 바람도 없이 오로지 아이만을 위해 보낸 세월이었다. 사범대학을 다니던 친구들은 서로가 교육자라 칭했다. 내가 진정 교육자라 하면 너는 대학을 다니는지, 재건학교를 다니는지 모른다 했다. 반듯한 도로가 만들어지고 높은 분들이 거주한다는 거리는 숨이 멎어있다. 상전벽해라더니 그리운 장기면과 의당면 언저리의 풍경이다. 고단한 4년의 발걸음이 스민 세종시의 과거다. 머리를 털고 길을 서둘렀다.
전시장 오는 길에 만난 오래 전의 기억은 할 일마저 잊게 했다. 그리움과 열정이 넘쳤던 거리, 다시는 올 수 없는 그 시절은 오간데 없다. 그렇게도 아름답던 청춘은 다시 올 수 없는 아쉬움이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고, 긴 거리를 지났다. 반듯한 도로는 구불구불함 보다는 편리했다. 편리함 속엔 추억이 없고 그리움을 깔고 앉았다. 안개가 드리웠던 그 순이네 집은 사라졌고 코흘리개 영철이는 보이지 않는다.
어렵게 전시장에 도착해 그림을 걸었다. 하얀 벽에 걸린 그림들이 빛나고 있다. 그림이라는 예술품, 오로지 예술이라 생각했었다. 그림과 음악, 순수함만이 가득한 줄 알았던 철부지였다. 예술에도 사람이 섞였고 돈이 드리웠는지는 생각도 못한 어리석음이었다. 그랬다. 예술도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내가 근접하기에는 삶이 허락하지 않는 먼 거리에 있었다. 직선과 끊고 이어짐만을 고집한 사람이 어림도 없는 발걸음이었다. 얼른 생각을 털어내고 전시장을 정리한다. 회원들과 어울려 그림을 전시하고 나니 그럴듯하다.
삶이 제자리를 잡았을 때가 가장 잘 어울린다. 그림도 있을 자리에 있어야 하고, 사람도 제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내 자리는 어디일까?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다. 내 삶에서 나는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을까? 허울 좋은 말에 이끌려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았을까? 예술도 그리고 그림도 모르면서 작가라는 허울에 매몰되어 헛튼 걸음을 하지 않았을까? 전시장을 둘러보며 갑자기, 작가라고 해도 되겠는데라는 허울 좋은 작가인척 해본다.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예술가인양 생각에 잠겨본다.
이것이 맞는 생각인가? 그림 한 장 팔아본 적도 없고, 가격흥정도 해 본 적이 없는 유명무실한 작가다. 누구의 눈길도 끌어 본 적이 없는 듯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오로지 세월의 뒷길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고, 삶의 고민보단 몰입함이 좋아서 하는 그림이다. 언젠가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이 장려상이라는 그럴듯한 상과 함께 백만 원이라는 거액을 받아 본 것이 전부다. 작가라는 말을 써도 될까에 의심스러움에 눈을 감는다. 어림도 없음은 인정하며 전시장을 둘러본다. 어쩌다 보니 세월이 흘러 10여 년이 넘아간 그림과의 만남이다. 순전히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림을 조금 알게 되었음에 감사한 하루다. 어설프지만 수채화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그림은 영원히 남의 일이었을 테고, 미술관은 허울 좋은 건물에 불과했으리라. 그림도 어설프고, 예술을 알아냄도 어림없음을 잘 알고 있다. 오로지 삶의 시간을 그림에 할애하며 살아감이 좋아 나섰던 전시장 나들이, 그 길에서 만난 소중한 추억들이 길게 이어졌던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