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아저씨와의 소개팅에서 냉동난자까지, 나의 모태솔로 탈출 분투기
“야, 서른 넘어가면 여자들이 왜 마음이 급해지는 줄 알아? 결국 가임력 때문이야. 남자들은 급할 게 없어. 난자 얼려, 얼리고 괜히 나이에 쫓기지 말라고.”
맞다. 사람은 다 평등하다지만 우리의 몸에는 차이가 있다. 남성도 나이 증가에 따른 가임력의 감소가 ‘확인’되었다는 연구가 있지만, 여성의 경우 35세를 기준으로 난소기능이 급격히 약화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아니 그렇다 해도 35세는 너무 젊지 않은가? 그보다도 왜 여자에게만 이런 시련이......
1986년, 무려 지금으로부터 약 40여 년 전에 이미 세계 최초로 냉동 난자를 통해 아기가 태어났다. 과거 난자동결기술은 암 치료 등을 앞두고 생식능력을 보존하고자 하는 환자들을 위해 이용되고 계속적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학업 또는 직업 등의 이유로 출산을 늦춰야 하는 여성들을 위해 이 기술이 널리 권장되고 있었다.
“그래 너 어차피 가진 것도 없는데 니가 가진 돈을 투자해서 가치가 높아질 유일한 너의 혼수 인 셈 쳐라.”
“냉동난자가 시험관 아기랑 과정이 비슷할걸? 근데 어차피 남편이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건 딱히 없어. 병원에 혼자 오는 여자들도 엄청 많아.”
“니가 지금 속상해할 때야? 한 살이라도 건강할 때 얼려라. 일단 미루지 말고 당장 검사부터 받아봐.”
주식도 부동산도 아닌 난자에 투자하라는 친구부터, 남편이 있든 없든 출산까지의 고생은 결국 여자가 한다는 친구까지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진실로 한 생명의, 아니 새 생명의 피가 되고 살이 될 수도 있는 조언을 시작했다.
그때 둘째를 가진 친구가 말했다.
“알지? 검사 다음 단계는 새 소개팅이야. 니가 그렇게 술 퍼먹다가 죽어도 니 난자는 냉장고에 살아있는 거야. 넌 난자를 얼리는 동시에 정자를 열심히 구해야 해. 새 사람 빨리 만나라.”
성경에 따르면 복되신 동정녀 성모 마리아께서는 원죄 없이 처녀잉태로 예수님을 출산하시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는 여성과의 동침 없이 혼자서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낳고 그의 아내 헤라는 남성과의 동침 없이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낳았다. 그러나 사람의 자식인 나는 정자를 구하지 않으면 얼린 난자는 냉장고에서 하염없이 전기를 쓰며 환경파괴에 일조하는 것이 된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옛날에 <여우야 뭐하니>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배우 고현정 씨의 컴백 드라마였다. 첫 화에서 처녀가 산부인과를 가는 곤란함을 다루었다. 드라마에서는 결국 10살도 넘는 연하의 꽃미남 천정명과 사랑(?)에 빠지며 편히 병원을 다닐 수 있게 된다지만 현실에는 그런 일이 잘 없다. 근데 산부인과도 아니고 난임치료 병원을 혼자 다니라고?
한국은 최고의 난임치료 기술을 가진 나라라고 한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이미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는 시험관 아기들이 그 기술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들리는 이별노래에도 슬퍼하는 내 꼬락서니를 스스로가 견딜 수가 없었던 나는 홀린 듯 국내 최고의 난임 병원에 가서 신상카드를 썼다. 남편 칸에는 ‘없음’이라 쓰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