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바빠도 웃기지

자기만의 공간

by 코알라

지나가다 흥미로운 간판을 보게 된다. 아, 웃기다, 나중에 누구 만나면 얘기해 줘야지, 하고 돌아서면 깡그리 잊어버린다.

최근에는 나의 건망증에 스마트폰 카메라가 도움을 줄 때가 있다. 그러니까 카메라로 찍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면 도움이 되고, 카메라로 찍었다는 것마저 망각하면 도움 따윈 없다. 그나마 찍어둔 사진을 추리다가 스스로 흥을 잃고 남에게 보여주려던 의욕이 증발하는 일이 벌어진다. 혼자 신났다가 혼자 풀이 죽고, 또 재밌는 간판을 발견하고 혼자 웃고 사진 찍다가 다시 심드렁해지기를 반복하는 셈이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냐고 하면, 바로 유튜브다. 갑자기 유튜브로 워프를 강행한 사유는 이렇다. 첫째, 유튜브 때문에 혼자 화가 났기 때문이고, 둘째, 자매품 같은 인스타도 나 혼자 눈엣가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다.


현대사회 사교의 일환으로 유튜브 및 인스타를 이용하는 입장에서 다소 모순된 의견일 수 있다. 유튜브로 <걸어서 세계 속으로>도 보니까, 그 존재의 의의를 온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 인스타로 뉴질랜드 간 김루사 씨의 근황도 접하니 소식통으로서의 역할을 무시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들을 적대시하고 싶어 진다면, 언제냐, 예고 없이 카메라를 들고 미소를 던지는 사람들을 만날 때다. 툭 터놓고 말해, 동네 골목길을 다니며 남의 거처를 촬영하고 세트장처럼 여기며 누비는 꼴에 이력이 난 것이다.

부동산 유튜버나 구경 나온 행락객이든 누구든, 예의 없이 굴려고 작정하면, 예외가 없다. 분노 유발자는 대개 자본의 맛에 굶주린 상이다. 사람이 버젓이 사는 주거공간을 상품진열대로 착각한 듯 모션을 취하면, 그것을 바라보노라면, 전두엽을 뚫고 불온한 욕구가 일어선다.

집이 찍고 싶은가. 그럼 너의 집을 찍기를 바란다. 집에는 사람이 살고 그 존엄을 알아야 한다. 돈 몇 푼에 울고 웃는 세상이라지만, 가난하든 부자든 집은 자기만의 방이고 휴식이다.


유튜버든 누구든 마찬가지다. 이름난 카페, 동네를 두루 구경해도 집에 들어와 마음대로 쉴 때면 집이 최고라 말하게 되고, 그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아파트 복도, 베란다 밖, 뜰에서 서성이며, 플래시를 밝혀 거처를 조명한다면 어떨까. 자, 여기는 옆에 공원이 있고 가까이 한강이 있습니다, 따위의 부연설명에 아무렇지 않게 소파에 누워 있을 수 있는가. 아니면, 거, 여기 사람 살거든요?,라고 일침 할 것인가.

자유는 개인의 몫이고, 나는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오늘도 달을 보고 화를 내며 혼자 짖는다. 으르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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