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아저씨와의 소개팅에서 냉동난자까지, 나의 모태솔로 탈출 분투기
발등의 피멍보다, 마음에 든 멍이 더 아팠다. 이별의 슬픔을 핑계로 술 먹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먹고 사느라 바쁜 친구들에게 이때다 싶어 연락을 돌렸다.
- 술 먹자.
- 나 술 못 먹어.
- 너 혹시 임신했어?
20대 때는 같이 막차가 끊기도록 술 먹고 놀던 친구들이 하나 둘 시집을 가더니 어느 날 나만 남게 되었다. 어쩌다 간신히 모이면 꼭 술을 못 먹는 친구가 하나씩 있었는데 그러고 나면 조카들이 태어났다.
- 뭔 임신이야. 나 임플란트 했어.
'아. 나만 퇴행이 시작된 것이 아니구나.'
어느덧 우리는 사이좋게 퇴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인디언 속담에 ‘친구는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한 때는 그 말이 참 좋았는데, 나이를 먹어가며 내 슬픔과 친구의 슬픔을 비교하게 되면서 괴로워지는 순간들이 자꾸만 생겨났다. 친구들이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축하해 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집도 못 가고, 돈도 못 번다는 생각에 이따금 초라해지는 기분도 괜찮았다. 내가 선택한 내 인생이니까. 나 한 사람만 생각하면 인생의 속도 차이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문제는 친구들은 만날 때 나만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나만 자꾸 어려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견딜 수 있는데, 나의 슬픔이 혹시 친구들에게는 무겁게, 불편하게 느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었다. 내 처지가 비슷하면 우리의 만남이 더욱 즐거울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면 괴로웠다.
노년 여성들의 우정을 다룬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드>에는 치매가 온 주인공(김혜자)이 친구(나문희)에게 울면서 지난 상처를 털어놓는 장면이 나온다. 너는 왜 항상 사는게 힘든거냐고, 난 기댈 곳이 너 밖에 없는데 그래서 내가 맘놓고 기댈 수가 없다고 외치며 목 놓아 우는 장면인데, 처지가 다른 친구들끼리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싶었지만 그래서 더 상처받고 속상해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동시에 현실에서도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자연스럽게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만나게 된다는 어른들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나의 근황을 물었고, 나는 조심히 나의 박살 난 소개팅 이야기를 꺼냈다. “나 얼마 전에 8살 많은 머리카락 없는 아저씨랑 소개팅했다가 대차게 까였어.” 다행히도 흥미로워하며 니덕에 도파민 충전 좀 하자는 아줌마들의 호탕함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너 그 사람이 맘에 들었구나?”
“응. 근데 그 사람은 아니라는데 어쩌겠어.”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속상해하고 있다는 것을 들켜버렸다.
그때 여고 시절부터 너무나도 똑 부러졌던 한 친구가 말했다.
“야 너 진짜 좋았어? 마음이 급했던 건 아니고? 누구라도 괜찮았던 거 아냐? 너 어차피 늦은 거 슬퍼할 시간에 차라리 냉동난자를 해. 돈 없으면 우리가 빌려줄 테니까.”
아, 요즘 같은 시대에 슬픔을 꼭 등으로 무겁게 질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