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바빠도 웃기지

니시무라 군, 잠이 오지 않아

by 코알라

영화 <남극의 셰프(2009)> 를 5번은 본 것 같은데, 앞으로도 몇 번 더 감상할 계획이다.

나는 이 장면을 좋아한다.

“니시무라 군, 잠이 오지 않아.”

자칭 ‘라면(라멘) 인간’인 대장이 한밤중에 조리담당 니시무라 방에 와서 한다는 소리가, 라면 먹고 싶은데, 라면 못 먹으니까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괴롭다는 뜻이다.

다 큰 어른이, 그것도 후지 돔기지 대원 중 최고참으로 보이는 대장이 울먹이면서 오밤중에 라면타령이라니.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대충 이런 감상을 느끼고 헛웃음이 나왔다.

첫인상에 대한 태도와 달리, 별 다른 클라이맥스나 긴장도 없는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저절로 재감상에 들어갔다. 그리고 재감상을 할수록 소감도 달라졌다. 나는 이 장면을 좋아하게 됐다. 언제부터인가, 남극의 셰프를 보면 인간 본연의 고독감을 자기 방식대로 극복하려는 구차한 몸부림이 눈에 들어왔다.


잠이 오지 않는다 -> 고요한 밤에 홀로 깨어 있다 -> 외로움 -> 우울함 -> 늦게 자게 됨 -> 아침에 늦게 일어남 -> 하려던 걸 못하게 됨 -> 뜻 모를 열패감이 온몸을 감싸게 됨 -> 자려고 누웠는데 후회가 밀려옴 -> 자책하다가 잠이 달아남 -> 잠이 오지 않는다 -> (이후 같음)


이 순서대로 살게 되면 우울증에 걸린다. 대장에게 라면은 평범한 일상과의 연결고리였다. 야식으로 라면을 먹지 못한다는 건, 곧 우울증이 걸릴 수 있다는 위기를 말하기도 한다. 영화는 이런 설명을 더하지 않는다. 단지 서글픈 대장의 표정을 통해 위기의 정도를 시청자가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니시무라가 잠이 덜 깨 대답했는데, 이게 힌트였다.


“닥터한테 약 받고, 상담하고.”


보건담당 후쿠다 선생에게 말하라, 그가 약을 줄 것이다. 이런 뜻이었고, 약이란 수면제나 비슷한 약물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추정한다. 결론은 마음이 아프면 약을 먹으라는 조언이었다. 니시무라의 무덤덤한 대답도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는 이런 식이다. 뭔가 심각해지려고 하다가도 그럭저럭 넘어간다.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 위로 같은 건 없다.


“약 드세요.”

우울증은 발로 차버린 공이다. 이것은 어딘가에 부딪혀서 반드시 주인에서 돌아온다. 나는 이것을 검은 공이라고 부른다. 처칠은 검은 개라고 불렀고, 어쨌든 주인에게 자꾸 돌아온다는 건 같다.

개를 달래주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장난감? 아니, 역시 배불리 먹이는 게 제일이겠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간식을 줘서 달래고 양껏 먹게 해주는 것이다. 그럼 공이 좋아하는 건 뭘까. 내내 굴러다니니 바람 충전해 주고 쉬도록 내버려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사실, 니시무라가 대장의 상태를 염려하여 잽싸게 침대에서 일어나 라면을 대신할 무언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기를, 대장이 내심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주지 않았다. 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이다. 세상은 내 우울을 달래주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나도 남의 우울을 달래줄 여유가 없다.

밥 많이 먹고, 힘내서 욕 하고, 지쳐 잠이나 자야지. 말 잘 듣는 어른으로 산다는 게 참 피곤해지는 날이면, 라면 2개 끓여 털어먹고 수정과 1.5리터 마시고 깊이 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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