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바빠도 웃기지

촛불 하나

by 코알라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아들이 기차놀이를 한다는 건 꽤나 거창한 계획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의 기차놀이 도구는 세월 속에서 식구를 점차 잃었지만, 레일이나 기관차 같은 중대한 구성원은 건재하다. 그것만으로도 기차놀이는 가능하다.

그리고 잊힌 콘셉트, ‘은하철도의 밤‘을 재현해내야 한다.

까만 은하를 가로지르는 열차이므로, 기차놀이는 대체로 저녁에 이루어진다. 나는 보조로서 시키는 일을 하고 지켜보고, 또 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한데, 이제 좀 컸다고, 어미가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짜주지 않아도 되어 한시름 놓았다고 내심 좋아했다가, 이내 소등할 것이라고 말하여 나는 당황했다.


웃음기를 거두고, 식탁에 데워둔 편의점 도시락을 내려다봤다.


불을 끄라고?


작은 집이라서 전체 소등은 몹시 쉽고도 쉬운 일이이라 문제는 아니지만, 어째서 소등해야 하는가, 이것을 그에게 물었다.

아들은 우주, 그것도 밤하늘을 달리는 열차이니까 우리는 어둠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둠이 때 이르게 집에 찾아오고, 93.1 메가헤르츠, 라디오의 주파수 등만이 붉게 빛을 냈다. 나는 젓가락을 들고, 보이지 않는 도시락의 밥을 떠 입에 넣었다.


“은하철도의 밤!”

아들은 헤드라이트를 켜고 어둠 속을 달리는 장난감 기차를 가리키고 만족해했다. 나도, 낭만적이다, 멋지다, 칭찬을 해주고 젓가락에 짚히는 대로 반찬을 집어먹었다.

아들이 다가와 자신에게도 나눠줄 것을 부탁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


밥, 또 뭐 줄까, 고기랑, 응 고기랑, 소시지도 주고, 소시지… 달걀말이도 줄까? 응, 그래.


어두운 식탁에 앉아 편의점 도시락을 나눠 먹으려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93.1 메가헤르츠가 연주하는 비단 같은 바흐의 첼로협주곡.

결국 어둠이 버거워 아들 아빠가 부엌 베란다 불을 켜자, 아들이 환호했다.


모래 같은 밥알을 씹으며, 베란다 불에 즐거워하는 아들을 바라봤다. 아들은 자기에게도 좋은 게 있다고 말하고는 작은 태양광 배터리 등을 가져와 식탁에 올려뒀다.

새끼손톱 크기의 전구가 제법 힘차게 빛나서 도시락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여전히 빛이 2할, 그림자가 8할인 주방에 둘러앉아 돼도 안 되는 식사를 하고 있음을 깨닫고 보니, 라디오가 이어서 들려주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협주곡 2번에 이끌려 어떤 풍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태양광 전구, 그것은 바로 촛불이었다.


초 하나 올려진 나무 식탁에 아들과 어머니가 늦은 저녁을 먹고 있고, 어스름하게 들어오는 바깥 불빛, 관현악단의 연주소리, 저 옆에서 귀족들의 무도회가 펼쳐지고 있다.

이 상상을 아들 아빠에게 공유했다.

우리, 높으신 분들 무도회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하인들 같지 않아? 이렇게 말이야, 오두막에 들어앉아서 이런저런 잡일 하려고 대기 중인 하인들 말이야, 지금 이런 소리가 들릴 것 같아.


“백작부인께서 오셨습니다!”


아들 아빠는 동의했다.

그때 고양이가 다가와 불이나 켜라, 물이나 줘라 요구를 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오냐오냐, 새 물을 떠다 줬는데, 문득 이것이 귀족들이 데려온 개, 고양이까지 돌본다는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아들이 우주를 달리는 철도에 취하는 사이, 나와 아들 아빠는 저문 하루에 감사하는 백성처럼, 겸손해지는 상상에 빠져 웃었다.


반려자여, 남루한 상상이지만 어쨌든 재밌지 않소?


고양이를 받들어 모시듯 하고, 아이의 놀이에 장단을 맞춰주는 우리의 정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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