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아저씨와의 소개팅에서 냉동난자까지, 나의 모태솔로 탈출 분투기
주선자 김 박사는 젊은 시절 연애를 많이 해봤다고 했다. 우스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일종의 알파메일이 주선하는 소개팅은 나에게 그 자체만으로도 자신감이 되었다. 마흔이 넘도록 모쏠인 것보다는 한 번 갔다 온 사람이 낫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그만큼 사람들이 결혼 못한 사람들은 분명 어딘가 문제 있는 사람인 것처럼 취급을 하다 보니 내 자신감은 바닥에 있었다. 그런데 멀쩡한 양반이 자기 오랜 지인과 소개팅을 시켜준댄다. 자신감이 올라간다. 동시에 그에게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관리에 들어갔다.
고맙게도 매일 술 먹던 사람들도 이번 소개팅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며 앞으로 이런 자리에 나오지 말라며 소주잔을 앞에 두고 침을 튀겨가며 코칭을 해주었다. 온갖 판촉 행사부터 돌잔치, 결혼식 심지어 동네잔치까지 진행 아르바이트를 오랜 시간 해온 나에게, 소개팅 나가서는 절대로 진행 같은 거 하지 마라. 괜히 긴장 푼다고 되지도 않는 개인기나 농담 같은 거도 하지 말아라. 우리랑 술 먹을 때처럼 하지 말고 그냥 조신하게 웃기나 해라. 너무 많은 얘기를 흥에 취해 떠들지 마라.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았기에 진지하게 새겨 들었다.
나는 유튜브로 공부도 시작했다. 그것은 내게 일종의 인터넷 강의였다. 매일 아침 준비를 하면서도, 출퇴근 길에서도 소개팅 예능을 틀어놓고 반복 학습을 하며 머릿속으로는 그날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온갖 연애 코칭 유튜버들의 영상으로 심화 학습을 하며 더 나은 대화법, 공략법을 탐구하였다. ‘수능공부도 이렇게는 안 했는데’ 같은 반성은 필요 없었다. 남들은 10대, 20대 때 더 치열하게 공부했을 거라 생각하며 연애공부 만학도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나는 의욕이 넘쳤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새겼어야 하는 것은 ‘남자를 사로잡는 대화법’, ‘첫 만남에 좋은 이미지를 주는 법’, '애프터 필승 전략' 같은 게 아니었다. 당시 나는 소개팅하고 몇 개월 만에 결혼한 주변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들이 그런 결단과 성취를 하기까지 어떤 무수한 노력과 실패를 거쳐 왔는지는 모른 채.
사람들 앞에서 '이번 소개팅이 잘 되면 그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봄에는 결혼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몰라' 따위의 김칫국을 마시진 않았지만, 막연히 믿을만한 주선자가 소개해주는 사람이니 좋은 사람일 것이고 내가 마음을 열고 열심히 노력하면 처음이지만 연애를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는 동안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진취적으로 내가 말을 붙여야 하나 생각도 했다. 처음 ‘소개팅할래?’ 물어보면서 김 박사는 그에 대해 딱 한마디로 설명했다 ‘모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페미니스트’. 40대 아저씨 페미니스트라. 뭔가 아다리가 안 맞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마음이 편해지고 먼저 연락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성급함으로 거사를 그르칠 수는 없는 법. 이번만큼은 나도 그동안 개무시하고 살아온 이 사회의 암묵적 룰을 따르리라. 그런데 그러다 보니 보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문득 마음이 불안해졌다. 프로필 사진을 보고 까인 걸까. 김 박사가 그쪽에는 나를 뭐라고 설명했을까. 나에 대한 설명이 맘에 들지 않았을까. ‘아 이번에도 망했구나.’ 하던 차에 문자가 왔다. 연락이 늦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약속 장소를 잡아야 하는데 데이트 같은 걸 할 일이 없었으니 도대체 어디서 만나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안 어울리게 호텔 커피숍 같은 곳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상대가 자기가 oo동에 사니 그 중간에서 보자고 말을 했다. 도보 10분 남짓. 우리 동네와 딱 붙어있는 옆 동네였다. 이 동네에는 돌솥밥이 찰지고 맛있는 기사식당밖에 없는데...
늦게 연락이 왔지만 약속 날짜는 빠르게 잡혔다. 당장 그 주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