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헤밍웨이가 모이또를 마셨다는 쿠바의 바)
문을 쾅 닫으니 문은 여지없이 반항이다. 부엌에서 다용도실로 나서는 문, 들어오며 문을 세게 닫으면 여지없이 다시 열린다. 뒤돌아서서 다시 닫아야 함을 수차례 반복한다. 다음엔 조용히 닫아야지 하지만, 세월은 정신줄을 빼앗아갔다. 여지없이 쾅 닫으니 또 열리고 마는 순간, 후회를 하고 만다. 세상은 강함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줌이다.
전엔 길가에 쓰레기통이 있었지만, 이젠 없어지는 추세다. 물건을 사고 결재한 영수증,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구겨져 손에 잡히니 자꾸 거슬린다. 지나는 길에 우연히 만난 쓰레기 통에 던졌다. 운이 좋아 쓰레기통 언저리에 맞았지만 여지없이 튀어나왔다. 다시 허리를 굽혀 쓰레기를 주워 통 안에 넣어야 했다. 처음부터 공손하게 넣었으면 하는 후회는 수시로 만난다. 신을 벗고 들어가는 식당은 불편하다. 신을 벗어야 하고, 신발장에 넣어야 해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중이다. 신발을 꺼내 바닥에 툭하고 놓으면 여지없이 신발은 제멋대로다. 옆으로 눕기도 하고, 멀리 튀어 나가기도 하니, 얼른 허리를 굽히는 수밖에 없다. 늘 후회하면서도 또 겪어야 하는 일상이다.
거센 바람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이 아닌, 부드러운 바람이 옷을 벗게 한다. 일상에서의 삶도 그러함은 긴 세월이 알려준 사연이다. 다짜고짜 큰 소리의 행렬은 여지없이 곤란함을 초래한다. 곤란함 끝엔 그예 싸움으로 번지지만, 사리를 분별해서 차근차근 건네는 말 한마디는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물건을 사고 불편함에 전화를 한다. 다짜고짜 큰 소리로 논리를 펴지만, 차근차근 대답하는 상담자의 위엄에 금방 고개 숙이는 어리석음이다. 돌아서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세월이 성큼 흘러갔다. 호기롭던 목소리가 잦아들었고, 천리안이었던 눈은 흐릿해졌다. 반짝이던 피부는 푸석해졌으며 성성하던 걸음걸이도 어색한 세월이다. 세월이 만들어준 덧없음을 탓할 수만은 없는 삶이다.
세월 따라 달라진 삶에 순응하며 삶의 뜻을 헤아린다. 목소리가 잦아들었음은 큰소리치지 말라는 뜻이었고, 흐릿한 눈은 돌다리도 두드리라는 의미였다. 처절했던 삶을 되돌아보며, 나무를 보지 말고 산을 보라는 의미였다. 허튼 발걸음은 남은 삶도 어지럽게 만들 수 있어서다.
봄기운이 찾아온 골짜기에 찬바람이 서성인다. 섣불리 나섰다간 깜짝 놀라는 어설픈 봄이다. 얼음장 밑으로 찾아온 봄기운은 아직은 이르다며 서늘함으로 일러준다. 꽃을 심고 밭을 갈기엔 조금 더를 알려준다.
참고 또 기다림이 있어야 제대로 된 삶이 되리라는 뜻이었다. 서둘러 봄을 맞이했단 낭패를 볼 수 있다.
아직은 서늘함이 남아 있는 골짜기여 서다. 머지않아 찾아 올 훈풍을 기다려야 한다.
산을 넘은 봄비도 맞이해야 한다. 서두름은 참아냄만 못하고, 강함은 부드러움을 넘어설 수 없다.
언제쯤 세월에 익은 삶을 이룰 수 있을까? 찬 바람 부는 골짜기의 아침, 긴 세월이 준 의미를 되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