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려 쿠폰 만료일 하루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 하는 말이다.
달력을 보고 아차, 소리가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올리브영 모바일 쿠폰을 못 쓰고 지나쳤다. 이 사실이 뼈 아프게 느껴지는 립밤 상습실종의 절기(겨울)가 도래했고, 나는 오늘도 메말라가는 입술을 질끈 씹는다. 코너마다 올영이 보인다. 스쳐지나갈 때면 손을 흔들어 들어오라고 반기는 듯하지만, 못 본 체하려고 애쓴다.
달력이 저절로 움직이는 시대다. 저절로 12월로 바뀌었다.
열돔에 갇혀 허우적거렸는데, 12월 선물로 시베리아가 보낸 바람이 도착했다.
11월이라고 춥지 않은 건 아닌데, 11월의 어느 날, 뉴스 앵커가 날씨더러 이렇게 말했다.
“초겨울 행세를 합니다.”
행세를 한다라. 겨울 자격이 없는 주제에 겨울인 척한다는 뜻인가. 언뜻 참신한 표현에 놀라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날씨에게 (아마도,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은 뉴스는 그만 듣기로 하고, 나는 잠자리를 정돈하며 전기장판에 온도를 높였다. 그날은 충분히 초겨울다운 날씨였다.
주택에 살아서 11월 무렵부터 난방에 한층 신경을 쓰게 된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렇다. 재작년에도 그랬다.
시간을 거슬러 2015년. 그해는 제외한다. 합정동에 이사 온 첫 해였고, 한강에서 불어닥치는 한파의 위력을 예상하지 못한 햇병아리 시절이었다. 월동에 신경 쓰지 않는 사이, 체감기온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 보일러 틀 생각은 않고 옷만 몇 겹이나 껴입었다.
옷 한 장 못 걸친 옥상수도에 균열이 생겼다는 사실도 모른 채 내복 입고 한파를 잘 이겨내고 있다고 여겼는데, 살다 보면 촉이라는 게 있다. 아니, 살다 보면 고양이가 알려주는 게 있다. 고양이가 하도 옥상에 놀러 가자고 에웅 거려 올라가 보니, 사태는 이미 9할 진행되어 있었다.
동파의 근원지는 옥상수도꼭지였다. 졸졸졸 물을 틀어놓은 것처럼 새어 나오는데,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잔잔한 물결이어도 위협적이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옥상은 빙상장이 되어 있었고, 나와 고양이는 서로 살겠다고 앞다투어 옥상을 탈출했다.
건물 외벽을 장악한 빙벽은 웅장했다. 골목길에서도 훤히 보이니, 행인들끼리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놀라워했다. 한파가 빚어낸 진풍경, 이런 타이틀로 토막뉴스에 등장할 법한 광경이기는 했다. 뉴스에 제보하고 출연료라도 챙길 걸 그랬나(빙벽에게 출연료를 지불한 사례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어찌하여 모를 수 있는가, 이런 자문을 하고 장도리를 들었다. 반성의 뜻으로 내 머리를 한 대 때리려던 건 아니고, 다시 옥상에 올라갔다. 그때부터 며칠간 동파에 대한 나의 투쟁이 전개됐다. 옥상문을 출발점으로 삼고 쇄빙에 몰두했다. <겨울왕국>의 크리스토퍼가 하던 작업을 상상하면 얼추 들어맞는다. 크리스토퍼는 얼음을 팔았지만, 나는 혹한기 서울에 얼음 사겠다는 사람을 못 만났다는 크나큰 차이가 있기는 했다.
그래도 얼음만 제거하면 되는 일이라, 압력과 시간을 투자하면 순조롭게 해결될 일이라고 봤는데, 변수는 빙질이었다. 구역별로 빙질이 달라서, 한쪽에는 벌써 살얼음 동동 물웅덩이로 바뀐 곳도 있었다. 우수관이 빙벽에 막혀 제구실을 못해 점차 옥상은 빙상장에서 물놀이장으로 바뀌어갔다. 빗자루가 부러져라 쓸어내어, 옥상계단 아래로 물을 흘러 보내도 진전이 보이지 않았다. 빙벽(고드름). 나의 투쟁은 차디찬 벽에 막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빙벽에 펄펄 끓는 온수를 쏟아붓고 출근하는 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주민센터를 통해 펌프기 대여가 가능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집 옆 빗물펌프장을 방문하여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나는 펌프기와 옥상계단을 오르며, 아직 승부가 나지 않았다고 혼잣말했다.
한파 소리가 전해오는 지난 추억(고생)이다.
살다 보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올영(을 비롯해 여러) 쿠폰을 못 썼지만 자잘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위로 같은 체념을 혼자 주고받는다. 혼잣말이 길어지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